재만 조선인 문학

한자 在滿 朝鮮人 文學
중문 在满朝鲜人文学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정의

일제 강점기 만주 지역에서 조선인들이 벌인 문학 활동.

개설

‘재만 조선인 문학’이란 식민지 시기 만주로 이주한 조선인들에 의해 창작되거나 만주 지역에서 간행된 단행본들을 포함한 문학을 일컫는다. 최근에 와서는 만주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들까지도 함께 아우르는 경향이 있다.

주로 일제 식민지 말기에 집중적으로 창작되었다. 그래서 그 호칭 또한 ‘재만 조선인 문학’, ‘재만 한국 문학’, ‘만주 이민 문학’, ‘만주국 선계 문학’, ‘만주 문학’ 등 여러 명칭으로 불린다. 그렇지만 정확한 정의나 범주 설정이 정치하게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만주의 한국 문학으로서의 ‘만주 조선인 문학’

그동안 일제 강점 말기는 ‘암흑기’, ‘공백기’로 불리면서 하나의 단절로 인식되었다. 1980년 10월 오양호는 「암흑기 문학 재고찰」[『국어 국문학』84, 1980]을 발표하면서 문학사의 ‘암흑기’라는 말은 재고되어야 함을 지적하고 나섰다. 이 시기 조선 국내에서는 극심한 황민화에 따른 민족어 말살 정책이 강행되고 있었음에 반해 만주에서는 『만선 일보』 학예면을 중심으로 한 활발한 문학 활동이 전개되면서 적지 않은 작품들이 창작 발표되고 있었다. 이런 의미에서 만주는 민족어를 이어갔던 마지막 보루였고 일제 감점기 말 한국 문학의 명맥을 이어간 중요한 공간이었다.

오양호는 이와 같은 만주의 공간적 특징을 강조하면서 오랫동안 만주 지역의 문학 자료 발굴에 심혈을 기울여왔다. 그는 십여 년에 거쳐 『한국 문학과 간도』[문예 출판사, 1988]를 비롯한 『일제 강점기 만주 조선인 문학 연구』[문예 출판사, 1996] 『만주 이민 문학 연구』[문예 출판사, 2004]등과 같은 연구서들을 펴냈다.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만주 조선 문예선』[역락, 2012], 『만주 시인집의 문학사 자리와 실체』[역락, 2013] 등과 같은 원본 자료 소개를 주 목적으로 하는 총서를 간행하고 있다.

이와 같은 저서들을 통해 오양호는 『만주 시인집』, 『재만 조선 시인집』, 『만주 조선 문예선』을 비롯한 희귀 자료들을 공개하였다. 즉 당시 접하기 쉽지 않았던 『만선 일보』 문예란의 시도 함께 발췌하여 수록함으로써 후대의 연구자들에게 많은 편의를 제공하였다.

오양호가 대상으로 하고 있는 만주 조선인 문학은 만주에서 창작되거나 혹은 발표된 작품들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소설가로는 주로 안수길박계주를 논의하고 있으며, 시인으로는 유치환, 백석, 김조규, 심연수 등과 같은 시인들을 포함한 대부분 재만 시인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그의 연구는 주로 시 분야에 절대적인 비중을 두고 있다.

오양호 역시 이 시기 문학이 ‘재만 한국 문학’, ‘연변 문학’, ‘간도 문학’ 등 여러 명칭으로 불리는 것을 지적하였다. 이런 다양한 명칭 부여는 단지 문학이 형성된 공간에 따른 서로 다른 호칭일 뿐이라고 일축하면서 이 시기 문학을 한국 문학으로 분류하고 있다. 나아가 굳이 문학적 성격을 따지자면 이민 문학이나 망명 문학이어야 함을 주장한다.

오양호와 비슷한 시기에 『일제 강점기 재만 한국 문학 연구』를 펴낸 채훈 역시 동일한 주장을 하고 있다. 다만 채훈은 이 시기 소설에 한정하고 있다. 오양호가 안수길, 박계주를 논의한 데 이어 채훈은 강경애, 김창걸을 추가하고 있다. 채훈은 작품집 『싹트는 대지』와 안수길의 창작집 『북원』, 장편 소설 『북향보』와 만주에서 일본어로 작품 활동을 한 조선인 작가 금촌영치[今村榮治]의 존재를 알리면서 그의 일본어 단편 소설 「동행자」를 한국어로 번역하여 수록하고 있다. 또한 만주의 첫 동인지 『북향』에 대한 자세한 논의 역시 중요한 연구 업적으로 보인다.

민족 문학사적인 견지에서 일제 강점 말기 만주의 조선어 문학에 대한 성격 규명을 고민한 상기 연구들에서 빛나는 것은 소중한 문학적 자료들을 발굴하고 소개한 일이다.

2. 만주국 선계 문학으로서의 ‘만주 조선인 문학’

만주 조선인 문학이 식민지 말기 한국 문학의 공백을 메울 수 있는 중요한 대상으로 지목되면서 일련의 연구자들에 의해 소중한 자료들이 속속 발굴 소개되어 연구가 진척되었다. 이와 같은 연구들의 축적은 재만 조선인 문학의 지형도를 어느 정도 구현하기에 충분하였다.

그러나 만주라는 공간이 그처럼 단순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김윤식의 『안수길 연구』와 『염상섭 연구』는 만주 공간이 지니는 또 다른 특징, 혹은 재만 조선인에게 강요되는 또 다른 정체성의 이면을 드러내 보였다.

『안수길 연구』에서 주목되는 부분은 안수길만주 시절 작품에 대한 평가이다. 초기 연구자들은 안수길의 이 시기 작품을 망명 문학 혹은 이민 문학으로 평가하여야 마땅하다고 하였으나 김윤식의 시각은 완전히 달랐다. 김윤식은 안수길만주 시절 작품들을 한국 문학으로 논의한 것이 아니라 만주국 구성원의 하나였던 선계(鮮系) 문학으로 자리 매김함과 동시에 그의 문학이 만주국 국책 문학으로서의 혐의를 벗을 수 없음을 지적하고 있다.

이는 만주국 시기의 안수길 문학과 그 시기 기타 작품들을 조선의 문단이 아닌 만주국의 문학 장 내에 위치시킴으로써 만주국 문학의 한 갈래로서의 조선어 문학, 즉 ‘만주국 문학’으로서의 ‘선계 문학’을 논의한 것이다.

그렇다면 선계란 무엇인가? 선계란 만주국의 조선인을 지칭한다. 1932년 3월 1일부터 1945년 광복까지 만주에 존속했던 만주국은 일제가 세운 국가였다. ‘오족 협화’와 ‘왕도 낙토’는 만주국이 표방하는 중요한 슬로건이었다. ‘오족 협화’에서 ‘오족’은 만주국을 구성하는 다섯 민족, 즉 “일, 조, 만, 몽, 한”을 말하는 것으로 각각 일본인, 조선인, 만주족, 몽골족, 한족을 말한다. 조선인들은 선계로 불렸으며 조선인 문학[조선어 문학]은 자연스럽게 선계 문학으로 불렸다.

김윤식에 따르면 안수길만주 시절 문학은 만주국의 선계 문학이었다. 그리고 안수길의 「토성」이나 「목축기」 등과 같은 작품들은 만주국의 건국 이념을 바탕으로 하거나 노골적으로 드러낸 작품으로, 국책 문학으로서 손색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김윤식의 논의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안수길의 문학을 선계 문학으로서 논의한 것보다는 국책 문학으로서의 성격 규명에 더 치중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논의는 2,000년대 들어 활발하게 논의되었던 친일 문학 논의와 직결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만주국에서 선계 문학의 존재는 미미했다. 민족 위계상 조선인은 일본인 다음으로 이인자의 위치를 차지하였지만 그것은 허울뿐이었고 조선인의 존재는 주류에서 벗어난 비주류임에 분명했다. 이는 안수길 문학의 위상이 잘 말해준다. 만주국에서 안수길의 문학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으며 조선인들은 문학적으로 일본이나 중국과 거의 교류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만주국 문학은 일계와 만계에 의해 주도되고 있었고 그들은 일본어와 중국어의 상호 번역 작업에 의해 비교적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지는 편이었다. 하지만 선계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으며 그 존재는 백계 러시아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신만주(新滿州)』 1941년 11월호는 ‘재만일만선아 각계 작가전 특집(在滿日滿鮮俄各系作家展特輯)’을 마련하였는데, 여기에 안수길의 「부엌녀」가 소개되었다. 안수길의 많은 작품들 중에서 왜 굳이 「부엌녀」가 소개되었던 것일까? 「부엌녀」는 안수길이 선택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경로를 통해 선정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이와 같은 작품을 선계 대표작으로 내보냈다는 사실은 많은 시사점을 남긴다.

만주국 국민으로서의 정체성이 요구되었던 그 시대 조선인들은 어떤 삶의 방식을 선택해야 했던 것인가? 안수길의 「부엌녀」가 어느 정도 그 답을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3. 중국 조선족 문학의 전신으로서의 ‘만주 조선인 문학’

1997년 김호웅은 『재만 조선인 문학 연구』라는 단행본을 국학 자료원에서 출간한다. 이 단행본은 그의 박사 학위 논문을 수정하여 간행한 것으로 만주국 시기 조선인 문학의 발생, 발전 과정을 개관하고 있는 저서이다. 시와 소설을 아우르는 폭넓은 분야를 대상으로 설정하고 있으면서 한국 문학도 만주국 문학도 아닌 이 시기 문학의 독특한 이중적인 성격을 규명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김호웅의 주장에 따르면 만주국 시기 조선인 문학은 한국 문학도 만주국 문학도 아니며 따라서 조선적이지도 중국적이지도 않다. 그렇지만 양쪽 모두에서 영향을 받으면서 형성되었기에 나름의 독특한 이중적인 성격을 형성하게 되는데, 말하자면 그것이 곧 오늘날 중국 조선족 문학의 전신이라는 점이다.

재만 조선인 문학이 중국 조선족 문학의 전신으로서 손색이 없는 것은 조선족 문학의 선구자인 이학성과 김창걸을 만주 문단이 배태시켰기 때문이다. 재만 조선인 문학이 생성과 발전 과정을 거쳐서 드디어 자체의 향토적 색채를 드러내기에 이르는데 그것이 이학성과 김창걸에 와서 이룩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향토적이라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학성과 김창걸에게는 그들만의 만주적인 색채가 있는데 그것을 김호웅은 향토적이라고 지칭했던 것이다. 즉 이민 1세가 아닌 만주에서 태어나고 자랐거나 만주에서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만주의 기억만을 가지고 있는 이민자에 의해 재현되는 고향 만주의 색채를 향토적이라고 표현했던 것이다. 틀린 말이 아닌 것이 그들에게 있어서 만주는 더 이상 제2의 고향이 아닌 고향 그 자체였다.

조선적이지도 중국적이지도 않다는 것은 동시에 조선적인 것도 중국적인 것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김호웅의 이런 시각은 사실 한국 문학이면서 만주국 문학이었고 동시에 중국 조선족 문학의 기원이기도 했던 만주 조선인 문학의 이중·삼중적 성격을 잘 보여 준다.

이를테면 최서해, 강경애, 안수길, 염상섭, 최독견, 주요섭 등 한국 작가들이 중국 조선족 문학사에 포섭되어 있음과 동시에, 안수길의 「새벽」은 해방 전 중국 조선족 문학의 중요한 대표작이기도 하다. 이처럼 일제 강점기 말 만주 지역에서 생성된 조선어 문학은 하나이면서 여럿인 중층적인 성격을 처음부터 배태하고 있었다.

4. 만주 문학으로서의 가능성

2,000년대 들어 친일 문학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만주는 또 한 차례 주목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2,000년대 논의는 전시기 논의와 분명한 차이점을 보인다. 김윤식, 오양호를 비롯한 초기 연구들이 만주 조선인 작가와 작품들에 주목하였다면 2000년대 연구는 만주라는 공간적 특징에 주목하고 있었다.

이 시기 만주 공간의 부상과 함께 많은 작품들이 새롭게 발굴 조명되었다. 그 중에는 특히 만주에서 쓰인 것이 아닌 만주를 배경으로 하는 조선 국내 작가들의 작품들이 다수를 차지했다. 만주 공간이 흥미로운 논의거리를 제공함과 동시에 만주 조선인이라는 복잡하고 중층적인 존재는 한층 더 많은 연구를 촉발시켰다. 그리고 기존의 연구가 일제 강점기 말에만 한정되었던 데에 반해 근래에는 해방 후까지도 연구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비공식적인 명칭인 ‘만주 문학’은 공식적인 명칭처럼 통용되면서 자연스럽게 두 부류의 문학, 즉 만주에서 생성된 문학과 만주를 배경으로 하는 문학 양쪽 모두를 아우르는 명칭으로 묵인되었다.

기존의 연구들이 일제 식민지 말기에서 해방 후까지에 이르렀다면 이은영의 논문 『20세기초 유교지식인의 망명과 한문학: 서간도 망명을 중심으로』에서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 망명 지식인들이 만주에서 지은 문학 작품을 통해 일제에 대한 비폭력 저항 정신을 드러낸 것으로 보고 있으며, 비폭력 저항 정신이 바로 만주 문학의 토대가 된 것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김장선의 『만주 문학 연구』[역락, 2009]와 사뭇 대조된다. 김장선의 연구는 세 부분으로 구성되었다. 만주국 시기 조선인 문학 연구, 중국인 문학 연구, 러시아인 문학 연구가 그것이다. 완벽한 만주 문학 연구가 되기 위해서는 여기에 만주국 시기 일본인 문학 연구와 몽골인 문학 연구가 덧붙여져야 할 것이다.

즉 만주 문학은 다민족 문학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만주국은 단일 민족 국가가 아니었으며 국가의 공식 언어 역시 일본어와 중국어 두 가지였고 몽골인 집거 구역에서는 일본어와 몽골어가 행정 언어로 통용되는 예외의 경우도 있었다.

이러한 문제가 아니더라도 만주 문학은 독특한 그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만주 문학’이라는 말은 최초로 일본인들에 의해 사용되었다. 만철의 일본인들이 대련에서 그들만의 문학 살롱을 만들고 문학 잡지를 창간하면서 그들이 창작한 문학을 이름 하여 ‘만주 문학’이라고 불렀다.

그랬는데 만주국이 건국되면서 ‘만주 문학’을 둘러싼 논쟁이 일어나고 ‘만주 문학’은 대련이 아닌 신경을 중심으로 한 만주국의 이념을 대변해야 하는 문학 즉 ‘만주국 문학’으로의 변화가 강요되었다. 따라서 ‘만주 문학’은 ‘만주국 문학’이라는 인식이 짙게 드리우게 되면서 최초의 ‘만주 문학’으로서의 의미는 사라져버리게 된다. 이와 같은 점을 염두에 둘 때 ‘만주 문학’은 그렇게 단순하게 끌어다 쓸 수 있는 용어는 아니다.

그렇다고 하여 19세기 말 20세기 초의 문학을 만주 조선인 문학이라고 칭하기에도 적절하지 않다. 그 시기 만주만주로 불리기보다는 지나 혹은 청으로 칭해지는 경우가 더 많았고 그렇지 않으면 간도라고 칭해졌다. 만주라는 말이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수준에 이르기는 1930년대 중반 가까이 되어서이다.

30년대 중반 ‘만주 붐’이 일면서 기존의 ‘간도’라는 말보다 ‘만주’라는 말이 훨씬 많이 빈번하게 사용되기에 이른다. 따라서 ‘만주 조선인 문학’은 일제 강점기 말 혹은 만주국 시기를 전제로 하는 것은 당연하다.

참고문헌
  • 김윤식, 『안수길 연구』(정음사, 1986)
  • 김윤식, 『염상섭 연구』(서울대학교 출판부, 1987)
  • 오양호, 『한국 문학과 간도』(문예 출판사, 1988)
  • 채훈, 『일제 강점기 재만 한국 문학 연구』(깊은샘, 1990)
  • 오양호, 『일제 강점기 만주 조선인 문학 연구』(문예 출판사, 1996)
  • 김호웅, 『재만 조선인 문학 연구』(국학자료원, 1998)
  • 오양호, 『만주 이민 문학 연구』(문예 출판사, 2004)
  • 김장선, 『만주국 시기 조선 인문학과 중국 인문학의 비교 연구』(역락, 2004)
  • 김장선, 『만주 문학 연구』(역락, 2009)
  • 이은영, 『20세기초 유교지식인의 망명과 한문학: 서간도 망명을 중심으로』(성균관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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