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문학

한자 現代 文學
영문 modern literature
중문 当代文學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시대 현대/현대
정의

1949년부터 중국 조선족 작가들에 의해 이루어진 문학 활동.

개괄

중국 조선족의 현대 문학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 중국에 거주하는 조선족 작가에 의해 조선족의 기질과 풍격, 그리고 전통을 담아 한글이나 한문을 사용하여 창작된 문학 작품을 지칭한다. 이 시기의 문학 작품은 이전의 항일 투쟁과 해방 전쟁 시기에 이루어진 문학 창작의 전통과 업적을 기반으로 한다는 특징을 갖는다. 따라서 이전 시기 문학과의 연계 속에서 살펴보아야 한다. 실제로 문학 창작을 담당한 작가들 중에는 김학철이나 이욱과 같이 이전 시기부터 문학 활동을 지속적으로 펼쳐 개혁개방 이후까지 활동을 지속한 인물들이 있다.

또한 중국 조선족의 현대 문학은 역사적으로 근현대기에 새로이 형성되었다는 점에서 다른 소수 민족의 문학과 다른 특징을 갖는다. 이는 한반도에서 이주한 민족의 문학으로서, 한반도 문학을 모태로 하며, 중국 문화를 자양분으로 삼고 있다. 이 과정에서 조선족 고유의 언어를 사용하여 문학 창작을 한 것은 시대를 막론하고 중국 조선족 문학이 독자성을 갖는 가장 큰 요인이 되고 있다. 따라서 중국 조선족의 현대 문학은 다른 소수 민족의 문학이 민족적 성격이 약한 것에 비추어 상대적으로 강한 민족적 성격을 갖고 있는 것이다.

중국 조선족의 현대 문학은 이전 시기 중국 조선족 문학이 보였던, 정착과 망향이라는 초기 이주 민족의 의식 세계에서 점차 벗어나고 있다. 대신 중국에서 소수민족으로서의 위치를 확보하고, 중국의 일원으로서 갖게 된 정서와 시대 변화에 따른 갈등이 주된 내용이 이루고 있다. 따라서 중국 조선족의 현대 문학은 중국의 정치 지형의 변화와 동일한 궤적을 보인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중국 문학으로서의 특징과 민족 문학으로서의 특징을 두루 갖추며 중국 조선족 문학만의 독자적인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시대별 변천

1. 신중국 성립 이전

이 시기는 조선족이 중국으로 이주하기 시작하는 시기다. 초기 이주민은 빈농층이였기 때문에 본격적인 문학보다는 구전 민간 문학과 창가 등이 성행하였다. 20세기 초에 들어서 지식인들이 이주하게 되면서 비로소 전문적 작가에 의한 문학 활동이 시작되었다. 이 시기에는 작품 창작이 혁명가 또는 근대 사상을 고취하고자 하는 선각자들을 중심으로 이뤄짐에 따라 반제 반봉건의 기치를 선명하게 드러낸다는 특징을 갖는다. 사회 발전의 한계와 문학 창작자의 제한성으로 인하여 여러 가지 결함을 안고 있으나, 민중의 예술적 요구에 부응하여 조선족 문학의 정체성을 형성하는데 바탕이 되었다.

9·18 사변을 계기로 동북 지역의 정세가 급격히 변화하면서 항일 무장 투쟁이 격화되었고 민중의 항일 의지와 혁명 정신은 더욱 고취되었다. 이에 따라 새롭게 제기된 대중의 미학적 요구를 반영하며 문학은 새로운 단계로 발전하게 된다. 항일 유격구에서 항일 연극이 공연되고, 항일 가요가 불리는 등의 현상을 보인 것이 그 단적인 예이다. 이전까지 조선족의 연극은 한반도에서 전해진 봉건적 전통극이나 신파극이 주류를 이루었는데 반해, 이 시기에 접어들면서 생활과 일치하는 사실주의 연극이 대량 창작된다. 그러나 혁명가와 같은 비전문가에 의한 창작이 대다수였기 때문에 현재까지 전하는 작품 수는 그리 많지 않다.

이 외 강경애를 비롯하여 안수길, 박팔양 등이 동북에서 생활하며 작품을 창작하여 조선족 문학을 한 단계 발전시킨 것도 이 시기의 일이다. 이들은 「인간 문제」[장편, 강경애], 「새벽」[단편, 안수길], 「승리의 봄」[서정시, 박팔양] 등의 작품을 통해 동북 지역 민중의 생활과 투쟁을 사실주의적으로 그리고 있다. 특히 강경애는 용정에서 결성된 문학단체 북향회를 지도하여 조선족 문학 발전에 큰 발자취를 남긴다.

한편 일제가 점령한 만주국 지역에서도 『북향』, 『카톨릭 소년』 등의 잡지를 통한 진보적인 조선족 작가들의 활동이 이어졌다. 대표적으로 시인 이욱과 소설가 김창걸을 들 수 있다. 이욱은 「금붕어」, 「새 화원」, 「북두성」 등의 서정시를 발표하며 활발한 창작 활동을 벌였다. 이 시기 이욱의 시는 호방하고 우아한 작품세계를 보여주는데, 그는 은유의 수법을 주로 사용하여 낙관적 미래를 제시하였다.

김창걸의 대표작으로는 단편 소설 「암야」를 들 수 있다. 이 작품에서 김창걸은 죄악이 횡행하는 사회를 고발하는 동시에 농민들의 굳은 의지, 그리고 청년들의 순결한 사랑을 찬양하고 있다. 「암야」의 성공 요인은 심오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작가 자신의 경험에 기초해 사실적인 인물을 내세우고 여기에 생동감있는 묘사를 더함으로써 사실성과 감동을 높인 데 있다. 이러한 예술적 성과로 인하여 단편소설 「암야」는 이 시기 뿐 아니라 해방 전 중국 조선족 문학의 이정표와 같은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2. 신중국의 성립-문화대혁명 이전

일제에 대한 무장 투쟁과 반동세력에 맞서는 해방 전쟁의 결과, 신중국이 성립되었다. 이 과정에서 조선족은 동북 지역에서 주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동시에 새로운 시대를 맞아 역사 발전의 주역으로 자리매김하였다. 항일 무장 투쟁의 중심축이 되어 수많은 전투를 승리로 이끈 것은 물론이고, 해방 전쟁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동북 해방의 주된 세력이 되었다. 이러한 역사적인 업적으로 조선족은 당당히 새로운 중국의 일원으로서‘조선족’이라는 명칭을 획득하고, 자치주를 건설하기에 이른다.

혁명과 신중국 성립, 그리고 자치주 건설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은 조선족 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특히 이 시기의 문학은 중국 공산당의 정책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아 이후 조선족 문학의 성격을 규정하는 의미도 갖고 있다. 신중국 건설 이후 조선족은 자치주를 건설하고, 농업 생산력을 비약적으로 증대시키는 등 급속도로 경제를 안정시키고, 문화를 발전시키며 사회주의 국가 건설에서 그 성과를 이어나갔다.

정치적 변화와 동시에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문학 세계를 구축하기 위한 활동도 활발히 전개되었다. 이 시기에 이르러 동북 지역에 흩어져 있던 김례삼, 최수봉, 황봉룡, 임효원, 최현숙, 백남표, 최정연, 김학철 등이 연변으로 모인다. 또한 「연변 일보」, 『불꽃』, 『연변 문화』, 『문화』, 『건설』 등 다양한 신문과 잡지가 동북 지역에서 창간되었다. 이쓰크라 극단, 길동군구 문공단, 연변 문공단, 송강 노신 예술 극단, 이홍광 지대 선전대 등 대중적인 문예 공연 단체도 결성되었다. 문인들의 결집은 문학 단체의 결성으로 이어졌고, 1948년 심양에서 열린 ‘동북 문예 공작가 회의’와 1949년 북경에서 열린 ‘중화 전국 제1차 문학 예술 일꾼 대표 대회’에 대표를 파견하여 조선족 문학의 존재를 대내외에 알리기도 했다.

중국 조선족 문단은 중국 문단과 연계됨으로써 자연히 중국 문단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 당시 중국 문단은 사회주의 문학 건설을 위한 사상 운동과 사상 투쟁이 격렬히 진행되고 있었다. 영화 「무훈전」을 둘러싼 논쟁, 호풍 문예 사상과 「홍루몽」 연구에서 불거진 자산 계급 유심론에 대한 비판 등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에 더하여 중국 공산당은 지도 방침상의 실책, 즉 반우파 투쟁의 확대[1957], 대약진 운동과 농촌 인민 공사화 운동[1958], 정풍 운동[1959], 계급 투쟁 확대와 절대화[1963~1965] 등 좌경적 오류를 범하게 된다. 이들 사회·문화적인 배경으로 인하여 조선족 문학은 정치적 세파에 부딪치며 평탄치 않은 길을 걷게 된다.

여러 난점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 조선족 문학은 신중국 성립으로 형성된 새로운 환경과 인민 대중의 미학적 요구를 수용하며 시, 소설, 평론, 희극 등 다양한 장르에서 뚜렷한 성과를 올리며 신형 문학으로서 정체성을 가다듬어 가게 된다.

3. 문화대혁명기

1966년부터 1976년까지 10년간 진행된 문화대혁명은 중국 역사에서 문화적 암흑기로 평가받는 시기이다. 1966년 2월 상해에서 발표된 「임표 동지께서 강청 동지에게 위탁하여 소집한 부대 문화 사업 좌담회 기요」[이하 「기요」]로 촉발된 문화대혁명은 신중국 성립 이후 17년간 이룩한 문화 업적을 일거에 부정하는 내란이었다.

「기요」에 따르면 17년간 모든 문학 활동은 검은 선의 독재였다. 검은 선으로 지목된 것은 자산 계급 문예 사상, 현대 수정주의 문예 사상과 30년대 문예와의 결합이었다. 이 시기 문학 활동은 「기요」에서 제시된 바 모택동의 사상과 대립되는 검은 선을 제거하는 일에 맞춰졌으며, 연변 지구에서는 주덕해(朱德海)가 그 검은 선으로 지목되었다.

주덕해연변조선족자치주 주석을 지내면서 연변조선족자치주의 경제와 사회를 비약적으로 발전시킨 인물이다. 문화적으로도 조선족 구전 문학을 적극적으로 수집하는 사업을 일으키는 등 조선족의 문예를 부흥시키기 위해 많은 업적을 쌓았다.

그러나 이른바 ‘반란파’는 주덕해를 반혁명 여론을 조성해 나라를 팔아먹고 수정주의에 투항하여 자본주의를 재생시키려 했다고 규정하는 동시에, 작가 대부분을 ‘잡귀신’이라고 모함하였다. 이들 ‘반란파’에 의해 「민족 문화 혈통론」은 계급을 부정하는 것으로, 그리고 조선어와 조선 문자의 사용은 민족 분열주의 언어 방침으로 비판되었다. 이 와중에 김학철, 김철 등이 투옥되고, 많은 작가들이 하방(下放)[일정기간 농촌이나 공장에 보내 노동에 종사하게 함]되는 고초를 겪게 된다. 창작에 있어서는 강청이 지도했다는 「본보기극」을 표본으로 삼아 ‘근본 과업론’, ‘3돌론’, ‘주제 선행론’ 등의 창작 이론을 따른 작품만 생산할 수 있었다.

이들 ‘반란파’의 논리대로 하면 조선족은 그 존재 자체가 부정되는 것이었기에, 17년간 쌓아온 조선족 문학의 전통은 겨우 명맥만 유지하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

4. 문화대혁명 이후

조선족 문학의 전통 뿐 아니라 언어 마저 사용할 수 없어서 민족의 소멸을 걱정해야 했던 문화대혁명의 시기는 강청 무리를 처단함으로써 막을 내렸다. 1978년 12월에 열린 ‘당 중앙 위원회 제11기 제3차 전원 회의’[전원 회의]에서는 지난 시기의 모든 과오를 진지하게 시정하는 작업이 이루어졌다. 전원 회의는 새로운 지도 방침을 설정하고, 사업 중심을 사회주의 현대화로 결정하였다. 이를 계기로 중국은 현대화 한 사회주의 국가 건설을 위해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게 되었다.

중국 조선족 문학 역시 소멸의 위기에서 벗어나 소생과 번영의 시기를 맞게 된다. 우선 문화대혁명 기간에 일어난 일련의 날조와 불합리한 처사를 바로잡는다. 1978년 10월에 열린 ‘연변 문학 예술 일꾼 연합회’ 제2기 제3차 전체 위원 회의에 참석한 문인들은 문화대혁명 기간 동안 자행된 ‘4인방’의 만행을 폭로하였다. 회의에서는 작가들에게 다시 과감한 창작에 힘써줄 것을 호소하였고, 그간 중단 되거나 해산 되었던 단체들의 제반 사업을 회복시켰다. 또한 조선족 작가들에게 씌워졌던 누명을 벗겨주었으며, 금지되었던 작품들이 정당한 평가를 받도록 하였다.

1978년 12월에 열린 제2차 동북 3성 조선 어문 사업 실무 회의에서는 조선어와 조선 문자를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함을 재확인하고 제반 규정을 심의, 채택하였다. 조선족 문학과 관련한 일련의 단체가 재결성되거나 확대 설치되었고, 작품을 발표할 수 있는 문학 잡지도 연변 지역의 『연변 문예』·『아리랑』·『문학과 예술』을 비롯하여, 길림의 『도라지』, 장춘의 『북두성』, 심양의 『갈매기』, 하얼빈의 『송화강』 등 각지에서 속속 창간되었다.

조직이 정비되고 잡지가 창간되는 등 문단을 둘러싼 환경의 변화는 활발한 작품창작으로 이어졌다. 시단(詩壇)에서는 서정시가 부활하고, 산문시, 서정 서사시, 장편 서사시 등 다양한 형식의 작품이 창작되었다.

특히 서정시는 인민 대중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김철의 「북방의 성격」[1982], 이욱의 「아침」[1982], 임효원의 「북녘의 서정」[1980], 김성휘의 「흰옷 입은 사람들아」[1987], 조용남의 「해빙기의 강변에서」[1983], 석화의 「나는 나입니다」[1985년] 등이 있다.

소설 역시 원로 작가인 김학철이 복귀한 것을 비롯하여 많은 신인 작가들이 등장하여 창작의 열기가 뜨겁게 타올랐다. 『김학철 단편 소설집』[1982년], 임원춘의『몽당 치마』[1984년], 정세봉의『하고 싶던 말』[1985년]과 같이 작가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는 작품의 등장이 특징적이다.

또한 민중의 새로운 생활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사회적 문제를 정면에서 다루는 소설들도 창작되어 조선족 문학을 풍부하게 하였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김학철의 「격정 시대」[1986], 이근전의 「고난의 연대」[1982], 이원길의 「한 당원의 자살」[1985], 유원무의 「봄물」[1987] 등이 있다.

극작 역시 새로운 시대를 맞아 제 궤도에 올랐다. 최정연의 「해토무렵」[1981]을 비롯한 정극과 함께 황봉룡의 「괴상한 약력표」[1979]와 같은 풍자극, 김훈의 「두부장사」[1981] 와 같은 경희극 등 다양한 작품이 창작되었다. 이와 함께 가극 대본과 영화 대본 등도 창작되어 조선족 문학계가 날로 풍성해지고 있다.

참고문헌
  • 정덕준, 김정훈, 노철, 김기주, 정현숙, 이상갑, 장춘식, 『중국 조선족 문학의 어제와 오늘』(푸른 사상, 2006)
  • 임범송, 권철, 『조선족 문학 연구』(흑룡강조선민족출판사, 1989)
  • 조성일, 권철 주편, 『중국 조선족 문학 통사』(이회 문화사, 1997)
  • 김호근, 『中國朝鮮族文學作品精粹(評論卷)』(延邊 人民 出版社, 2002)
  • 장춘식의 조선족 문학:(http://blog.daum.net/zhang59)
이전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