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한자 隨筆
영문 essay
중문 隨筆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성격 산문
정의

조선족의 이주와 정착, 신중국 성립 과정에서 경험한 견문과 감상을 자유롭게 표현한 문학.

개념과 의의

수필은 생활 속에서 느낀 점을 자유로운 형식으로 표현하는 문학 예술이다. 따라서 내용상 일상적인 생활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고, 형식상 제약이 적어 독자들에게 공감 가는 바가 많은 문학이다. 중국 조선족의 수필 역시 이러한 수필의 일반적 성격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그런데 중국 조선족 수필이라고 했을 때, 그 개념 범주는 실로 다양하게 논의될 수 있다. 우선, 중국에 거주하는 조선족에 의해 창작된 중국에서 생활하는 조선족에 대한 자유로운 형식의 산문을 생각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개념이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조선족에 대한 자유로운 형식의 산문을 생각할 수 있다. 조선족이 아닌 작가에 의해 창작된 것들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조선족이 아닌 작가들은 중국인, 일본에 거주하는 일본인, 조선에 거주하는 일본인, 조선에 거주하는 조선인, 조선 이외의 지역에 거주하는 조선인 등 지역과 출신에 따라 다양한 집단이 존재한다. 이들이 출장, 여행 등의 기회를 통해 조선족의 생활과 풍물 등을 접하고 이를 기록한 것이다. 르포, 기사 등의 형식으로 작성된 많은 글들이 이에 해당한다. 이와 함께 최근 들어 보이는 바 한국에 거주하는 조선족에 의해 창작된 중국 조선족의 중국 또는 한국에서의 생활에 대한 작품을 생각할 수 있다. 또한 한국인의 중국 경험 가운데 보이는 조선족의 생활 역시 중국 조선족 수필의 범주로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처럼 중국 조선족 수필의 개념 범주는 수필의 개념이 다양한 만큼 넓게 설정될 수 있다. 따라서 넓은 범위에서는 이 모든 경우를 다 포괄하면서, 좁은 범위로는 첫 번째로 설정한 바 중국에 거주하는 조선족에 의해 창작된 중국에서 생활하는 조선족에 대한 자유로운 형식의 산문이라고 하겠다. 이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하기보다는 시대적인 변화와 중국 조선족 수필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는 측면을 고려하여 개념을 설정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중국 조선족 수필은 시기별로 다르게 정의되어 진다.

중국 조선족의 삶은 크게 세 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해방 전의 이주와 정착단계, 신중국 성립 이후 한중 수교 이전, 그리고 한중 수교 이후가 그것이다. 첫째 단계에서는 한반도와 중국이 공간적인 배경이 된다. 둘째 단계는 중국이 공간적인 배경이고, 셋째 단계는 한국과 중국이 공간적인 배경이 된다. 시간과 공간에 따른 중국 조선족의 사유의 변천과 감상을 충실하게 반영한 것이 수필이다. 따라서 중국 조선족 수필은 각각의 시기에 따라 각 시기별 생활상을 반영하고, 조선족 삶의 변천을 기록하는 기능을 수행하였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시기별 양상

˂이주와 정착기˃

이 시기는 중국 조선족 수필의 첫 단계이다. 조선족의 이주와 정착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중국 조선족과 직접적인 관련을 맺는 이주와 정착은 두 단계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압록강두만강 주변 황무지를 개간하며 정착하는 단계와 두 번째, 일제의 탄압과 회유에 의해 집단 또는 개인적으로 중국으로 이주하여 정착하는 단계이다. 첫째 단계는 빈곤에 몰린 농민들이 살길을 찾아서 이주하는 단계였으므로 수필을 창작하기에는 문화적 토양이 빈약한 시기였다. 따라서 이 시기는 본격적인 수필이 창작되기 이전 준비 단계로서의 의미를 갖고 있다.

둘째 단계는 조선족 수필이 다양하게 생산되는 시기이다. 이 시기에는 작가, 기자, 독립운동가, 유학생 등 다양한 사람들이 중국으로 이주하거나 체류하게 된다. 그 성분도 다양하여서 일제의 탄압에 분노하거나 쫓겨 중국으로 이주한 기자, 작가나 독립운동가가 있는 반면에, 만주국을 따라 들어와서 친일 행각을 벌이는 기자와 작가들도 있었다. 그러나 다양한 작가들이 존재하고 있었지만, 지금까지 이름이 알려진 작가는 20여 명에 불과하고 대부분은 무명 작가로 남아 있다. 많은 작품이 노동자, 농민, 직원 등 근로 계급에 의해 창작되었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 활동한 주요 수필가들의 작품을 통해 중국 조선족 수필의 첫 단계가 갖고 있는 특징을 볼 수 있다. 우선, 작가 강경애(姜敬愛)의 작품이 있다. 강경애는 조선 문학사에서 주목되는 작가로 용정에서 작가 생활을 하였다. 강경애의 작품에는 세 가지 양상이 나타난다. 첫째, 가난에 대한 기억이다. 가난에 시달렸던 어릴 적 기억을 재현하면서 동시에 이 가난이 개인적인 차원의 것이 아니라는 인식을 보여주고 있다. 둘째, 떠나온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다. 이는 시기를 막론하고 중국 조선족의 가장 바탕을 이루는 의식일 것이다. 특히 바닷가를 떠나 내륙 깊숙이 들어온 강경애는 ‘달’, ‘하늘’ 등 자연물을 통해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절절히 드러내고 있다. 셋째, 사회에 대한 인식이다. 반일 투쟁의 현장에서 경험을 통해 다져진 항일 무장 투쟁에 대한 지지, 궁핍한 조선족들의 생활을 목도하며 자신을 철처히 비판하는 성찰을 통해 깨달은 작가적 사명감 등 작가 자신을 둘러싼 사회에 대한 인식을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다.

중국 조선족 문학의 형성에 크게 기여한 안수길(安壽吉)은 작가인 동시에 기자였다. 그는 용정과 심양 등지에 거주하며 기자로 활동하던 시기에 수필을 여러 편 발표했다. 안수길은 특히 여러 편의 풍토기(風土記)를 썼는데, 그 중 용정편에는 용정의 풍물과 역사 등이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어 용정 사람들에 대한 안수길의 애정을 살펴볼 수 있다. 이 글은 지금도 용정에 대한 참고자료로 읽혀지고 있다.

한편 기자였던 황건(黃健)은 생활에서 경험한 일들에 대해서 견해와 생각을 솔직히 드러냈다. 일상을 직시하면서 이를 있는 그대로 반영하는 사실주의적인 경향은 황건의 수필에서 보이는 가장 뚜렷한 특징이다. 그는 이러한 태도를 바탕에 두고 고향에 대한 사랑과 민중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였고, 자신의 순수성을 유지하고자 적극적으로 고민하였다.

중국 조선족 소설가 중 대표적인 작가인 김창걸(金昌傑)도 여러 편의 수필을 남겼다. 김창걸의 수필은 일상 생활에서 소소하게 경험하는 것들에 대해 깊이 사색하여 삶의 원리를 밝혀내고 있다. 예를 들어 병원에서의 경험을 소재로 돈을 제일로 여기는 세태를 드러내며, 봄을 이야기하면서 개인의 운명과 민족의 삶을 하나로 융합시켜 생각하는 식이다. 소소한 일상을 이야기함에 있어 단순한 감상 차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력을 보임으로써 올바른 삶의 방식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신중국 성립 이후 한중 수교 이전˃

중국 조선족은 신중국의 성립 이후 비로소 그 존재가 확정되었다. 즉, 신중국이 성립한 뒤부터 중국을 삶의 터전으로 삼으면서 한반도에 기원을 둔 소수 민족 집단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보해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신중국 성립 이후부터 한중 수교 이전까지 이른바 ‘4인방’이 전횡을 일삼던 문화대혁명 시기와 같이 조선족의 정체성이 위협을 받던 시기도 있었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스스로의 존재에 대해 해명하고, 중국 공산당의 정책에 발맞춰 생산력을 증대시켜 나가는 것이 중국 조선족의 삶이었다. 이러한 생활 조건 속에서 수필은 이전 시기에 비해 단순화되는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이 시기에는 특히 김학철이나 문창남의 작품이 주를 이루었고, 그들 작품에 보이는 인식과 수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작품들이 생산되었다.

김학철은 현실 생활과 역사적인 문제를 풍자와 위트를 동원하여 표현하고 있다. 그 속에서 예리한 분석과 비판 의식이 김학철의 인생 경력과 어우러져 특유의 수필 세계를 형성하고 있다. 그의 수필은 정치 사회적 담론의 성격이 강하다는 특징을 가지는데, 이는 작가의 위엄을 드러내는 동시에 독자로 하여금 작품에 가까이 다가가기 어렵게 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이와 대비되는 것이 김창남의 수필이다. 김창남은 서사와 서정이 어우러진 수필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시인인 김창남의 특성이 반영된 것이라고 하겠다. 즉, 시인이기에 서정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작가이기에 사실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 아닌 형상화의 수법을 통해 소재를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생활을 가감 없이 반영하고, 그 속에서 삶의 원리를 찾는 것이 수필이라는 일반적인 개념의 측면에서 볼 때 김창남의 수필은 재미는 있으나, 감동을 전하기는 어려운 한계를 갖고 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김창남의 수필은 접근하기가 상대적으로 쉽기 때문에 한중 수교 이전까지 대부분의 작가들이 유사한 작품을 생산해 내는 등 그의 작품이 수필의 모형으로 여겨졌다. 결국 이 시기 수필은 사회, 문화적인 이유로 단순화되었으며, 독자와의 친근감이 결여되어 있다는 문제를 노정한다.

˂한중 수교 이후˃

한국과 중국이 수교하며 중국 조선족의 생활에는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한국이라는 새로운 공간이 펼쳐짐으로써 중국의 동북 삼성(東北三省)에 국한되던 삶의 무대가 확장된 것이다. 이와 함께 같은 시기에 한국인들의 중국 진출이 대거 일어남으로써 중국 조선족의 삶은 중국 내에서도 하북, 산동 등지로 확대되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중국 조선족들의 생활은 이전과는 다른 층위로 다양화되었다. 즉, 중국의 정치 원리에 따라 형성되던 조선족의 삶이 개혁개방 이후 본격화된 자본의 원리에 따라 다양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전에 중요시되던 가치 개념들이 변화를 겪으면서 이전에는 없었던 새로운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하는 것도 이 시기이다. 즉, 중국 조선족의 대거 이주에 따른 조선족 공동체의 해체 문제가 대두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생활상의 변화는 수필에 그대로 반영되었으며 이 때문에 그 이전의 수필과는 다른 인식을 보이기 시작했다. 물론, 이 과정에서 한국 수필의 영향 역시 부정할 수 없는 변화 요인이다.

새롭게 나타난 경향으로 크게 두 가지를 제시할 수 있다. 첫째, 기존 수필에 대한 반성과 그에 대한 반응으로서의 변화를 들 수 있다. 이 시기에 이르러 이전 시기의 수필이 전형성과 비현실성, 그리고 인식과 표현의 건조성의 문제를 갖고 있고, 그로 인하여 독자와의 친근감이 결여되었다는 반성이 일게 되었다. 이를 토대로 이후의 수필은 개성적이고 자기 고백적인 글, 사실의 충실한 반영과 의미화, 생동감 있는 문장 표현을 할 것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그리고 이러한 대안은 실제 서영빈, 박설매, 황유복 등 중국내 조선족 작가들이 최근의 작품들에서 보여주는 특징적인 부분이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생활 현실을 충실히 반영하는 자기 고백적인 글과 함께, 자기를 낮춤으로써 독자와의 공감을 형성하고 있으며, 경험을 통해 얻은 깨달음을 진솔한 필체로 그려내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수필에 대한 독자들의 인식에 변화를 가져와 수필의 양적인 팽창을 가져왔다. 그 결과 최근에 이르러 수필은 가히 폭발적이라고 할 정도로 작가와 작품이 증가하고 있으며, 지금을 수필의 시대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하고 있다.

또 하나 새롭게 나타난 경향으로는 중산층의 글쓰기이다. 이는 중국 문학계에서도 두드러지게 나타난 현상의 하나로써 중국 문학계에서 중산층 작가는 ‘유명 대학에서 공부했거나 연수하고 뛰어난 국제적 감각을 가지며 재산이 300-2000만원 사이인 자’를 지칭한다. 이 기준이 그대로 중국 조선족에도 적용되어 중국 조선족 중 기업가로 성공한 사람들이 작가로 등단하는 사례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이들은 대도시 중산층의 이해와 지향에 적합한 사유체제를 보여준다. 실제 최근 ˂도라지˃가 주최한 ‘장락주 문학상’이나 ‘중국 조선족 수필 문학상’의 수상자들은 북경(北京)이나 소주(蘇州) 등 대도시에 거주하는 작가들이었다. 각종 문학상 수상자들이 대도시에 거주하는 작가들이라는 점은 중산층 작가들의 존재를 인정하게끔 한다.

이와 함께 한국에 거주하면서 작품을 발표하는 작가, 중국에 거주하며 한국에서 작품을 발표하는 작가 등 중국 조선족의 지역적 확장으로 인한 새로운 형태도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지금도 계속 진행되고 있는 현재진행형이므로 이후 새롭게 정리해야 할 부분이라 하겠다.

참고문헌
  • 정덕준 외, 『중국조선족 문학의 어제와 오늘』(푸른사상, 2006)
  • 조성일, 「수필 문학 붐에 몇 마디」(『문화 산맥』, 2008)
  • 김동훈, 『종합 산문』(보고사, 2010)
  • 장춘식의 조선족 문학(http://blog.daum.net/zhang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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