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분류

평생 의례

한자 平生 儀禮
중문 一生仪礼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시대 현대/현대
정의

조선족 사회에서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행해지는 특정한 의례.

개설

조선족의 일생의례에는 출산 의례, 백일, 돌, 관례와 계례, 혼례, 회갑, 상례, 제례 등이 있다. 그밖에도 진갑연, 고희연, 8순 잔치, 졸수연, 회혼례 등도 개인에 따른 중요한 의례로 행해지고 있다.

1) 출산 의례

출산 의례는 새로운 생명의 탄생에 따른 의식이기에 ‘출생의례’라고 한다. 그러나 출생은 산모의 임신과 해산이라는 과정이 있음으로써 가능한 것이기에 이런 모든 절차를 포함하는 의례이다. 따라서 기자, 임신, 해산, 산후, 이름짓기 등 여러 절차들이 포함된다.

기자의례는 치성을 드리는 행위와 유감주술적 행위를 하는 것으로 구분된다. 치성의 예로는 바위에 고깔모자를 씌우고 허리를 졸라매어 ‘바위성공님’ 신체를 만들어 부부가 치성을 드려 아들을 낳으면 ‘바우’, 딸을 낳으면 ‘바우녀’라고 이름을 짓는다. 압록강 연안에 거주하는 평안도 출신 조선들은 정주간의 북쪽에 모신 ‘삼성(三聖)’에게 음력 4월 8일 제사상을 차려 아이의 잉태를 위한 치성을 드린다. 그밖에 강변에 주워온 돌을 집 뒷마당에 칠성단을 만들어 밤 10-11시경에 기자를 기원하거나 집의 성주신, 절 등을 찾아 부처에게 빈다. 삼신이나 절치성 등은 한국에서 일반적으로 행해졌다.

주술적인 행위로는 아들을 낳기 위한 집에서는 아녀자가 집집마다 다니면서 바늘을 얻어 그것으로 도끼를 만들어 허리에 찬다. 그것을 “바늘도끼”라고 한다. 딸만 낳은 집에서는 여자애에게 ‘남(男)’자가 달린 이름을 지워준다. 한국에서도 작은 도끼를 대장간에서 만들어 여자의 허리에 차거나 이불에 숨겨두는데, 도끼가 자궁의 문을 열어주어 자식을 낳을 수 있다는 주술적인 행위이다. 딸 부잣집에서 이후에 사내를 출산하기를 바라는 맘으로 막내 딸에게 남(男)를 붙이는데, 평생의례의 기본적인 내용은 한국과 조선족 사이에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밖에 출산의례에는 태몽을 통해 남녀 아이를 미리 점치기도 하였으며, 임산부에게 행동이나 언행, 음식 등에 많은 금기가 존재한다.

해산 후 풍속에는 산모의 건강과 영아의 건강장수를 위한 풍속, 산모의 젓이 많이 나오기를 기원하는 풍속, 금기 풍속, 영아 이름짓기 등이 이루어진다. 아이의 해산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볏짚에서 해산을 하고 산모는 미역국을 먹었다. 또한 산모는 차거나 굳은 음식을 석 달 동안 먹거나 마시지 않았으며, 집 밖 출입도 삼간다. 아이의 건강을 위해서는 삼신할매에게 기원을 하고, 갓난아이를 함지에 담고 그 안에 칼을 하나 넣어서 찬장 위에 잠시 올려두었다가 내리면 아이의 명이 길어진다고 여긴다. 산모와 어린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불길한 사람의 집안 진입을 막기 위해 대문에 금줄을 건다. 금줄은 경상도 출신 마을에서만 7주일 또는 21일간 걸었다. 산모의 젓이 많이 나오기를 기원하는 풍속으로 삼신할매나 용왕, 산신령께 치성을 드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영아의 이름은 속신적인 관념에 의하여 이름을 짓거나 일반적인 관습에 따른다. 전자의 대표적인 예로 아명을 짓는 행위이고, 후자의 경우는 남자와 여자아이에게 별도의 이름을 지어주는 것으로 여자의 경우는 순(順)자를 남자인 경우에는 철(哲)자를 많이 사용하였다.

2) 백일과 돌

아이가 태어난 지 백일이 되면 백설기, 수수팥떡, 조찰떡, 송편 같은 음식을 마련다. 백설기는 결백한 마음, 수수팥떡은 부정과 재액 축귀, 조찰떡은 단단하게 성장하고, 송편은 속이 차라는 것을 상징한다. 백설기는 100사람이 먹으면 좋다고 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나누어준다. 이날 축하객들은 태실이나 돈을 가져와서 장수하라는 의미로 태실은 아이의 목에 걸어준다. 가족과 친지들은 모두 밥과 미역국, 떡 등을 먹는다. 한국과 별다른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돌은 어린애가 출생하여 처음 맞이하는 생일로 돌복, 돌상과 돌잡이를 행하였다. 돌복은 색동저고리, 남색조끼, 분홍바지를 입히고 복건을 씌우고 타래버선을 신는다. 허리에는 수복(壽福)자가 들어간 돌주머니와 은장도, 은도끼, 동전 같은 장신구를 달아맨다. 돌상은 병풍 앞에 차리고 그 위에 밥과 미역국 각각 3그릇, 팥, 쌀, 붓, 종이, 실, 돈 등을 올려놓는다. 1950년대 이전에는 무엇보다도 먹는 것과 무병하게 잘 자라는 것이 가장 큰 관심사이었기에 쌀과 실 같은 것을 돌쟁이가 가장 쥐기 편리한 첫줄의 중간 위치에 놓았다. 지역에 따라 돌상에 올려둔 것들이 다른데, 길림성 장백조선족자치현에서는 쌀과 냉면 각각 3그릇, 팥소를 넣은 송편 3그릇을 놓으며, 요성성 훈강일대의 평안도 출신 조선족들은 채 위에 무쇠가마솥 뚜껑을 뒤집어 그 위에 음식과 물건을 놓는다. 무쇠같이 아이가 튼튼해지기를 기원하는 것이다. 그런데 냉면, 가마솥 뚜껑 등은 한국의 돌 의례에 보이지 않는 상징물로 지역적 특색이 드러난다.

3) 관례와 계례

조선족은 1930년대 이전까지는 관례와 계례를 행하는 사람이 있었다. 『훈춘현지』(1927)에는 “남자가 관례를 치르지 않으면 비천한 사람으로 취급한다”, “관례를 치르면 성인으로 대우를 받는다.” 등의 내용이 적혀 있다. 길림성 장백현 일대에서는 결혼 하기 전날 저녁에 관례를 행하는데, 덕망이 높은 사람이 신랑에게 망건과 갓을 씌워준다. 이 방식은 1945년 이전까지 지속되었다.

계례도 『훈춘현지』(1927)에 보면 일반적으로 보편화되지 못하였으며 그 형식도 매우 간단함을 알 수 있다. “결혼하기 전에는 머리를 땋아 등 뒤에 드리우고 결혼하는 날에 머리를 쪽지고 비녀를 꽂는다. 이것을 겨레라고 한다.”고 적고 있다. 겨레가 혼례와 함께 진행된 셈이다. 관례와 계례 풍속이 사라진 것은 한국도 마찬가지이며, 한국에서는 성년의 날 행사의 일환으로 일부 진행되기도 한다.

4) 혼례

전통적 방식의 혼례는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창건 된 후 현저한 변화가 생기었다. 이전에는 중매자와 부모의 의향에 의해 남녀의 혼약이 맺어졌지만, 남녀의 자유혼인 방식으로 바뀌었다. 잔칫날에는 신랑이 말을 타고 신부가 가마를 타거나 신랑신부가 모두 가마를 타던 것이 신랑신부 대부분이 마차를 우차를 이용하였다. 사모관대를 하는 신랑이 극히 적고 중산복이나 양복을 입는 신랑이 많아졌고, 신부는 한복을 입고 너울을 썼으며 큰머리, 한삼 같은 소실되었다. 남녀의 청혼서, 허혼서 등도 폐지되고 남녀의 혼약을 법적으로 확인하는 혼인등록증이 허혼서를 대체하였다. 신부의 가마가 신랑집 마당으로 들어갈 공중에 대고 총을 쏘거나 가마가 불을 넘어가는 풍속은 사라졌고, 연변일대에서는 신랑의 부모가 춤을 추며 신부를 영적하는 풍속이 나타났다. 교배례, 합근례 등이 모두 사라지고 전안례도 간소화되었다. 신랑다루기 풍속도 사라지고 신랑신부가 손님들과 함께 오락활동을 벌리는 풍속으로 바뀌었다.

1980년대 이후에는 전문적으로 혼례식을 거행하는 예식장이 생기었다. 예식장의 구조는 대체로 극장과 비슷하다. 무대의 정면에 “OOO, OOO 결혼식”이라고 쓴 현수막을 걸고, 그 아래 양편에 커다란 꽃바구니를 하나씩 놓고 무대복판에 음식을 풍성하게 차린 큰상을 놓는다. 그리고 신랑신부의 부모와 친척들이 무대아래의 양편에 갈라 앉되 신랑측 친척들은 신랑편 방향에 앉고 신부측 친척들은 신부편 방향에 앉는다. 그 뒤에 내빈들이 앉는다.

결혼식은 주례의 주최 하에 진행되며, 결혼식 절차는 혼례식 시작 선포-신랑신부 입장-주례사-결혼증서발급-예물교환-신랑신부 상견례-양가 친척 상견례-내빈 축사 및 기념품 증정-신랑신부 답사-신랑측 대표 손님에게 감사-신랑신부 퇴장-축가-폐식—기념사진 촬영 등으로 이루어진다. 위의 절차 중 결혼증서 발급, 양가 친척 상견례, 내빈 축사 및 기념품 증정 등은 중국 한족 혼례의 영향이 크다.

5) 회갑

조선족은 부모의 나이가 환갑년이 되면 자식들이 부모의 건강장수를 경축하기 위하여 주동적으로 잔치를 베풀어주었다. 환갑의례는 집안 정주간이나 마당에서 거행하였다. 환갑인은 병풍을 등지고 앉되 남좌여우의 순서로 않으며 배동자들도 역시 환갑인의 양쪽에 남좌여우로 앉는다. 환갑상은 이미 가정을 이룬 자식들과 근친들이 제각기 한상씩 올리는데 그중 가장 풍성한 것을 환갑인에게 올리고 나머지는 배동자들에게 올린다. 배동자들은 환갑인과 항렬이 같은 근친들이 앉는다. 환갑잔치에 참가하는 손님들은 돈을 다소 부조하는 경우도 있고 옷감을 가져오는 경우도 있다. 옷감은 증송한 사람의 이름을 공포한 뒤 집안이나 마당에 매놓은 밧줄에 걸어놓거나 한 옆에 쌓아놓는다.

회갑절차는 배동자들에게 술을 따르고 절을 하는 축수는 직계, 방계, 남자, 여자, 연장자, 연손자 등의 순서로 한다. 옷차림은 환갑인이나 자손 모두 한복을 착용한다. 상차림은 여러 가지 과일류로부터 당과류, 떡, 국수, 산적, 편육, 구이, 회, 찜, 신선로 등 최대한 상에 올린다. 상 1열에는 과일류, 2열에는 당과휴와 떡을 놓았는데, 혼례상보다 음식 가짓수가 많고 화려하게 차린다.

1980년대 이후 환갑잔치는 거행하는 장소, 옷차림, 상차림, 축수 형식 등 다방면에서 새로운 변화가 생기었다. 도시인들은 전문적인 예식장에서 환갑 축연을 벌려고 환갑상도 자식 대신 예식장에서 차려준다. 환갑인의 복장은 남성인 경우에는 한복저고리에 조끼를 입고 중절모를 쓰는 경우가 많고 양복 차림을 하는 경우도 있다. 여성은 지속적으로 한복을 입는다. 회갑연은 사회자로부터 환갑인의 이력과 공적을 간단히 소개하고 자식대표가 내빈들에게 축사를 올린다. 이어서 자손들과 친척, 손님들이 환갑인에게 술을 따르고 절 혹은 경례를 하거나 악수를 하며 축수를 올린다. 축수를 하는 과정에 가수를 청하여 노래를 부르며 자식들은 수시로 나와 춤을 춘다. 축수가 끝나면 함께 음식을 나누고 오락을 한다. 환갑연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모두 돈을 부조하는데, 그 액수는 지방에 따라 다르다.

6) 진갑연, 고희연, 8순 잔치, 졸수연, 회혼례

조선족들은 70세의 고희연을 ‘진갑’의 명칭으로 쇠고 있다. 80살의 8순 잔치와 90세의 졸수연을 베푸는 사람은 많지 않으나 일부 지방과 가문에서는 상당히 중시하고 있다. 회혼례는 결혼 60주년을 경축하는 의례로 최초에는 부부 중 한 사람이 살아 있어도 결혼잔치를 베풀었다. 회혼례는 회혼상을 받고 자손들과 하객들의 축수를 받는 것이 주요한 내용이다. 의례절차는 환갑연과 비슷하다.

7) 상례

1960년대 이전까지는 전통상례 절차를 따랐으나 그 이후 시기에는 많은 부분에서 변화를 가져와 간소화되었다. 토장에서 화장으로 바뀌고, 장례일도 3일장 혹은 7일장을 실시하다가 1980년대 이후에는 2일장 혹은 당일장으로 개변되었다. 물론 3일장 혹은 5일장을 하는 곳도 있다. 또한 장일은 짝수를 택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이런 관념도 타파되었다.

상복도 1960년대 이후 굴건제복에서 남자들은 베감투로, 여자들은 흰 치마저고리로 상복을 대체하였다. 그 외에 흰 종이꽃, 흰 완장, 흰 댕기 등 표식이 새로 생겼다. 가령 남성 상제와 복인들은 모두 가슴에 흰색 종이꽃을 한송이 달고 여성들은 머리에 흰색 댕기를 한오리 맨다. 손님들도 가슴에 흰 꽃을 한송이 단다.

장례절차는 초상과 장례가 포함된다. 초상 기간에는 속광·초혼·습·소렴·대렴·성복 등이, 장례에는 천관·발인·출상·안장 등의 절차가 포함된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에는 초혼·염·출상·안장[화장] 등의 절차밖에 남지 않았으며 축문도 사라졌다. 운구는 1960년대 이전에는 마을마다 상여계가 조직되어 상여로 운반하였으나 1980년대 이후에는 소수레나 자동차로 시신을 운구한다.

8) 제례

조선족의 제례는 소상(小祥), 대상(大祥), 기제(忌祭), 졸곡(卒哭), 담제(禫祭), 생일제사, 명절제사, 삭망(朔望)제사 등이 포함된다. 소상은 초상으로부터 1주년만에 지내는 제사로 민간에서는 “돌제사”라고 한다. 대상은 초상으로부터 만 2년이 되는 기일에 지내는 제사로 민간에서는 “3년 제사”라고 한다. 기제는 초상으로부터 4주년이 되는 해부터 매년 기일에 지내는 제사를 말한다. 졸곡은 초상으로부처 3달이 되어 처음 맞는 정일(丁日) 혹은 해일(亥日)에 지내는 제사이다. 담제는 초상으로부터 27번째 되는 달에 지내는 제상이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 조선족의 제례는 우제·소상·대상·생일제사·명절제사 등만 남아 있고 다른 제사는 모두 사라졌다. 우제는 화장한 이튿날 화장터의 유골함 보관처에서 안신제를 지내고, 화장 후 3일만에 삼우제를 지낸다. 명절제사는 청명, 단오, 추석 등에 지내는 제사를 가리킨다.

참고문헌
  • 『중국 요령성 한인 동포의 생활문화』(국립 민속 박물관, 1997)
  • 『재중 교포의 민속-경기 출신 집단 마을 조사 보고서』(국립 문화재 연구소, 2002)
  • 천수산, 『중국 조선족 풍속』(북경 민족 출판사, 2008)
  • 이광규, 「혼인 및 가족 생활」(『중국 길림성 한인 동포의 생활 문화』(국립 민속 박물관, 1996)
  • 김광억, 「의례와 신앙생활」(『중국 길림성 한인 동포의 생활문화』(국립 민속 박물관, 1996)
  • 조강희, 「가족과 친족생활」(『중국 흑룡강성 한인 동포의 생활문화』(국립 민속 박물관, 1998)
  • 김광억, 「의례와 신앙 생활」(『중국 흑룡강성 한인 동포의 생활 문화』, 국립 민속 박물관,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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