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속

한자 民俗
중문 民俗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성격 민속
정의

습관, 신앙, 전설, 기술 등 조선족 사회에 전승된 문화.

개설

조선족의 풍속은 19세기 말엽 한반도에서 이주하여 중국에 뿌리를 내린 지 백여 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생활 환경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커다란 변화를 겪었고 점차적으로 조선족만의 독특한 특색을 지닌 풍속으로 발전하였다.

중국으로 이주해 온 대다수의 사람들은 한반도에서 제일 빈곤한 계층에 속하는 사람들로 대부분은 농민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조상들이 조선 반도로부터 가지고 들어온 풍속은 조선 시대 사회에서 빈민 계층에 속하는 풍속이었다. 빈민 계층의 생활은 바로 조선족 최초의 풍속의 특징으로 음식, 복식, 가옥, 일생 의례 등 여러 면에서 나타나고 있다.

음식

일상 생활의 음식은 대체로 채소 위주의 식단이다. 중화인민공화국이 생기기 전 조선족은 조밥과 강냉이죽을 일반적인 주식으로 삼았으며, 된장국과 김치는 끼니마다 빼놓을 수 없는 부식물이었다. 그리고 가을철이 되면 배추로 김치를 담가놓고 겨우내 중요한 부식물로 삼았다.

어려운 시절에 기근과 고비를 넘기는 음식이 다양하였는데, 예를 들면 쑥이나 소나무 속껍질, 느릅나무 뿌리 같은 것을 가공하여 쌀가루에 반죽하여 쑥떡이나 송기떡, 냉면 등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감자는 조선족들이 한반도에서 중국으로 이주해 온 다음 해에 가장 많이 먹은 주식으로서 감자를 원료로 하여 감자떡, 농마국수, 감자엿, 분탕 등 여러 가지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그리고 산간 지대에 살고 있는 조선족들은 봄철이 되면 여러 가지 산나물을 즐겨 먹는다.

조선족들은 차를 마시는 습관이 없으며 지금도 농민들은 차를 마시는 사람이 거의 없다.

복식

중화인민공화국이 설립되기 전 조선족 농촌에서는 보편적으로 남경 여직(男耕女織)의 생산 방식이었다. 1930년 전후로 동북 지방 각 지역의 시장에는 목천, 비단, 세루, 목세루 같은 옷감들이 많이 나와 있었다.

하지만 조선족 인구에서 90%를 차지하는 농민들은 돈이 없어서 이러한 옷감들을 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집집마다 삼을 재배하여 베천을 짜서 옷을 지어입거나 베천을 목천으로 바꾸어 옷감으로 사용했다. 조선족이 흰옷을 즐겨 입어서 ‘백의 민족’으로 불려왔지만 실제로 모든 조선족들이 흰옷을 즐겨 입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서당 훈장을 제외하고는 조선족 남자들 가운데 도포를 입고 정자관이나 유건 같은 모자를 쓰고 다니는 사람은 아주 드물었다. 이 시기의 조선족은 남녀를 막론하고 두루마기를 예복으로 입고 다녔다.

가옥

조선족의 집은 ‘一’자형으로 지었으며 안채, 사랑채, 행랑채와 같은 구별이 없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조선족들이 서민계층에 속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양반들처럼 남녀 유별의 관념이 강하지 않아서 안채와 사랑채가 따로 없었고 또 머슴을 두지 않았으니 행랑채도 없었던 것이다.

상례와 장례

조선 시대의 상례와 장례는 매우 복잡하였지만 조선족의 상례와 장례는 매우 간단한 편이다. 조선족들의 초상 기일은 3일간, 5일간, 7일간, 9일간으로 되어있으며 한 달을 넘는 경우는 드물었다. 조선족의 출상과 안장에는 천구, 하관, 사후토, 성분 등 다섯 가지 절차만 포괄되어 있다.

제사

조선족은 기일 제사와 명절날의 차례만 지내고, 일부 사람들이 10월에 묘제를 지냈다. 제사를 지낼 때는 지방을 세우고 제사를 지낸다. 사당은 개별적으로 서당의 훈장들이 뒷마당에 짓기도 하고, 일반인들은 집안 고방에 사당을 꾸미고 제사를 지냈다.

한족 풍속의 영향

조선족은 주로 동북의 3성과 내몽고 지방에서 살고 얼마 되지 않는 사람들이 관내 각지에서 흩어져 살고 있다. 조선족의 분포 현황을 살펴보면 넓은 지역에 퍼져 살면서 또한 작은 규모의 집거 지역에 모여살고 있다.

도시에서는 한족과 다른 소수 민족들과 어울려 살고 있고, 농촌에서는 조선족이 대부분이거나 또는 조선족, 한족, 다른 민족이 뒤섞여 살고 있다. 이러한 거주 환경에서 오랫동안 한족 사람들의 영향으로 말미암아 조선족의 생활 풍속 가운데는 한족이나 기타 민족들의 풍속이 들어와 자리 잡게 되었다.

1) 음식

민족 간의 영향은 음식에서 보다 뚜렷하게 나타난다. 조선족이 한반도에서 이주해 왔을 당시에는 일상 생활에서 들기름이나 참기름을 먹었다. 그런데 지금은 콩기름을 더 즐겨 먹는다. 본래 조선족의 음식 습관은 기름진 음식을 즐기는 편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제는 일상생활에서 기름에 지지고 볶고 튀긴 음식도 많이 먹고 있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조선족은 고수를 ‘빈대 냄새 나는 풀’이라고 하면서 잘 먹지 않았는데 지금은 모두 맛 좋은 나물로 먹고 있다.

2) 가옥

전통적인 조선족 가옥은 지붕 형태가 맞배형, 우진각형, 합각형 등 3가지로 나뉘며 실내구조 형태는 외통형과 양통형으로 나눈다. 두 가지 유형 모두 통 온돌로 되어 있다. 길림성의 연변장백조선족자치현, 흑룡강성의 목단강 지구, 요령성의 환인현, 관전현 등에 살고 있는 조선족들은 전통적인 조선족 가옥에 거주하고 있다. 기타 혼합 지구에 살고 있는 조선족들은 만족식 가옥에 거주하고 있다. 만족식 가옥은 외통 3칸으로 되어 있는데 중간은 작식칸이고 양편은 침실로 되어 있으며 침실의 온돌은 남북온돌 혹은 한쪽 온돌로 되어 있다.

3) 명절

조선족의 전통 명절은 음력설, 정월 보름, 한식, 단오, 추석, 동지 등이 있다. 잡거 지구(雜居地區)에서 살고 있는 조선족들이 한족의 풍속을 모방하여 음력설이 되면 문설주에 주련(柱聯)을 써서 붙이고 출입문에는 ‘복(福’) 자를 붉은 종이에 써서 거꾸로 붙인다. 음력 설날에 조선족이 먹는 전통 음식은 만둣국이다. 그런데 지금은 물밴새(水餃)를 먹으며 또 일부사람들은 한족식으로 물밴새를 싸서 끓여놓았다가 고기 국물에 넣어 먹기도 한다.

정월 보름날 조선족들이 먹는 전통 음식은 오곡밥인데 지금은 대추를 섞은 찰밥을 먹으며 위에씨아오(元霄)도 먹는다. 8월 추석은 조선족이 조상 무덤에 벌초를 하고 제사를 지내는 날이다. 이날이 되면 마을에서 소를 잡고 햇곡식으로 밥을 짓고 떡을 만들어 조상에게 천신한다. 그런데 지금은 한족들을 따라서 월병(月餠)을 먹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4) 결혼

동북 지방 각지에 살고 있는 조선족의 혼인 풍속을 살펴보면 여러 면에서 한족의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선족의 전통적인 풍속에는 혼례식 날 신랑이 신부를 모시러 갈 때 상객은 한 사람이고 후행은 2~3명이다. 여기서 상객이란 가족 대표자를 말하고 후행이란 상객을 따라가는 사람들을 말한다. 지금은 상객과 후행의 구별이 없이 상객이란 이름으로 7~8명 내지 10여 명씩 가며 신부측의 상객 인원은 더 많아 신락측 상객 인원의 배나 된다. 그리고 신랑측 상객 인원수는 반드시 기수(홀수)가 되어야 한다고 한다.

흑룡강성치치할시 일대의 조선족들은 결혼 잔치를 하는 날 신랑 일행이 신부를 모시러 신부집 마당 앞에 이르면 신부집 사람들이 대문이나 출입문을 안으로 잠근다. 신랑이 문을 두드리면서, “장모님 제가 왔어요. 문을 열어주세요!”라고 소리치면 장모가, “들어오려면 돈을 내야 하네!”라고 대답한다. 그러면 신랑은 돈을 내고 들어간다. 그리고 신랑이 큰상을 받을 때 신부측 친척들이 신부의 신발을 감춰놓고 신랑이 떠날 때 찾게 한다. 신랑이 신발을 찾으려면 또 돈을 내야 한다. 신랑이 신부를 모시고 신랑집 대문 앞에 도착하면 신랑측 친척들은 폭죽을 터뜨리며 환영한다. 이때 폭죽을 터뜨리는 것은 원래 폭죽 소리로 잡귀신들을 물리치는 한족의 풍속인 것이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조선족들은 결혼 잔치를 할 때 신랑측에서 신부의 어머니에게 ‘젖값’을 주는데 이것은 신부의 부모에게 신부를 키워준 대가로 지불하는 것이다.

도시에 사는 조선족들은 결혼 잔치를 치르는 전날 신랑 신부 양가에서 모두 연회를 베풀고 손님을 대접한다. 이때 신랑 신부가 함께 일일이 손님들께 술을 부어 올리며 담뱃불을 붙여드린다.

길림성의 장춘시와 김림시의 조선족들은 잔칫날을 받을 때 날짜가 겹친 숫자로 이루어졌거나 양력과 음력으로 모두 ‘8’자가 들어간 날짜로 정한다. 이것은 중국어에서 8자가 “부자가 된다(facai)”는 ‘發(fa)’의 발음과 비슷해서다.

조선족의 풍속은 한반도에서 이주해 올 때부터 가지고 온 것으로 조선족의 뿌리와 줄기가 되어 있는 풍속과 중국으로 이주해온 후 오랫동안 새로운 생활 환경 속에서 살아오면서 변화되었거나 새롭게 생긴 풍속, 두 가지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참고문헌
  • 김종국, 『중국 특색 조선족 문화 연구』(요령민족출판사, 2000)
이전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