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한자 言語
영문 language
중문 语言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언어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시대 현대/현대
정의

조선족 사회에서 사람이 생각이나 느낌을 나타내고 서로 의사 소통을 할 수 있는 음성이나 문자 따위의 체계.

중국의 조선족과 조선어(조선말)

중국의 한인들은 55개 소수 민족의 하나로 분류되어 ‘조선족’으로 불린다. 그 조선족이 말하는 언어를 ‘조선어’ 또는 ‘조선말’이라 한다. ‘조선어’라는 명칭은 북한에서도 쓰이고 일본에서도 학술 용어로 쓰이는 까닭에 그와 구별하기 위하여 ‘중국 조선어’라는 명칭을 쓰기도 한다.

조선어는 서사 규범의 성격을 가진 문어와 일상어로서의 구어로 나눌 수 있다. 서사어의 기반이 되는 문어는 국가 주도의 언어 정책에 의해 생성되고 또 그에 의해 변화를 겪지만, 구어는 언어 내부의 구조적 요인이나 사회 문화적 요인에 의해 역동적으로 변화한다.

조선어는 문어와 구어가 일정한 차이를 보인다. 문어는 과거 서사어의 전통을 이은 표준어에 한어(漢語)를 조선어로 규범화한 어휘들이 편입되어 그만의 체계를 형성해 왔고, 조선어 구어는 이주 전의 다양한 원적지 방언을 바탕으로 하고 여기에 지배 언어이자 공용어의 지위를 갖는 한어의 간섭을 끊임없이 받아 왔다.

중국 조선어의 문어

조선어 문어의 토대를 이룬 것은 전통적인 서사어와 함께 일제 강점기에 조선어 학회에서 제정한 「한글 맞춤법 통일안」및 표준어라 할 수 있다. 이것이 중국의 정치·사회·문화 흐름에 따라 오늘날과 같은 조선어로 점진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조선어가 지금과 같은 지위를 견고하게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중국이 정책상 소수 민족의 언어와 문화를 보존 유지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정책 시행의 밑바탕에는 스탈린의 언어관과 함께 소수 민족을 정치·사회적으로 통합하기 위한 목적이 깔려 있었다.

마르크스, 엥겔스, 레닌, 모택동의 정치 사상이나 지도 이념을 교육하고 널리 보급하는 데에는 한어보다 각 민족어를 이용하는 것이 효과적이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중국의 소수민족 보호 정책에 의해 조선어는 좀 더 안정적으로 그 지위를 보장받을 수 있었다. 여기에는 자신들의 모국어를 보존·유지 및 발전시키기 위한 재중 한인들의 끊임없는 노력이 있었다. 이는 중국 조선어와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었던 중앙아시아 한인들의 고려 말이 현재 소멸 위기에 처해 있다는 사실과 비교된다.

중국 조선어는 일제 강점기부터 써 오던 규범을 유지해 오다가 북한이 1948년에 제정한 「조선어 철자법」의 영향을 받기 시작하였고 이어 이른바 ‘주은래의 63선언’ 이후에는 급속히 북한의 언어 규범을 받아들이게 됨으로써 북한어의 영향을 받게 된다. 그리하여 맞춤법을 비롯한 중국 조선어의 어문 규범은 북한 조선어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예컨대, 두음 법칙을 인정하지 않는 점이나 띄어쓰기 등은 북한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문화대혁명 시기에는 한때 조선어가 위기에 처하기도 하였지만, 문화대혁명 이후인 1970년대 후반부터 조선어는 독자적인 어문 규범을 확립하게 되었다. 「조선말 ≪4법≫ 규범」(「조선말 표준 발음법」, 「조선말 맞춤법」, 「조선말 띄어쓰기」, 「조선말 문장 부호 법」)과 「조선말 어휘 규범」이 그것이다.

이러한 일들은 중국민족 사무국 산하의 동북 3성 조선 어문 사업 협의 소조 판공실과 중국 조선어 사정 위원회에서 관장하고 있다. 1995년에는 연변 사회 과학원 언어 연구소에서 『조선말 사전』(전 3권)을 간행함으로써 명실공히 조선어의 규범집과 사전을 온전히 갖추게 되었다.

중국의 조선어가 남북한의 언어와 차이를 보이게 된 원인 중의 하나는 어휘의 규범화 때문이다. 흔히 ‘명사, 술어 규범화’라 부르는 이 어휘 규범화 사업은 중국의 핵심적인 언어 정책의 하나로서 한어를 조선어로 대체하는 일을 말한다. 이는 중국의 주류 언어이자 공용어인 한어 어휘를 조선어 어휘에 편입하는 일이다. 이는 새로운 정치·사회·문화·과학·기술 등과 관련된 한어를 소수민족의 언어인 조선어로 바꾸어 보급하는 일이므로 중국 언어 정책의 주요 역점 사업이 될 수밖에 없다. 이 일을 위해 한어를 조선어의 체계에 맞게 번역하거나 한어를 한국 한자음으로 바꾸어 규범화하는데, 이때 북한의 조선어를 차용하기도 한다. 예컨대, ‘케이크’라는 뜻을 지닌 한어 ‘蛋糕’를 북한의 문화어 ‘단설기’로 규범화한 것이 그런 예이다.

중국이 개혁개방 노선을 택하여 시장 경제를 도입하고 또 최근 국제화·정보화 시대에 들어서면서 한어에도 새로운 어휘가 급증하게 되었다. 그러한 어휘를 중국 조선어 또는 북한의 문화어를 가지고 규범화하는 일은 한계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지금은 한국어를 받아들여 규범화하기도 하는데 이 중에는 영어에서 들여온 외래어도 있다. 예를 들면, 경기 부양책[刺激政策], 다기능청[多功能廳], 멀티미디어홀, 미분양 건물[空置房], 컬러링[彩鈴, color ring], 부동산 투기[炒房] 등이다.

또한 1990년대에 들어서서는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함경도 방언 화자들의 방언을 표준어로 사정하고 있다. 이는 연변 조선족의 생활 문화와 관련된 어휘를 표준어의 체계나 맞춤법 등에 맞게 표준어화 하는 일로 그 대상은 첫째, 표현을 섬세하고 다채롭게 하며 조선말의 어휘를 풍부히 하는 데 이바지할 수 있는 방언 어휘, 둘째, 광범한 조선 민중들의 언어 생활에서 적극적으로 쓰이는 생명력이 있고 조선말 발달 법칙에 맞는 방언 어휘이다. 이러한 규범화의 결과 조선말은 때로 한국의 표준어나 북한의 문화어와 차이를 보이면서 조선말만의 독특한 위상을 갖게 되었다.

중국 조선어의 구어

구어는 이주 전 원적지 방언이 바탕이 되고 여기에 중국 조선어 표준어, 한어의 간접 및 직접 차용어, 북한어, 한국어가 영향을 주어 자못 복잡한 성격을 지닌다. 또 같은 방언권 내에서도 조선어는 세대에 따라 현저한 차이를 보인다. 따라서 중국 조선어 구어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다원적인 접근과 기술이 필요하다. 언어가 늘 변화하듯 조선어도 끊임없이 언어 내적 또는 언어 외적 요인에 의하여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전통적인 지역 공동체에서 사는 노인층은 일상적으로 원적지 방언을 구사하며 한어는 대부분 모르거나 겨우 의사 소통이 가능한 정도이다. 그러나 교육을 많이 받은 젊은이들은 연변 표준어 또는 연변 표준어의 영향이 가미된 방언과 한어를 동시에 구사하는 이중 언어 사용자이다. 또한 대도시에 거주하는 젊은이들은 한화(漢化)가 급속히 진행되어 조선어보다는 한어를 즐겨 쓴다.

중국 동북 3성에는 한반도 각 지역의 방언이 고루 분포한다. 그러나 그 조선어 방언은 대체로 이주 후 각 조선어 방언의 내부 변화, 지역 방언 간의 상호 영향, 연변 표준어의 보급, 한어(漢語)의 직접 또는 간접 차용, 북한어 규범의 수용 등으로 변화를 거듭해 왔다.

연변조선족자치주 용정시 등에서는 이주 코이네(koine)로서의 발달을 보여 주는데, 주로 초기 이주민의 방언인 함북 방언으로 통일되어 가는 양상을 보인다. 예컨대 연길, 용정, 화룡 등지의 친족어에서 할아버지를 ‘아바이’라 하고, 할머니를 ‘아매’라 하는 것이 그러한 예이다. 이주 전 원적지 방언(함경도 방언 및 육진 방언)에서는 할아버지를 ‘아바니, 아바이, 클아바니, 클아바이, 큰아바니, 큰아바이, 하나바니, 아배’, 할머니를 ‘클아매, 큰아매, 아매’라 하였다.

최근에는 한국과의 왕래가 잦고 또 한국에서 송출하는 텔레비전 방송을 시청하는 일이 많아 한국어의 영향도 증가하고 있다. 그 상징적인 예가 중국 동북 3성에서 널리 쓰이는 ‘아빠’라는 호칭어이다. 또 젊은이들은 인터넷을 통하여 한국어를 접하는 일이 많다.

중국 조선어의 현재

중국의 개혁개방 이전 민족 중심의 지역 공동체에서는 자신들의 언어와 문화를 보존하면서 정체성을 지켜 왔다. 이후 교육 기회가 신장되어 조선어 언어 규범이 널리 보급되고 연변 표준어 중심으로 점차 변화함에 따라 조선어는 세대에 따른 차이가 매우 크게 되었다. 한편, 개혁개방 이후 산업이 발달하여 사람들이 점차 대도시로 이주하면서 조선족의 한어 사용은 날로 증가하고 있다.

또한 한국 등 외국에 체류하는 조선족이 급증하면서 조선어의 기반이 되는 한인 공동체의 붕괴가 가속화되고 있다. 농촌 지역에서는 조선족 소학교가 점점 폐쇄되고 아이들이 한족 학교에 입학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으며, 이로 인해 조선어를 체계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기회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러한 사회 변동으로 말미암아 조선어의 위상이나 지위는 점차 약화되고 있는 추세이다.

참고문헌
  • 최윤갑·전학석, 『중국 조선 한국 조선어 차이 연구』(연변인민출판사, 1994)
  • 북경대학 조선 문화 연구소 편, 「언어사」(『중국 조선 민족 문화사 대계Ⅰ』, 민족 출판사, 1995)
  • 곽충구, 「재외 동포의 언어 연구」(『어문학』 69, 한국 어문 학회, 2000)
  • 김기종, 「중국 조선어에서의 방언 어휘 규범화 작업」(『중국 조선 어문』 6, 길림성 민족 사무 위원회, 2011)
  • 박경래·곽충구·정인호·한성우·위진, 「재중 동포 언어 실태 조사(보고서)」(국립 국어원, 2012)
  • 연변 통신(www.yanbianforu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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