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한자 敎會
중문 教会
분야 종교/기독교|역사/근현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상세정보
성격 종교 시설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55년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78년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79년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97년
정의

중국 동북 3성 내 조선족 사회의 그리스도교 신앙 공동체.

개설

중국 동북 3성의 조선족 사회는 한말 재해와 한해, 그리고 독립운동을 위한 망명 등으로 형성되었다. 이들 조선족 사회는 이주와 함께 종교도 함께 포교되었다. 기독교는 일제 강점기 은진중학교 등 각지에 학교를 설립하여 민족 교육을 전개하였고, 대한 국민회 등 독립운동 단체를 조직하여 항일 민족 운동을 전개하였다.

해방 후, 대부분의 이주 한인들이 귀국함에 따라 대다수의 기독교인도 귀국하여 종교적 기능을 상실하였다. 더욱이 중국의 민족 정책과 종교 정책에 따라 교회의 유지가 어려웠다. 이러한 가운데서도 조선족 기독교 신자는 약 2천여 명이 달하였다. 1955년에는 연길에서 기독교 애국 위원회를 선포한 바 있으며, 신자도 5천여 명으로 늘어났다.

조선족 종교 생활의 활성화

1978년 중국의 11기 제3차 전원 회의에서 민족 정책과 종교 정책의 변화로 조선족의 종교 생활도 새로운 활성기를 맞이하였다. 동북 3성 조선족 사회 각지에 기독 교회가 복원되거나 회복되었다. 요령성의 조선족 기독 교회인 서탑 교회는 1979년 심양시 정부가 그동안 소유하였던 교회를 돌려주고 3만원을 지원함으로써 교세를 회복하기 시작하여 신자가 8백여 명에 이르렀다.

1980년대 들어 하얼빈, 목단강, 장춘, 길림, 대련, 단동 등 도시의 조선족 신자들이 중심이 되어 교회를 세움으로써 교세가 크게 확장되었다. 1993년 3월 훈춘시 조선족 기독교 신자는 121명이었지만 1992년에는 1,210명으로 비약적으로 발전하였다. 1996년 연길시의 조선족 기독교 신자는 1,500여 명이었다. 1997년 연길시에는 동북 3성에서 가장 큰 연길시 기독 교회당이 세워졌는데, 신도 수는 6천여 명으로 이중 대부분이 조선족이다.

조선족이 기독교를 신앙하는 이유는 첫째 집단적인 사회 생활에 대한 욕구, 둘째 불행한 운명의 구원, 셋째 세속적인 현실을 회피하는 하나의 수단, 넷째 가정의 전통적인 신앙의 영향, 다섯째 신비감에 의한 미혹 등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동북 3성 대표적인 조선족 기독교 교회는 심양의 서탑 교회, 연변의 연길 교회, 하얼빈의 임마누엘 교회 등이다. 연길 교회의 신도 수는 1만여 명이 달할 정도로 대형 교회로 성장하였다. 2006년 현재 연길을 중심으로 조선족 침례 교회는 87개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한국과 중국의 외교 수립 이후 조선족 사회는 해체의 길을 들어섬에 따라 기독 교회도 변화를 보이고 있다. 조선족의 한국 및 중국 내의 도시로 이주함에 따라 문을 닫거나 노인 중심의 농촌 교회가 적지 않게 늘어나고 있다. 1978년 설립된 용정 교회는 초기에는 신도수가 1,500여 명이었지만 최근에는 800명 정도로 줄었다. 그럼에도 불가하고 조선족 사회에서 기독교의 확장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참고문헌
  • 강돈구 외, 『현대 중국과 한국 종교』(한국학 중앙 연구원 종교 문화 연구소, 2010)
  • 고병철 외, 『간도와 한인 종교』(한국학 중앙 연구원 종교와 문화 연구소, 2010)
  • 계림, 「중국 조선족의 종교 신앙에 대하여」(『한국 종교』16, 원광 대학교 종교 문제 연구소, 1991)
  • 최봉룡, 「중국의 종교 정책과 조선족의 종교 문화」(『한국 종교』28, 원광 대학교 종교 문제 연구소, 2004)
  • 강돈구,「현대 중국의 한국 종교-동북 삼성을 중심으로-」(『종교 연구』54, 한국 종교 학회,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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