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현 박가구촌[본계시]

한자 盖縣 朴家溝村[本溪市]
중문 盖县朴家沟村[本溪市]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요령성 본계시 산성자향 박가구촌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성격 마을
가구수 100가구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66년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80년대
현 위치 요령성 본계시 산성자향 박가구촌
정의

요령성(遼寧省) 본계시(本溪市) 산성자향에 위치한 조선족 마을.

개설

요령성 본계시 산성자향에 위치한 박씨 성을 가진 조선족 집성촌이다. 100세대의 조선족이 거주하고 있다. 장대선 철도와 약 6㎞ 떨어진 거리에 위치하며, 웅악성 남쪽 망아산 동쪽으로 3㎞ 정도 떨어져 있다.

명칭 유래

당나라 시대, 고구려의 박씨 성을 가진 오누이가 전란을 피해 안자산(鞍子山)에 피난하게 되었다고 한다. 하룻밤 사이에 갓 심은 조가 노랗게 익어 안자산 자락에 터전을 잡고 살게 되었다고 한다. 오누이의 성이 박씨라서 이후 정착한 사람들도 오누이의 성을 따라 ‘박가구(朴家口)’라 이름하였다고 한다.

형성 및 변천

박가구촌은 박씨 성을 가진 조선족들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집성촌이다. 박가구촌의 박씨들은 『박씨 종보』를 통해서 박대, 박삼, 박오 등을 자신들의 선조로 인식하고 있다. 선조들은 이름도 없이 박대, 박삼, 박오 등으로 일컬어지고 있으나 세 명의 선조로부터 15대까지 대략 350년의 족보를 유지하고 있다.

마을 뒤 안자산이라는 높은 산이 있는 굴속에서 박가촌의 조상들이 살기 시작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당나라 시기 설인귀가 요동 원정에서 고구려 병사 20여 만 명과 전쟁을 치렀는데, 그 때 남은 고구려인의 후손이 박가촌의 사람들이라고 한다. 1966년 안자산의 산굴에서 구리 거울과 조선식 단지를 발견했다고 전한다.

현황

300세대가 거주했던 대규모 조선족 마을이었지만, 젊은이들이 대도시와 한국 등지로 이주하면서 현재 100세대 정도가 살고 있다.

박명진(1934년생), 박희파(1961년생) 부자와 인터뷰를 하였다. 박명진 할아버지의 족보는 문화 대혁명 때 사라졌다고 하며, 그들은 농사만 짓고 살았다고 한다. 박명진 할아버지는 자신들을 고구려의 후손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박가보 마을의 조선족 풍습은 여러 가지 남아 있다. 개고기를 즐겨 먹으며 족외혼의 전통을 계승하여 박씨들 사이에는 결혼하지 않는다고 한다. 설날에는 소규모의 조선족이 모여서 세배하는 전통을 유지할 뿐만 아니라 윷놀이를 즐긴다고 한다. 특이한 점은 박가보 사람들은 오랫동안 만주족으로 살다가 1980년대 비로소 조선족임을 밝혔다고 한다.

참고문헌
  • 「기사로 읽는 새 중국 60년 조선족 변천사-료령편』(『료령 조선 신문 보사』, 2011)
  • 강룡범, 「중국 료령성 개현 진툰향 박가구촌 조선족에 대한 역사적 고찰」(한국학 연구 3, 인하 대학교 한국학 연구소, 1991)
  • 손출일, 「중국 조선족 역사의 상한과 요령·하북의 박씨인들」(이화 사학 연구, 20·21, 1993)
  • 인터뷰(박명진, 남, 1934년생, 박가구촌 촌민, 2013. 1. 21.)
  • 인터뷰(박희파, 남, 1961년생, 박가구촌 촌민, 2013. 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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