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평촌[심양시]

한자 和平村[瀋陽市]
중문 和平村[沈阳市]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요령성 심양시 북릉향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성격 행정촌
가구수 850세대
인구[남/여] 2,500명
개설 시기/일시 1936년
변천 시기/일시 1990년대 중반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90년대 말
행정촌 요령성 심양시 북릉향
정의

요령성 심양시 북릉향에 속한 조선족 마을.

개설

심양시 우홍구 북릉향 화평촌으로 불리웠던 마을에 심양 화신 그룹을 유치하게 되었다. 심양 화신 그룹은 그룹의 형태로 연간 총 생산액 11억 원을 창출하는 기업이다. 1990년대 중반까지 농촌이던 이 지역에 공업, 상업 중심의 공업 단지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심양 화신 그룹 입주로 인한 도시 확장에 따라 1990년대 중반에 도시 마을로 변화했다. 화평촌이 지금까지 경제 조직인 그룹 기반으로 존재할 수 있은 것은 역대 촌 지도부가 토지를 잘 활용하여 현지 기업을 육성하고 한국 기업을 대표로 하는 외자 기업을 적극 유치해 튼튼한 경제적 토대를 닦아 놓았기 때문이다.

화신 그룹의 성장 전략

화신 그룹은 그룹의 경제 발전과 촌민의 삶의 질 제고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 전략적 목표를 세웠다. 화신은 외자 유치를 강화해 외자 기업을 유치하는 한편 해외로 진출하고 있다. 화신 그룹은 한국서울에 화신 그룹 서울 사무소를 개설하고 한국에 널리 홍보하는 한편 북한 시장으로도 진출했다. 이밖에 3환 도로 밖에 있는 460무 토지에 “한국 공업 단지”를 설립하고 외자 기업을 유치하고 있다.

화신 그룹에 있어서 땅은 보배이다. 토지와 우수한 인력을 바탕으로 오늘의 성공을 이룩한 화신 그룹, 진정으로 농민이 설립한 그룹으로 부를 축적하면서 조선족 사회를 위해 큰 기여를 하고 있다.

명칭 유래

신방자, 대리가로 일컬어져 왔다.

형성 및 변천

신방자, 대리가로 불렸던 이 촌이 위치한 명렴가는 심양시의 서쪽 황고구의 서남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1936년에 마을이 건립되었다. 해방 후 이 마을에는 요령성 내 각지와 흑룡강, 길림 등 타 지방에서 많은 이주호들이 밀려들며 규모가 비교적 큰 촌락을 이루게 되었다.

화평촌심양시 도시 변두리에 위치해 자연 환경이 우월한 만큼 일찍 1970년대부터 집체에서 기업을 꾸리기 시작해 1980년대에 흥성기를 이루었다. 당시 집체 기업의 발전과 공업화의 흐름으로 1990년대 말에는 외자 기업 22개를 포함해 촌의 기업이 50여 개에 달했다.

현황

2012년 기준으로 화신 그룹 산하에 850세대 2,500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참고문헌
  • 중국 조선어 방송 넷(http://www.krcnr.cn , 2012. 8.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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