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분류

홍기보촌[심양시]

한자 紅旗堡村[瀋陽市]
중문 红旗堡村[沈阳市]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요령성 심양시 신민시 호대향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성격 행정촌
인구[남/여] 290명
개설 시기/일시 1910년
변천 시기/일시 1958년
변천 시기/일시 1967년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45년 광복 전
행정촌 요령성 심양시 신민시 호대향[북위 41°49'03.61", 동경 123°05'55.21"]
정의

요령성 심양시 신민시 호대향에 있는 조선족 마을.

개설

홍기보촌은 인근에 소문이 자자한 조선족 마을이고, 역사가 적어도 백년은 된다. 마을 입구에 세워진 한자 너비, 두자 높이의 표지석의 정면에는 “홍기보촌(紅旗堡村)”이란 네 글자가 새겨져 있다. 화강암으로 된 표지석은 신민현 인민 정부 지명 판공실에서 1987년에 세운 것이다. 표지석에는 “이 마을은 중화민국 초기에 형성, 부근에 홍씨 가문의 땅과 그 선조들의 무덤이 있어 홍가총(洪家塚)이라 불렀다. 1958년 홍가보(洪家堡)로 개칭하였다가 1967년에 다시 홍기보(紅旗堡)로 개칭함.”이라고 적혀 있다. 여기서 마을의 지명 유래를 알 수 있다. 이후 “홍가보”가 “홍기보”로 개칭되었다. 이를 통해 “문화 대혁명”의 거센 바람이 불어쳤음을 쉽게 읽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 표지석에서도 마을 형성 시기를 단지 “중화민국 초기”라고 표기하고 있어 확실한 연도를 알기 어려웠다.

『촌지』에 마을 형성 년도가 1910년이라고 명백하게 적혀 있다. 1910년 길용만(吉用万)이라는 사람이 조선에서 들어와 황무지를 개간하여 수전 농사를 지었다.

명칭 유래

부근에 홍씨 가문의 땅과 그 선조들의 무덤이 있어 홍가총(洪家塚)이라 불렀다.

형성 및 변천

1910년 길용만(吉用万)이라는 사람이 조선에서 들어와 마을을 형성하였다. 1912년 조선에서 이들을 따라 또 3가구가 이 마을로 이사를 왔다. 1945년 광복 전까지 300호가 넘는 큰 조선족 마을로 거듭났다. 해방 후 마을의 조선족 호수는 계속 불어나 현재 호적에는 446호에 인구가 1,300명이다. 최근 10여 년간 해외 노무에 나가있는 촌민들이 급증하면서 마을에 남아 생활하는 촌민이 290여 명에 불과하다.

현황

1921년에 조선 학교를 꾸리기 시작, 당시 학생 수는 20명이였다. 2년이 지난 1923년에는 학생 수가 50여 명으로 늘어나 두개 반급을 운영하였다. 1928년에 이르러 100여 명을 초월하여 4개 반급을 운영하게 된다. 1938년 6년제 국민 우질 학교 시기에는 학생 수가 150명을 초과하고 1943년에는 학생 수가 400명을 넘어서면서 전성기를 맞았다가 “8·15 광복”을 맞아 많은 사람들이 조선으로 돌아가면서 학생 수가 40명으로 급감하는 저조기를 맞이했다. 그러나 1970년대와 1980년대 20여 년 사이 학생 수는 300여 명을 유지해왔다.

참고문헌
  • 『요령신문』(http://www.lnsm.lm.cn, 2014. 5.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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