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분류

중국 동북 3성 우리말 방언의 분포

한자 中國 東北 3省 우리말 方言의 分布
중문 中国东北3城韩语方言的分布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언어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시대 현대/현대
정의

구한말 이후 압록강, 두만강을 건너 동북 3성으로 건너간 조선인들의 우리말 방언의 분포와 차이점

동북 3성 우리말 방언 분포

조선족은 1860년대부터 일제 강점기 시대에 걸쳐 한반도 북부를 중심으로 한반도 각지에서 만주지역으로 이주했다. 대개 함경도 출신자들은 두만강을 건너 길림성에 정착했고, 평안도 출신자들은 압록강 건너편인 요령성으로 가는 경우 많았다. 이에 길림성에서는 함경도의 방언적 특징이, 요령성에서는 평안도의 방언적 특징이 강하게 남아 있다. 이를 대략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동북(함경도) 방언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흑룡강성목단강시연변두만강 연안 동부 지역은 6진 방언이다.

서북(평안도) 방언 : 요령성 중부·동부, 길림성 남부 지역이다.

동남(경상도) 방언 : 연변조선족자치주를 제외한 길림성 기타 지방, 흑룡강성 서북부와 서남부, 요령성 일부가 이에 해당된다.

중부·서남(전라도) 방언 : 어느 특정 지역이 없고 동북 각성에 산재하고 있다. 중부 방언은 길림성 유하현 강가점향(姜家店郷) 경기둔(京畿屯)이 대표적이다. 전라도 방언은 길림성 교하현 천북향(天北郷) 영진촌(永進村) 등에 분포한다.

이중 언어의 세대 간 차이와 민족어의 변종

이와 같이 지역에 따라 방언이 존재하지만 조선족들이 우리말을 사용함으로써 조선족으로서의 유대감과 통일성을 가지고 있는 동시에 한족(漢族)으로부터의 독립성과 차별성을 동시에 포함하고 있다. 즉 조선들은 이중 언어 사용자라는 점이다. 조선족 대부분은 조선말을 잘해야 하고 한족말도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특히 노년층에 비해 젊은층으로 갈수록 한족말 사용 능력의 필요성을 더 강하게 느끼고 있다. 그들은 대체로 조선말을 잘하고 있지만, 중국 사회에서 생활하려면 한족말을 알아야 한다는 처지와도 무관하지 않다.

노년층은 일상생활에서는 조선말을 가장 많이 사용하지만, 청년층에서는 조선말과 한족말을 비슷하게 사용한다. 이와는 달리 가정에서는 청년층도 조선말을 주로 쓴다. 또한 조선족끼리 이야기할 때는 조선말을 주로 사용하지만, 한족이 끼어 있으면 한족말을 많이 사용하여 자리에 따라 언어 선택을 달리 한다.

그런데 지역에 따라 방언이 차이가 나타나지만, 조선족 사회에서는 공통적으로 다양한 변종이 존재한다. 즉 이주 전 거주지 방언에서 유래한 변종, 북한말에서 차용한 변종, 그리고 한족말을 직접 차용, 간접 차용, 번역 차용함으로써 생긴 변종이 있다. 변종은 주거 유형(잡거 또는 집거), 지역, 세대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인다. 잡거 지역은 한족말의 직접 차용이 두드러지고 신어의 생성은 한족말(방언, 속어)의 차용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어휘, 음운, 문법, 의미 면에서 한족말의 간섭, 국어 원 방언 간의 융합, 북한말의 간섭, 남한말의 간섭, 자체 변종 등 다양한 분화상이 나타난다.

지역 방언에 따른 음운, 문법, 어휘 차이

지역적 방언에 따라 음운, 문법, 어휘 등이 각기 다르다. 대략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음운

서남 방언 지역에서는 단모음 [ø](ㅚ)와 [y](ㅟ)를 가지며 동남 방언 지역에서는 [ɛ](ㅐ)와 [e](ㅔ)가 구별되지 않는다. 한반도 북부 방언의 영향력이 강하여 일부의 /ㅈ/, /ㅊ/, /ㅉ/이 /ㄷ/, /ㅌ/, /ㄸ/으로 나타나거나, 모음 /i/, 반모음 /j/에 앞선 /ㄴ/이 어두에 오기도 하는 북부 방언의 특징들을 보인다.

또 동북 방언, 동남 방언 지역에서는 변별적인 고저 악센트를 가지며 소리의 높낮이로 단어의 뜻을 구별한다.

(2) 문법

표준어의 ‘-ㅂ니까/-습니까’가 동북 방언 지역인 길림성화룡시, 훈춘시에서는 ‘-ㅁ둥/-슴둥’으로 나타나고, 동남 방언의 특징을 보이는 흑룡강성 태래현에서는 ‘-ㅁ니꺼/-심니꺼’로 나타난다.

(3) 어휘

어휘는 중국어의 영향을 매우 많이 받았다. 어휘가 현대 중국어로부터 차용되었기 때문이다. 중국어 어휘를 한국 한자음으로 읽는 차용 어휘인데, 예를 들어, ‘판공실’을 중국어 간체로 ‘辦公室(사무실)’로 표기하는 경우이다. 그 외에도 중국어 발음을 따른 차용어이다. 성조의 탈락 등 조선어의 음운 체계에 맞춰 중국어 원음이 약간 변형되는 경우인데, 예를 들어, ‘땐노’를 중국어 간체로 ‘電腦’(병음: diànnăo, 컴퓨터)로 표기한다.

동북 3성의 방언의 현주소

(1) 연변조선족자치주

연변 지역은 주로 함경북도 이주민들에 의하여 개척되었으며, 현재 거주민의 대부분이 역시 함경북도 이주민의 2, 3대이다. 연변 지역에도 집단 이주 또는 자유 이주에 의하여 경상도나 평안도 등의 출신들이 있지만 극소수에 불과하다.

연변 방언은 방언학적 측면에서 볼 때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된다. 연변조선족자치주의 경신·반석·영안·밀강·양수·월청·개산툰·삼합 등의 지역은 ‘6진방언(六鎭方言)’, 기타 지역은 ‘함경북도 방언’으로 구분할 수 있다.

연변지역과 흑룡강성 남부에서 가장 가까운 방언은 주로 동북 방언이다. 이들 대부분은 함경도에서 이주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길림성의 다른 지역이나 요령성에서는 서북 방언계의 언어를 쓴다.

본래 한국에서 처음 이주할 때 마을이나 친족 단위로 이주하는 사례가 많았기 때문에 조선족촌 중에는 동네 전체가 서남 방언, 경기 방언, 동남 방언 등 특정지역 사투리를 쓰는 경우가 적지 않다.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 연변조선족자치구가 설치되고, 주은래가 총리로 재직 당시 "중국의 조선어는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북한)의 문화어를 표준어로 한다"는 조치로 북한의 문화어를 중심으로 발전했다. 특히 어휘에서 북한의 문화어에 영향을 받아 두음법칙을 인정하고 있지 않다.

그런데 1960년대 문화대혁명 당시 많은 조선어 서적과 사진, 문화자료들이 소실되었다. 당시 조선어로 된 책들 중 마오주의에 관련이 없거나, 한복 사진이 나오거나, 한글로 적은 편지가 나오기만 해도 조선 특무(간첩), 남조선 특무, 지방민족주의자로 몰려 처벌받거나 조리돌림 당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1992년 한국과 중국이 국교를 체결한 이후 동북 3성과 남한과의 교류가 잦아지면서 남한 표준어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다. 특히 연변 쪽 조선어 텔레비젼과 라디어 방송의 아나운서의 발음과 표현이 상당히 한국화 되었다. 한국 문화를 접할 수 있게 되면서 어휘 면에서 영향을 많이 받는다. 또한 한국에 많이 취업을 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많은 조선족 동포들이 표준어를 접하게 되었다. 조선문 서적의 발행량도 수익성 문제로 적어지는 바람에 한국 서적에 많이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2) 흑룡강성

하얼빈 시내에 거주하는 40대 이상의 조선족들은 조선말을 비교적 자유롭게 구사하나, 자기들끼리 이야기할 때는 수시로 한족말로 대화하는 전형적인 이중 언어 사용자들이었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조선말보다 한족말로 대화하는 것을 더 편하게 여기고 있다. 10대 후반의 조선족 중학교 학생들은 교내에서도 한족말로 말하는 것이 조선말로 하는 것보다 훨씬 편하고 자연스러울 만큼 한족말에 익숙하다.

이에 반해 인근의 아성구(阿城區)나 상지시(尙志市)에 있는 조선족 중학교 학생들은 교내에서 조선말을 사용하고 있다. 작은 도시인 아성구(阿城區)나 상지시(尙志市)에는 학업을 위해 집거지인 농촌에서 이주해 온 경우가 많아 상대적으로 조선말을 더 잘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하얼빈시 북쪽에 있는 도외구(道外區) 신발촌(新發村) 조선족 노인들도 대부분 어느 정도의 이중 언어를 사용할 줄 알고, 젊은층은 한족말을 사용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웠다. 일부 학생들은 조선말을 어느 정도 알아들을 수는 있지만, 구사할 줄은 모르는 경우도 많다.

이러한 현상은 조선족 촌이지만 조선족 인구의 감소와 학생 수 감소로 조선족 소학교가 문을 닫은 것도 큰 원인 가운데 하나이다. 이들은 어쩔 수 없이 한족 학교에 다니게 되면서 한족말을 모어로 사용하게 된 것이다.

상지시나 아성구의 조선족 노인들은 자녀나 손자 손녀들의 학교 뒷바라지를 위해 조선족 중학교 근처에 모여 거주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은 하얼빈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조선말을 더 잘 유지하고 있다. 상지시 주변 지역 농촌의 대규모 조선족 집거지가 거의 해체되고 몇 가구만 남아 명맥만 유지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농촌에서 이주한 분들은 상지시 조선족 중학교 인근에 있는 문구장(門球場)이나 상지시조선족노인협회에 나가 소일하는 경우가 많다.

목단강진에 거주하는 조선족의 수가 다른 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고 조선말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 조선말을 잘 구사하는 사람들은 인근의 조선족 집거지인 농촌에서 이주했거나 한국을 방문하여 체류한 경험이 있는 경우가 많다. 동경성진(東京城鎭) 조선족 집거지에 거주하는 30대 이상의 조선족들은 조선말을 잘하는 편이나 10대의 청소년 학생들은 한족말 사용이 더 자연스러운 이중 언어 사용자들이 대부분이었고 학생 수도 많이 줄었다.

(3) 요령성

단동 지역은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과 인접한 지역이기 때문에 평안도 지역 출신이 많아 평안 방언에 기반을 둔 조선어가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각지에서 조선족이 신흥 주거지로 유입되면서 조선어 간의 융합도 일어나고 있다. 다만 전통적인 농업 기반의 요령성 동항에서는 평안도 방언에 기반을 둔 조선어가 여전히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단동과 동항시 토박이 거주자들은 실제 생활에서 중국어를 상당히 많이 사용하고 있다. 이 지역에 조선족 학교가 하나밖에 없다는 사실이 영향을 미친 것이다. 실제 이 지역에서는 교육을 통한 조선어 교육 혜택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단동에 거주하는 젊은층 또한 언어 정체성의 심각한 혼란을 겪고 있다. 조선족 고유의 민족어인 조선어가 사멸될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에 대해 걱정 섞인 목소리가 심심찮게 들린다.

중국 조선말 표준어

조선말 표준어의 형성 과정은 다음과 같다. 해방 이후는 한글 맞춤법 통일안(1933)이나 사정한 조선말 표준어 모음(1936) 등에 의존하였다. 그러다가 1952년 조선족자치주 성립 이후에는 『동북조선인민보』가 주도하여 ‘명사, 술어통일위원회’(1953)가 만들어져 200여 개의 조선말 표준어가 사정되고, 또 『연변일보』의 주도로 소수의 표준어 사정되었다.

이후 중국에서의 ‘조선말 어휘 규범’은 1977년 이전까지는 대체로 북한의 규범을 따랐다. 이는 소위 ‘주은래의 63교시’에 의한 것이다. ‘63교시’란 주은래가 ‘중국 조선말은 평양 표준을 따르라’는 1963년에 내린 교시를 말한다. 이에 의거하여 어휘 규범은 대체로 북한의 『조선말사전』(평양: 과학원출판사, 1960~1962)을 따랐다.

1977년부터 1992년 한중 수교가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대체로 북한의 규범을 따르면서도 중국의 실정을 감안하여 ‘조선말 어휘 규범 원칙’, ‘조선말 4칙 규범’, ‘외래어 표기법’ 등과 같은 독자적인 규범을 마련하였다. 이렇게 북한말을 받아들이고 또 1978년 이후 본격적으로 ˂조선말 어휘 규범 원칙˃을 제정하여 새로운 ‘조선말 명사, 술어’를 규범화함으로써 조선말 어휘는 한국의 표준어와는 다른 이질적인 변종들을 가지게 되었다.

이렇듯 조선족들은 해방 이후 조선말의 규범화를 위하여 지속적으로 노력해 왔다. 한때 1960년대 중국의 문화대혁명 시기에는 조선말이 위기를 맞기도 하였으나, 중국의 소수민족 정책 및 민족어를 보존, 유지하고자 하는 전통을 바탕으로 오늘날과 같은 지위를 다시 회복하게 되었다.

어휘 규범화는 조선말 고유어를 대상으로 한 것도 있지만, 대부분 한족말[中國語]의 ‘명사, 술어’를 조선말로 번역, 차용하는 일에 중점을 두고 이루어지고 있다. 즉, 한족말에서 만들어진 신어(新語)를 조선말로 바꾸어 대체하는 일이다. 요컨대, 조선말의 규범화는 한족말에 기반을 두되 조선말의 어휘 체계를 고려하여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그밖에 조선말 방언을 표준어로 사정하는 일도 있으나 그리 활발하게 전개되지는 못하였다.

중국의 한족말[中國語]은 공용어인 까닭에 한족말을 조선말로 바꾸는 일은 필수적이다. 정치, 사상, 교양 관련 서적을 읽히거나 국가의 주요 정책을 널리 보급 선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한족말을 소수 민족어로 번역하는 일이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여건 속에서 비록 한족말 의존적이기는 하지만, 새로운 어휘를 규범화하고 그것을 조선말에 편입시키는 일은 조선말의 미래를 위해서 매우 중요하다. 중앙아시아의 고려말이 정체의 늪에 빠져 결국 소멸의 길을 걷게 된 역사적 사실을 상기하면, 중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조선말 어휘 규범화 작업은 조선말을 보존,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동력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조선말 규범집』(수정보충판)(연변인민출판사, 1996)에는 ‘방언 어휘 사정 원칙’이 있다. 이는 1990년 12월 중국조선어사정위원회 제7차 회의에서 심의, 채택되었다.

1. 우리말 표현을 더욱 섬세하게 하고 다채롭게 하며 조선말의 어휘 구성을 풍부히 하는데 이바지할 수 있는 방언 어휘는 표준 어휘로 인상시킨다.

2. 우리나라 광범한 조선 인민 대중들의 언어생활에서 적극적으로 쓰이는 생명력이 있고 조선말 발달 법칙에 맞는 방언 어휘는 표준 어휘로 인상시킨다.

이 원칙에 따라, 표준어로 대응시킬 수 없는 방언 어휘가 표준어로 사정되었다. 이렇게 방언이 표준어로 격상된 어휘는 대부분 연변조선족자치주에서 조선족들이 일상적으로 쓰는 말로서 본디 함경도 방언에서 유래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함경도 방언이지만 음운이나 형태를 기존의 표준어를 고려하여 수정한 예도 있다. 예컨대, 본디 함경도 방언 ‘오느비장’을 ‘오뉘장’이라 한 것이 그것이다. 『조선말 규범집』에는 표준어로 사정한 90개의 방언 어휘가 수록되어 있다. 몇 예를 보이면 아래와 같다.

가장치기/굴뱀/손군/새끼달이/푸들다/간삶이/개장즙/개엿/단지곰/도끼나무/돈가리/두렁서리/말단지/말새/사돈보기/오뉘장/깝치다/해나른하다 ……

그리고 아래와 같은 방언 어휘도 표준어로 삼았다.

① 표준어와 그 뜻이 미세한 차이를 보이는 방언. 예: 앙금-깡치.

② 표준어의 뜻보다 좁거나 넓은 뜻을 가진 방언. 예: 가다리-가랭이.

③ 표준어와 ‘뜻빛갈’이 다른 방언. 예: 로문하다-늙다.

예에서 ‘깡치’, ‘가다리’, ‘로문하다’는 모두 함경도 방언으로 조선족 자치주에서 흔히 그리고 널리 쓰이는 말이다. 이밖에 표준어와 동의어라 할 수 있는 방언 어휘로서 표준어보다 더 많이 쓰이는 것은 표준어를 버리고 방언 어휘를 표준어로 삼기도 하고 또 표준어와 방언 어휘를 모두 살려 복수 표준어로 삼기도 하였다.

새로 사정한 표준어는 조선족 자치주에서 구두어로 널리 쓰이는 것들인데, 역시 대부분 함경도 방언이다. 이렇게 사정한 표준어는 대부분 연변사회과학원 어언연구소에서 편찬한 『조선말사전』(연변인민출판사, 1992)에 수록되었다.

이에 따르면 북한에서 문화어로 오른 것도 있다. 예컨대, ‘손군, 굴뱀, 단지곰’ 따위가 그것이다. 또 ‘새끼달이’는 약간의 의미 차이를 보이기는 하나, 한국의 표준어에도 있다. 어떻든 조선말의 규범에 따라 많은 방언 어휘가 새롭게 조선말 표준어로 편입됨으로써 조선말에 새로운 어휘 변종이 생겨나게 되었다.

호칭을 통한 지역적 방언 유형

(1) 아버지 호칭

기초 어휘에 속하는 친족어 가운데 ‘부(父)’ 호칭어는 방언형이 다양하다. ‘부(父)’ 호칭어가 한족말[中國語]와의 접촉에서도 변화되기도 했다. 지역별로 나누어 ‘부(父)’ 호칭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고유어: 아바디, 아바지, 아버지, 아부지, 아빠

-한족말: 빠(爸), 빠빠(爸爸)

잡거 지역인 요령성에서만 한족말[中國語] 호칭어가 있다. 주로 젊은 세대가 사용한다. 그러나 집거 지역인 길림성과 흑룡강성에서는 한족말 호칭어가 전혀 나타나지 않아 대조적이다.

한편, 길림성과 흑룡강성에서는 ‘아부지’와 ‘아버지’가 두루 쓰인다. 노년층에서는 ‘아바지’와 ‘아바디’란 호칭도 사용한다. 한편, 그런데 ‘아바지’가 널리 쓰일 것으로 예상되는 요령성에서는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아바지’는 대개 평안, 황해, 함경도 지방에서 널리 쓰이는 호칭어이기 때문이다. 표준어 ‘아버지’로 어휘 대치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나이가 젊을수록 표준어 사용이 증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흑룡강성에서는 선대가 평안도 출신인 제보자들이 ‘아바디’라 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는데 이는 이른바 역구개음화의 예라 흥미롭다. 이러한 과도 교정형의 출현은, 노인층에서는 원 방언을 고수하려는 경향이 강하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것이다. 요컨대, 노년층은 선대 거주지 방언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고 그 이하 세대는 표준어 ‘아버지’와 ‘아부지’로 대치되었다. ‘아바지’는 [-친근], ‘아부지’는 [+친근]의 자질을 갖는다.

한편, 길림성과 요령성에서는 젊은 층에서 ‘아빠’를 쓰기도 한다. 한국말에서 유입된 ‘아빠’가 젊은 여성을 중심으로 점차 그 세력을 확장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어머니 호칭

‘어머니’의 호칭어는 유소년기에 부르는 명칭과 성년이 되었을 때 부르는 명칭이 다르다. ‘아버지’나 ‘아빠’처럼 어종에 따라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고유어: 어마, 엄마, 엄매, 옴마, 어마니, 어머니, 어머이

-한족말: 마마(媽媽)

집거 지역인 길림성과 흑룡강성에서는 한족말 사용을 볼 수 없지만 잡거 지역인 요령성에서는 한족말을 쓴다. ‘아빠’의 경우와 같다.

한편, 전통적으로 평북 방언에서는 ‘오마니’, ‘어마니’라 부르는데, 이곳 출신들이 많은 요령성에는 전혀 쓰지 않는다. 아버지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표준어 ‘어머니’가 그 세력을 확장하였기 때문이다.

길림성에서는 ‘어머니’의 방언형으로 ‘어마, 엄마, 어머니, 어마니, 어마이, 어마내’가 쓰인다. 함경도의 방언형은 ‘어마’(주로 유소년기의 호칭어로 동북 방언과 육진방언권에서 사용), ‘어마니’(육진방언권), ‘어머이, 어마이’(비육진방언권)의 세 유형이 있다. ‘어마니’ 호칭은 ‘아바지’의 경우처럼 노인층에만 남아 있다. 노년층은 대부분 선대 거주지 전통방언인 ‘어마’를 쓴다. ‘엄마’는 전체 응답자 중 13명이 쓴다고 하였는데 성에 따른 차이는 없다. 또 ‘어머니’와 함께 쓰는데 ‘엄마’는 주로 성년이 되기 전에, ‘어머니’는 성년이 된 후에 쓰곤 한다.

특징적인 사실은 전통 방언형 ‘어마니’, ‘어마이’, ‘어마이’가 점차 사라지고 표준어 ‘엄마’와 ‘어머니’만이 쓰이고 있다는 점이다. ‘아버지’처럼 나이가 젊을수록 표준어 사용이 증가하고 있다.

(3) 할아버지 호칭

할아버지 호칭어는 다음 세 가지로 나뉜다.

-‘할’ 계: 할배, 할아버지, 할아부지, 할아바지

-‘클’ 계: 큰아바지, 큰아배, 클바지, 큰아버지, 커바지

-아바니 계: 아바니, 아바이

‘조부’ 호칭어는 대체로 선대 거주지 방언이 남아 있으나 표준어 ‘할아버지’로 통일되어 가고 있다. 그리고 ‘부’, ‘모’ 호칭어와는 달리 한족말[中國語]을 차용해서 쓰는 일은 없다.

길림성의 경우 전통적인 함북 방언에는 ‘클아바니’와 같이 접두 요소가 ‘클-’인 방언형과 접두 요소가 없는 ‘아바니’ 계열이 있다. ‘클아바니’ 호칭은 주로 60세 이상의 노년층들이 사용할 정도로 점차 소멸해 가고 있다. 한편 접두 요소가 ‘할-’ 계통인 ‘할배’는 경상도 출신들의 호칭어다.

여하튼 표준어 ‘할아버지’도 점차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요컨대, 전통적인 ‘클-’ 계와 ‘할-’ 계는 소멸하고 ‘아바이’와 표준어 ‘할아버지’로 점차 통일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아바지’, ‘어머니’의 호칭어와 달리 보수적임을 알 수 있다.

요령성에서는 ‘클-’ 계의 평북 방언형이 다수 보이지만 점차 ‘할-’ 계에 밀려 사라져가고 있다. ‘할-’ 계는 ‘할아버지’와 ‘할배’가 비슷한 비율로 사용되고 있다.

흑룡강성에서는 경상도 방언형 ‘할배’가 다수를 점하고 있다. 그리고 ‘할아바지’와 ‘할아부지’가 비슷한 비율로 사용되고 있다.

(4) 할머니 호칭

‘아매’가 전 세대에 걸쳐 고루 쓰이고 있다. ‘큰아매’, ‘컬어매’와 같은 ‘큰-’ 계는 60세 이상의 노인이 즐겨 쓴다. 자신들이 어렸을 때 쓰던 말이므로 사실상 이 말은 사어가 된 것이나 다름없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할아버지’의 호칭어가 그렇듯이 ‘할머니’의 호칭어도 조선족 자치주 내에서 일종의 방언형 간의 수평화가 이루어졌다. 이주 전 함경도에서는 ‘아매’와 ‘큰-’ 계의 호칭어가 쓰였는데 이 방언형들이 ‘아매’로 수평화된 것이다.

‘할매’는 이주 이전의 원적지가 황해도, 경상도인 제보자 또는 그 후손으로부터 조사한 호칭어인데 세대에 무관하게 쓰이고 있다. ‘할머니’의 호칭어는 다른 친족 호칭어에 비해 그 변화가 매우 느리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요령성에서는 ‘할매’가 압도적으로 많이 쓰이고 전통적인 평안도 방언형 ‘클마니’가 사라져 가고 있다. 표준어 ‘할머니’는 50대 이하의 세대에서 주로 사용한다.

(5) 고모 호칭

‘고모’ 호칭어는 선대 거주지의 방언형이 거의 그대로 쓰이고 있다. 함북 방언은 ‘맏아매’다. ‘몯아매’는 육진의 일부 지역(온성, 회령 등)에서 쓰이는 호칭어다. 소수형 ‘몯아매’가 다수형 ‘맏아매’로 수평화 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고모’는 주로 경상도 출신의 응답형이다. 그 외에 표준어의 영향도 있는 듯하고 주로 여성들에게서 쓰인다. ‘큰엄마’는 황해도 및 평안도 출신의 응답형이다. 방계 존속의 친족어가 가장 오래도록 남아 있음을 보여 준다. 흑룡강성에서는 모두 ‘고모’(또는 ‘고무’)를 쓴다. 이는 경상도 방언과 표준어의 영향으로 보인다. 서북 방언형 ‘큰엄마’(또는 ‘큰어마’)도 쓰이나 ‘고모’의 영향으로 점차 그 세력이 약화되어 가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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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중 동포 언어 실태 조사』(국립국어원, 2012)
  • 『조선말 규범집(수정보충판)』(연변인민출판사,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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