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분류

1945년 8월 해방 후 중국 조선족 가요 60년사

한자 1945年 8月 解放 後 中國 朝鮮族 歌謠 60年史
중문 1945年8月解放后中国朝鲜族歌谣60年史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서적 1945년 8월 해방 후부터 현재까지 중국 조선족이 만들고 즐긴 가요의 역사
정의

1945년 8월 해방 후부터 현재까지 중국 조선족이 만들고 즐긴 가요의 역사.

조선족 음악사

중국 조선족 가요는 1945년 해방이 된 이후 60여 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60년의 조선족 가요사는 광복 이후로부터 2,000년대까지를 10년 단위로 나누어 단계적 특징을 서술하고자 한다. 조선족 음악 가요사는 최순덕[일명 초산]·전성호·김덕균·서호·김남호·남희철 등 음악평론가의 선행 연구가 진행된 바 있다. 본고는 이를 참고하여 서술하였다.

최순덕은 조선족 음악사를 시기별로 분류하여 중국조선 민족 음악의 계몽 시기[1860~1930], 항일 무장 투쟁 시기[1931~1945], 항일 전쟁 승리 후[1945~1949], 인민공화국이 창건된 후[1949~1966], 문화대혁명과 민족 음악의 대수난기[1966~1976], 새로운 역사시기, 새로운 비약[1976~] 등으로 나누었다.

임윤덕은 근대의 시가, 1920년대의 시가, 항일 투쟁 시기의 시가, 인민 해방 전쟁 시기의 시가, 1949년 중국 건국 후 17년의 시가, 새로운 역사 시기 등으로 나누었다. 전성호는 1949년 건국 후 17년의 음악, 문화대혁명 10년의 음악, 개혁개방 10년의 음악으로 나누어 분석하였다. 김남호는 1860년대 이민 시기로부터 항일 전쟁 시기, 항일 전쟁 승리 후의 조선 민족 대중 음악, 중국조선 민족 제1대 작곡가들이 창작한 대중 가요, 건국 후 중국조선 민족 대중 음악 활동으로 나누어 분석하였다.

해방 초기 중국 조선족 가요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됨에 따라 일제에 의한 식민지 생활에서 벗어난 중국에 거주한 조선 민족은 기쁨과 함께 한반도로 되돌아가느냐 중국에 남느냐 하는 갈림길에 놓였다. 이러한 역사적 선택을 해야 할 시점에 광복 직전 조선 민족은 210만 명이었다. 이 중 조선인 100만 명은 고국 땅으로 돌아가고, 나머지 백여만 명은 자신들의 피와 땀, 눈물로 개척한 중국간도 땅에 남았다. 이들이 바로 오늘의 중국 조선족이라고 부르는 재중 동포들이다.

일본 제국주의와 긴 항일 전쟁의 승리를 쟁취하고 해방의 기쁨과 희망찬 미래를 노래한 격정적 군중 가요와 서정 가요들이 창작되었다. 광복 이후 1946년 6월 중국에서 국내 전쟁이 발발함에 따라 더 이상 조선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 동포들은 고향을 애타게 그리워하면서 불렀던 노래들도 많았다. 대표적 노래인 「두만강」[리록당 작사, 허세록 작곡]에서 “오천년의 풍상을 한 몸에 싣고, 두 나라의 지경을 흐르는 강물, 백의 겨레들이 살길을 찾아, 눈물을 머금고서 건넌 두만강”이라고 노래하였다.

해방 초기의 작품은 「토지를 얻은 기쁨」[박순연 작사, 리경택 작곡], 「무산대중의 봄이 왔네」[류광준 작곡]와 같이 광복의 기쁨을 노래한 것이 많다. 또한 「농민의 노래」[천청송 작사, 류광준 작곡], 「새아리랑」[채택룡 작사, 허세록 작곡]과 같이 해방된 중국에서 농사짓는 농민들의 심정을 노래하였다.

특히, 1946년부터 1949년까지 3년간 지속된 국내 전쟁 시기에 보급된 「동북 인민 행진곡」[윤해영 작사, 김종화 작곡]을 비롯하여 「리홍광 지대의 노래」[정진옥 작곡], 「전선지원가」[홍성도 작사, 김수록 작곡], 「우리는 민주청년」[현남극 작사, 박우 작곡], 「베짜기 노래」[채택룡 작사, 허세록 작곡], 「생산의 봄」[홍성도 작사, 허세록 작곡], 「주구청산가」[박노을 작사, 맹헌일 작곡] 등이 이 시기 발표되었다. 당시 허세록·박우·고자성·류광준·정진옥·서영화·유덕수·박희환·동희철·백고산·리경택·김수록·박우·김종화·김덕균 등이 좋은 곡들을 세상에 선보였다.

중국 해방 전쟁 시기에 불린 조선족 가요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음악 언어가 매우 소박하고 대중화하였다. 가요나 취주 악곡, 관현 악곡 등을 대중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작곡이 되었다. 가요는 해방 전 부른 계몽 가요, 독립군 가요, 항일 가요 등의 전통을 이어받아 대중화하였다.

둘째, 음악 결구가 간단하고 절주가 단순했다. 가요들은 단순 1 부분 형식, 단순 2 부분 형식이 대부분이며, 2/4박자·3/4박자·4/4박자의 박절이다. 셋째, 음악 작품의 조직 응용에서 밝고 웅장하며 남성적인 정서를 표현하는 대조식이 주류로 나타났다. 넷째, 해방 전쟁 시기에 격정적 음악이 위주로 서정적 음악은 매우 적었다.

당시 대표적인 성인 가요는 「강남의 나팔수」·「군민의 노래」·「기쁨의 아리랑」·「그 길은」·「녀성 행진곡」·「농민의 사시」·「무산 대중의 봄이 왔네」·「새봄」·「생산의 봄」·「우리의 향토」·「전선 지원가」·「조선 의용군 송가」·「좋은 종자 가려내세」·「품앗이조의 노래」·「싸우러 나가자」 등이었다.

동요로는 허세록이 작곡한 「눈꽃」·「흘러라 물」을 비롯하여「제비」·「해 저문 마을」 등이 많이 불렸다. 해방 초기 자발적인 조선족 문예 단체들이 조직되었다. 1948년 1월 연변 가무단의 전신인 연변 전원 공서 문광단이 대표적이었다.

중화민국 성립 이후 1950년대 조선족 가요

1949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의 성립과 함께 조선족은 새로운 중국의 주인공으로 등장하였다. 이는 동북 변경의 개척과 항일투쟁의 역사, 해방전쟁의 공적 등에 의한 것이었다. 「중화인민공화국성립 경축의 노래」[홍성도 작사, 최호범 작곡]가 대표적인 작품이다. 1950년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1주년을 맞이하여 연변 문공단이 북경에서 관현악 「해란강」[허세록 작곡], 대합창 「영용한 조선 인민은 일어났다」[김동구 작사, 박우 작곡], 독창「베짜기 노래」[방초선 독창] 등을 공연하였는데 절찬을 받았다.

1952년 9월 3일 연변조선족자치주가 성립됨에 따라 음악 분야도 더욱 활성화되었다. 「자치주 성립 경축의 노래」[차창준 작사, 김성민 작곡]는 그 날의 감격과 기쁨을 노래한 것이다. 1950년대 새로운 중국 건설 사업에 조선족의 역할이 증대됨에 따라 「젊은 탐사 대원의 노래」[김철 작사, 리인희 작곡], 「처녀의 노래」[최정연 작사, 정진옥 작곡], 「산간 마을에 드리는 노래」[김경석 작사, 동희철 작곡] 등이 발표되었다. 이때는 「아름다운 나의 고향」[최정연 작사, 정진옥 작곡], 「고향산 기슭에서」[김경석 작사, 동희철 작곡], 「연변 목가」[리황훈 작사, 안국민 작곡] 등의 애향 노래와 「송화강」[김용식 작사, 방소운 작곡], 「진달래」[장만산 작사·작곡]와 같이 빼어난 풍광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것이 많았다.

특히 「정든 처녀야」[김용식 작사, 정진옥 작곡], 「안해의 노래」[김창석 작사, 박지순 작곡]와 같이 순수 애정 가요들도 소개되었다. 아울러 어린이들에게 사랑받았던 동요인 「고개길」[김례삼 작사, 허세록 작곡], 「병아리」[채택룡 작사, 허세록 작곡] 등 창작 동요들도 어린이 뿐 아니라 성인들로부터 큰 인기를 모았다.

1953년 7월 10일 연변 문학 예술계 연합회가 만들어졌다. 2년 후인 1955년 7월 18일 음악 분과 위원회가 설치되어 유명 작곡가 허세록이 주임을 맡아 조선족 음악 활동에 박차를 가하였다. 이에 가요 창작은 비약적인 성과를 거두었으며 소재도 다채롭고 다양한 작품이 나왔다. 특히 서정 가요가 많이 나왔으며 민족적 색채가 강조된 가요들도 속속 나오게 되었다. 당시 창작인은 20명 내외였다. 대체로 연변 가무단을 비롯한 전문 단체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작곡하였으며 시인이나 극작가가 작사를 맡았다.

1954년에 『조선 민요곡집』이 출판되어 「어랑타령」·「난봉가」·「시집살이」·「상투타령」 등의 민요가 무대에 올랐다. 민족 음악의 기초에서 판소리 「떡메의 증오」[최정연 작사, 정진옥 작곡]이 창작되면서 중국의 여러 민족들 사이에 “연변은 노래와 춤의 고향”이라 불려졌다.

1956년부터는 몇몇 대형 음악 작품이 창작되었다. 관현악 「향토」[정진옥 작곡], 교성곡 「장백의 노래」[김철 작사, 정진옥 작곡] 등이 발표되었다. 「장백의 노래」는 민족적이며 시대에 맞는 선율과 독특한 음악 품격으로 청중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으며 조선족 음악계의 큰 업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 뒤 음악가들도 배출되었다. 방초선·김인숙·정연숙·우옥란·리원경 등 재능 있는 성악가와 연변가무단 합창대, 관현악대는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방초선은 1933년생으로 1962년 중앙 음악 학원 성악계를 졸업하고 연변가무단 최초의 여성 독창 배우가 되었다. 중국 방송 예술단 독창 배우로 「사과 배 따는 처녀」 등 수많은 노래를 불러 청중의 사랑을 받았다. 김인숙은 1936년생으로 1961년 중앙 음악 학원 성악반을 마치고, 1950년부터 연변 가무단 배우로 「깜둥 처녀」·「연변 목가」 등을 불러 인기를 모았다.

1956년 7월 전국 제1차 음악주에 참가한 연변 가무단은 호평을 받고 중국 전역의 대도시를 순회 공연하였다. 1957년 제6차 세계 청년 연환절에 참가한 연변 가무단의 방초선은 창작곡 「처녀의 노래」[최정연 작사, 정진옥 작곡]를 불러 은메달을 수상하였다. 교성곡 「장백의 노래」[김철 작사, 정진옥 작곡]도 제6차 세계 청년 연환절에서 수상하였다. 당시 연변가무단 관현악대는 지휘자 안국민의 노력으로 교향악의 기초가 닦였고 지휘자 박우는 합창 음악의 발전에 기여하였다.

1950년대 후반 중국 내 반우파 투쟁, 인민공 사화 운동, 대약진 운동 등으로 순수 가요는 줄고 정치적 색채를 띤 송가들이 나왔다. 일부 중견 작곡가들이 우파분자로 물려 감옥에 갇히는 고초를 받았으며, 창작 제한을 받고 망명하기도 했다. 이러한 정치적 상황 하에서 음악 창작 활동은 큰 손실을 입었다. 일부 작곡가들은 군중화 된 신 민요 풍의 「내 고향 좋구 좋다」[임효원 작사, 동희철 작곡] 등의 곡을 내놓았다.

1958년 이후 군중 음악 활동으로 전문 작곡가들이 좋은 곡을 창작하였다. 예를 들면 「노래하자 총로선」[서건 작사, 동희철 작곡], 「로동 전선으로」[김성휘 작사, 리인희 작곡], 「풍년 가을에 왔네」[리황훈 작사 작곡], 「수리 건설의 노래」[장동운 작사, 박우 작곡], 「연변 타령」[임효원 작사, 정진옥 곡], 「연변 목가」[리황훈 작사, 안국민 작곡] 등이 대표적인 노래들이다.

중화인민공화국 창건 10주년을 맞이하여 1959년 3월 12일 중국 음악가 협회 연변 분회가 창립되어 정진옥이 주석을 맡았으며 후에 김진이 맡았다. 동희철·허세록·정진옥·리인희·고자성·김종화·김덕균·김성민·김창석·안국민·박지순·박우·허원식·정창권·도익·임영호·지문영 등과 함께 많은 곡들을 내놓았다. 작사가로는 채택룡·최정연·김례삼·김태갑·김용식·김철·리황훈·김성휘·리행복·리득춘 등이 활약하였다.

당시 작품으로는 허세록 작곡의 「고향」·「고향 생각」·「방직 처녀의 노래」·「새 봄이 왔네」·「우리 고향 자랑 많네」·「코신 짓는 처녀」·「뻐국새 노래하는 고향」·「강남 가는 제비」와 동요 「고개 길」·「병아리」·「봄비」·「봉선화」·「새나라 어린이」·「진달래」·「원족의 노래」·「푸른 교실로 가자」, 동희철의 「귀환병과 처녀」·「내 고향 좋구 좋다」·「산간마을에 드리는 노래」, 동요 「삼림을 보호하자」, 정진옥의 「머루넝쿨 한그루」·「북경가는 총각」·「아름다운 나의 고향」·「연변타령」·「처녀의 노래」·「깜둥처녀」, 리인희의 「눈강에 봄이 왔네」·「젊은 탐사대원의 노래」, 동요 「야영의 밤」, 김덕균의 「내 고향 금파도」·「백화상점 아가씨」·「전사의 미혼처 노래 부르네」·「락수물 음악회」, 동요 「여긴 쨍쨍 저긴 그늘」, 김종화의 「나무」·「가을」, 동요 「제비」·「함박눈이 내려와요」 등이 발표되었다.

1960년대 중국 조선족 가요

1960년대는 중국에서 극좌적인 정치 사조가 팽배하면서 10년 동란의 문화암흑기인 문화대혁명이 1966년부터 1977년 사이에 발발하였다. 당시는 개인 숭배에 직결된 선전 가요나 송가들이 난무하였다.

이러한 와중에서 「손풍금 타는 총각」[김창석 작사, 동희철 작곡], 「산골 처녀」[김경석 작사, 동희철 작곡] 등과 같은 순수 서정 가요가 창작되었고, 「거름내기 타령」[조대길 작사, 로윤관 작곡], 「논물 관리원」[김세형 작사, 윤송령 작곡], 「착실한 감농군」[강호혁 작사, 리인희 작곡], 「뜨락또르 모는 총각」[장동운 작사, 동희철 작곡], 「탈곡 타령」[황상박 작사, 최춘산 작곡] 등과 같이 정치와 무관한 농사 관련 내용이 많았다. 동요 창작은 침체기로서 「똑또르르」[김례삼 작사, 김덕균 작곡], 「학교로 가요」[리행복 작사, 리인희 작곡], 「나는 꼬마 화가」[김충묵 작사, 김남호 작곡] 등이 대표적이다.

1962년 11월 요령 가극원 관현악대와 심양 음악학원 관현악대의 연합연주인 「태양이 솟는다」[허원식 작곡]가 공연되어 최초의 교향곡이 발표되었다. 1962년 최삼명이 관현악곡 「장백의 봉화」를 창작하였는데, 「해란강」의 자매곡으로 관현악 창작의 새 길을 연 작품이었다. 연변가무단을 비롯한 각 단체 문공단의 연주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북타령」·「변강의 두 형 제」·「흥겨운 모내기」와 같은 중창곡이 창작되고 「늙은 량주」·「누구 닮아 영웅되였나」·「황산골은 변하였네」 등의 대창곡들도 나왔다.

1960년대 중기에는 군중 가요 창작에서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 「논물 관리원」[김세형 작사, 윤송령 작곡], 「탈곡 타령」[황상박 작사, 최춘산 작곡], 「여량수레령 넘어 가네」[강호혁 작사, 김유식 작곡], 「첫 수확」[김세형 작사, 김동진 작곡], 「친선의 꽃」[방죽송 작사, 최삼명 작곡] 「사과배 따는 처녀」[장동운 작사, 최삼명 작곡] 등이 대표적이다. 당시 활동한 성악가는 림성호·왕개평·김선옥·전화자·박정자 등이었다. 전화자는 연변대학 교수로 재직하며 지금도 개인 민요 독창회를 갖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한국에서도 공연을 갖는 등 조선족 대표적 민요 가수로 평가를 받고 있다.

1960년과 1964년에는 두 권의 한글로 된 노래책이 간행되었다. 먼저 중국 작가 협회 연변 분회가 『연변민가선집』[북경 민족출판사]을 펴냈다. 『연변민가선집』은 1949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 창건 10주년을 맞이한 것을 축하하는 헌례집으로 1959년에 편집한 것이다. 책은 세 부분을 나누어 항일가요 13수, 대약진 민가 98수, 해방 후 각 정치운동과 생산운동을 반영한 민가 16수 등 총 127수를 담고 있는 악보가 없는 가사집이다. 1964년에는 중국음악가협회 연변 분회가 『연변가곡집』[연변인민출판사]을 펴냈다. 『연변가곡집』은 1946년부터 1962년까지의 연변가곡 100곡을 집성한 것으로 오선지 악보를 수록하였다.

1966년 이른바 문화대혁명인 10년 동란이 시작되자 해방 후 20년 동안 거두었던 음악적 성과는 부정, 왜곡되었다. 한 예로 1965년에 작곡한 「연변인민 모주석을 노래하네」는 「연변 인민 모주석을 열애하네」[한윤호 작사, 김봉호 작곡]로 바뀌고 가사도 전면적으로 바꾸어 이 한 곡만을 부르게 강요하였다. 「장백의 노래」는 반동적 문화 혈통론의 산물이라는 비판을 받고 민족 음악 유산을 연구하는 것은 복고주의로 몰렸다. 농민들의 요청에 의해 「노들 강변」을 손풍금으로 연주한 작곡가가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1970년대 중국 조선족 가요

문화대혁명이 일어난 1966년 이후부터 1977년까지 조선족 가요는 큰 변화가 없었다. 주로 정치적 목적의 작품들이 이용되었고 한족의 경극인 「본보기극」과 「어록노래」만 부르도록 강요되었다. 많은 서정 가요가 독초로 폄하되고 작곡가들은 구속되거나 창작 제한으로 손을 떼거나 망명을 하였다. 오로지 행진곡이나 선동성이 각하고 격렬한 구호식 노래만이 창작되었는데 5년 사이에 무려 400곡이 나왔다.

1972년을 전후로 어록 가요를 부르고 충성 축하 무를 추었으나 나름대로의 창작 활동이 허용되어 「농기공의 노래」[한동오 작사, 림성호 작곡], 「농토건설 좋구좋네」[오흥진 작사, 박동호 작곡], 「백산의 붉은 꽃」[한원국 작사, 허원식 작곡], 「산골에도 만풍년일세」[김득만 작사, 정준갑 작곡] 등의 곡들이 발표되었다.

1976년 10월 문화대혁명이 비극적인 막을 내리자 새로운 중국을 만들기 위한 제2의 해방과 같은 사조가 생겨났다. 즉 “봄이 왔네 봄이 오니 눈이 녹고, 눈 녹으니 꽃 피네”라는 가사처럼 해빙의 정국에서 「눈 녹으니 꽃이 피네」[최정연 작사, 동희철 작곡] 등의 작품들이 창작되었다. 1977년에 들어서 작곡가나 예술가들이 복권이 되면서 창작 분야도 다시 새로운 기운이 돌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1977년에만 220수의 노래가 발표되었고 흑룡강 조선민족출판사와 요령민족출판사도 노래집을 출판하여 1978년에는 무려 300여 수가 발표되었다.

「진달래꽃 동산」[리태수 작사, 고자성 작곡], 「선생님의 들창가 지날 때마다」[김철 작사, 동희철 작곡], 「고향길」[김태갑 작사, 안계린 작곡], 「산골에도 만풍년이네」[김득만 작사, 정준갑 작곡], 「도라지 꽃」[김성휘 작사, 리인희 작곡], 「명월구 산천가」[허동철 작사, 방룡철 작곡], 「홍개호 어부의 노래」[리삼월 작사, 림종원 작곡] 등이 대표적인 곡들이다.

동요 창작도 침체에서 벗어나 「맑은 샘」[김득만 작사, 김민수 작곡], 「붉은 꽃송이」[김득만 작사, 김광 작곡], 「아침체조 하자야」[리죽순 작사, 한록순 작곡], 「그네 뛴다야」[윤태삼 작사, 김유식 작곡] 등이 선보였다.

1978년은 가요 작품 수의 면에서도 많지만 소재나 풍격이 다양해졌다. 연변 문련 산하의 각 협회는 활동을 회복하여 중국 음악가 협회 연변 분회가 새롭게 개편되면서 활발한 음악활동을 전개하였다. 1978년 11월 연변 방송 예술단, 1981년 연길시 조선 민족 예술단, 1982년 흑룡강성 목단강 조선 민족 가무단 등이 창립되었다.

1979년 중화인민공화국 창건 30주년을 맞이하여 음악 분야도 풍성해졌다. 「완계사」[모택동 작사, 허원식 작곡], 「양가령 언덕길」[정몽호 작사, 박진우 작곡], 「과일나무 자랍니다」[양평 작사, 최창규 작곡], 「이 직업이 나는 좋아요」[김득만 작사, 양성덕 작곡], 「그 총각께 시집 갈래요」[김성휘 작사, 최삼명 작곡], 「출근길이 나는 좋아요」[김득만 작사, 정혜숙 작곡] 등의 작품들이 나왔다.

흑룡강성·요령성·북경 등지에서 조선족 작곡가들이 나타나면서 중국 전역에서 민족 음악이 발전하였다. 요령성에서는 「그대 만약 나를 사랑한다면」[김성휘 작사, 서영화 작곡], 「장백의 미인송」[리창인 작사, 유덕수 작곡], 흑룡강성에서는 「갈매기」[최룡관 작사, 심상문 작곡], 「나란히 걸읍시다」[김창석 작사, 김우찬 작곡], 「할빈아가씨는 여섯 시」[한창선 작사, 리득송 작곡], 북경에서는 김정평이 영화음악 「부유해지는 길은 있다」, 김재청「서사곡」, 장천일은 교향곡 「북방의 삼림」, 영화음악 「삼림속의 첫 녀인」 등을 창작하였다.

1980년대 중국 조선족 가요

1980년대에 들어와 비로소 ‘예술의 새봄’이 도래했다. 조선족 가요 창작과 동요가 개혁개방의 물결을 타고 새로운 문명 건설의 부흥기를 맞이하였다. 연변은 중국 전역에서 가장 먼저 민족지역자치법이 통과하였고, 8월 15일을 노인절로 정하여 정신 문명 건설에 노력하였다.

「로인절가」[김경석 작사, 동희철 작곡], 「문명 건설의 노래」[김경련 작사, 허원식 작곡]와 지금도 많이 불리는 「오 래오래 앉으세요」[허동철 작사, 방룡철 작곡], 「꽃밭을 가꾸네」[허동철 작사, 방룡철 작곡], 「그대들은 생각해 보았는가」[리선근 작사, 방룡철 작곡] 등의 작품들이 대표적이다.

1980년대는 생산량에 따라 보수를 계산하는 책임제와 농촌호도거리가 실시되고 중국과 소련, 중국과 북한의 변경무역이 활발하여 연변지구의 대외개방이 확대되었다. 이에 「고향길에 정다운 소방울 소리」[김성휘 작사, 김성민 작곡], 「일할수록 성수 나오」[강호혁 작사, 김봉관 작곡] 등 수많은 곡이 발표되었다.

1980년대는 동희철·방룡철·최삼명·김종화·안국민·김봉관·김성민·허원식·박우 등의 작곡가과 김태갑·김득만·최현·석화·리상각·허동철·리행복 등의 작사가들에 의해 애향·애정·애족의 노래가 많이 발표되었다. 리상각 시인은 강원도 양구 태생으로 연변에서 존경받는 문인으로 여러 권의 시집과 『조선족 구전 민요집』을 출판하였고 아름다운 노랫말을 많이 썼다.

1980년대에도 송대윤·한국화·조옥형 등 신인 가수들이 나와서 인기를 끌었다. 조옥형은 1956년생으로 1978년 연변예술학교를 졸업하고 연변가무단 독창배우로 활약하며, 「그 총각에게 시집 갈래요」·「나는 장가를 잘 들었소 」등을 불러 대중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한국화는 1957년생으로 1980년 연변 사범학교 음악전문반을 졸업하고, 1978년 연변 과외 음악 콩쿠르에서 「나리꽃 피였네」로 1등상을 받았으며, 1980년 전국소수민족문예축전에서 「내 고향 오솔길」·「왜 물어보나」 등 서정가요를 불러 인기를 모았으며 연변 가무단 독창 배우로 활약하고 있다.

조선족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연변을 예찬한 애향곡들도 많이 나왔다. 용정에서 활발하게 창작에 몰두하는 황상박 시인의 「내 고향 오솔길」[황상박 작사, 최삼명 작곡]을 비롯하여, 「내 고향은 연변일세」[김성휘 작사, 리일남 작곡], 「아름다운 연변이여」[김창호 작사, 방룡철 작곡], 「정다와라 내 고향 연변」[김철학 작사, 박우 작곡], 「꽃피는 연길」[김태갑 작사, 안국민 작곡], 「아, 장백산 연변의 자랑이여」[김창석 작사, 최삼명 작곡], 「장백의 새아리랑」[최현 작사, 안계린 작곡], 「연변의 노래」[김응준 작사, 안국민 작곡] 등이 대표적이다.

애정 가요는 「사랑은 영원히」[석화 작사, 고창모 작곡], 「눈 우에 쓴 이름」[석화 작사, 김경애 작곡], 「사랑아 어찌 늙으랴」[김응준 작사, 리성재 작곡], 「정다운 밤거리」[림임원 작사, 남희성 작곡] 등이 있다.

민족 자긍심을 고취한 애족 가요는 「반갑구나」[김경련 작사, 안국민 작곡] 등의 노래가 불렸다. 「반갑구나」는 1985년 중국 조선족 역사에서 처음 해외 공연작으로 미국 방문 공연을 위해서 만들어진 작품이다. 연변예술학교 예술단이 이 노래를 미국 8개국에서 공연하여 재미 동포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당시 동요로는 「길 잃은 오리」·「설날이 동동」·「짝자꿍」 등이 어린이들에게 애창되었다.

이외에도 영화음악 「첫봄」[최삼명 작곡]과 텔레비죤 음악 「민들레」[최삼명 작곡]를 비롯하여 「나가자 나가자」[박세성, 안국민 작곡] 등과 가야금 협주곡 「심청」[안국민 작곡], 피아노독주곡 「장단엮음」[권길호 작곡] 등 많은 기악곡이 창작되었다.

1980년 훈춘현문공단에서 가극 「아리랑」[리광순 대본, 임영호 작곡]을, 1981년에는 가극 「장화홍련전」[신재호 대본, 임영호 작곡]을 선보였으며, 화룡현문공단은 가극 「흥부전」[한윤호 대본, 리하수 곡] 등 민족 가극을 발표하여 새로운 기반을 형성하였다. 1989년 연변가무단에서는 가극 「아리랑」을 공연하였다. 대본은 김경련과 김철학이 쓰고 작곡은 안국민·최삼명·최창규·허원식이 참여하였다. 가극은 조선족의 민간 전설을 토대로 극을 전개하고 민요 「아리랑」을 주제 음악으로 하여 고전 가극의 형식을 계승하였다.

음악책자도 활발하게 간행되었다. 연변인민출판사·연변교육출판사는 1948년부터 1989년까지 노래집 153종을 출판하였고, 흑룡강조선민족출판사도 1977년부터 1989년까지 노래집 9종, 요령 민족출판사에서는 1977년부터 1982년까지 노래집 8종을 출판했다.

특히 1983년 출판된 『독창 가요집』[연변인민출판사]은 리인희 작곡가가 책임 편집한 것으로 한글로 101곡이 수록되었다. 중화인민공화국 창건 이후 창건 40돐을 기념하여 1989년에『중국 조선족 가요 선집』이 중국 음악가 협회 연변 분회에서 출간되었는데, 조선족 가요 등 289곡이 수록되고 중어 가요 8곡이 들어있는데, 발표 연대를 기입하고 악보를 실었다.

개인 작곡집은 동희철의 『고향산 기슭에서』[연변인민출판사, 1978], 박우의 『고속도로 앞으로』[연변인민출판사, 1979], 김성민의 『장백의 진달래』[료녕 인민출판사, 1979], 리인희의 『도라지』[료녕 인민출판사, 1979] 등이 나왔다. 1980년대에 들어와 최삼명의 『내고향 오솔길』[연변인민출판사, 1982], 허원식의 『꽃피는 우리 살림』[연변인민출판사, 1982], 최연숙의 『청춘 원무곡』[1984], 『최삼명 작곡집』[1984], 안계린의『장백의 새 아리랑』[1986], 『김봉호 작곡집』[1989], 『박진우 작곡집』[1989], 『김남호 작곡집』[1989], 『석천수 작곡집』[1990], 『김덕균 작곡집』[1990] 등이 출판되었다.

음악이론에 대한 연구 활발하였다.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초산[최순덕]·김덕균·리인희·김득만·최광준·정창권·기진도·김응준 등이 활동하였다. 음악 교육 사업도 상당한 발전을 이루어 1980년부터 전국 조선 민족 중소학교에서 통일 교과서에 의하여 음악 수업을 받고 있으며, 1985년 7월 전국 조선문 교재 심사 위원회 음악조가 설립되었다.

또한 1983년 5월 이후 연변대학 예술 학부는 음악 사범, 작곡, 성악 등의 전공 학생을 양성하고 있었다. 1988년 12월 길림 예술 학원 연변 분원에 음악 학부와 음악 사범 학부가 설치되었다. 1989년 4월 중국 조선 민족 음악 연구회가 설립되고 최순덕이 회장을 맡았다. 1955년 7월 연변 문련 음악 분과 위원회가 허세록을 회장으로 설립된 이후, 1959년 3월 중국 음악가 협회 연변 분회가 생겨 정진옥·김진·안국민 등이 주석을 맡았다.

1990년대 중국 조선족 가요

1990년대의 조선족 사회는 많은 변화를 겪었다. 대외적인 개방이 확대되면서 1990년부터는 불과 6년 사이에 20만 명의 조선족들이 대도시로 이주하였고, 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 진출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사회적 변화를 노래한 「울고 웃는 정거장」[김동호 작사, 방룡철 작곡], 「타향의 달밤」[안충만 작사, 최연숙 작곡] 등은 고향 떠난 이들의 마음을 달래주었다.

국제적인 경제와 문화교류가 활발해지면서 「나란히 걸읍시다」[김창석 작사, 김우찬 작곡], 「무지개인생」[유영호 작사, 윤강철 작곡], 「인생은 사흘이야」[유영호 작사, 박위철 작곡]와 같이 일생의 삶에 관한 노래가 나왔다. 또한 대인관계가 확대되면서 「우정 만만세」[석화 작사, 한병낙 작곡], 「악수는 마음까지」[주룡 작사, 박세성 작곡]라는 노래도 나오고, 옛 정취와 어린 시절의 그리움을 달래주는 「동년의 뜨락」[박장길 작사, 조인길 작곡], 「그 시절이 그리워」[최기자 작사, 안계린 작곡]와 같은 노랫말이 인기를 끌었다.

당시 조선족 민속과 관련한 노래 「민속놀이 흥야라」·「장백의 선녀」·「장백의 폭포수야」·「경상도 어머니」와 연변 풍경을 배경으로 한 「사과배 동산에서」·「진달래고향」·「파란 렬차」 등과 같은 노래들이 나왔다.

동요 창작에서도 한정자가 작곡한 「눈이 온다야」·「다리 하나 놓자야」·「메아리」·「연놀이 동동」·「친구」 등이 나오면서 지속적 발전을 거듭하였다. 작사가는 최룡관·김득만·김만석·석화 등이 활발하게 참여하였다. 어린이들이 부른 동요를 집성한 책자는 김득만 주편의『중국조선족동요선집(1952~1992)』[동북조선민족교육출판사·1992]으로, 400곡의 가사가 수록되었다.

연변조선족자치주가 성립된 이후 40돌인 1992년에는 기념 노래집이 나왔다. 『60 청춘 늴리리』·『연변 가요 무대』 등이다. 동희철 작곡가가 주필을 맡은 『60 청춘 닐리리』는 연변 동북 군정 대학 길림 분교 교사 연구회에서 편찬하였다. 1989년 동북 군정 대학 길림 분교 동창회 준비위원회가 출판한 『군정 대학 노래집』[조선 문판]의 속편으로 항일시기, 해방 전쟁 시기 혁명 가요, 중국 건국 이래 사회주의 혁명과 건설을 반영한 노래, 민요, 중국 가요, 외국 가요들을 수록하였다.

2000년대 중국 조선족 가요

2000년대는 중국 조선족이 세계 속으로 널리 퍼져가는 기세를 보여주었으며 음악 예술의 뛰어난 성과를 거둔 시기이다. 당시 노래들은 2000년 중국 조선족 관광 박람회와 2002년 연변조선족자치주성립 50돌 기념행사를 계기로 「장백송」[김학천 작사, 장천일 작곡], 「장백의 노래」[류세진 작사, 서철휘 작곡], 「장백의 메아리」[김철학 작사, 허춘림 작곡], 「아버지산 어머니강」[리흥국 작사, 박세성 작곡], 「장고야 울려라」[리결사 작사, 김봉호 작곡], 「진달래」[리영 작사, 안국민 작곡], 「고향살자」[김응준 작사, 서철휘 작곡] 등과 같이 연변을 자랑하는 긍지와 애향심이 충만한 작품들이 많이 나왔다.

또한 대중적 생활이나 삶의 가치를 중시하는 「구제비둥지」·「그때 그 사람」·「행주치마」·「부부는 춘하추동」 등이 불렸다. 동요 창작도 활발하여 「나비는 춤추는 꽃」[박장길 작사, 김동하 작곡], 「벙어리장갑」[김득만 작사, 김창근 작곡] 등이 불렸다. 안국민·박세성·김경애·김봉호·한정자 등의 작곡가들이 좋은 곡을 썼다. 리상각의 「눈물의 편지 한 장」, 최혜숙의 「님이 오니 달이 뜬다」, 김문희의 「새연변아리랑」, 김학송의 「연변아리랑」과 같은 노랫말들이 연변의 아름다운 풍광과 조선족의 민족적 정서를 반영하여 인기를 모았다.

2000년대 후반에 간행된 조선족 노래집 3권은 앞서 간행된 가요들을 총집하고 있다. 특히 연변조선족자치주 성립 55돌과 연변인민방송국 성립 61돌을 맞이하여 악보와 함께 700수를 수록한 김창근 주필의『연변방송가요 700수』[연변인민출판사, 2007]가 주목을 끈다.

이어 연변 조선족 문화 발전 추진회·연변 음악가 협회·연변 동북아 예술 연구원이『중국 조선족 가요 대전』[연변교육출판사, 2007]을 편찬하였다. 이 책에는 이주 시기, 광복 후 시기, 1950년대, 1960년대, 1970년대, 1980년대, 1990년대, 2000년대 순으로 중국 조선족 가요사가 정리되어 있다. 성인 가요뿐만 아니라 동요도 악보와 함께 수록하였다.

이외에도 『중국 조선족 창작 동요 선집』[연변인민출판사, 2008]이 간행되었다. 이주 시기 5곡, 광복 시기 4곡, 1950년대 32곡, 1960년대 6곡, 1970년대 15곡, 1980년대 34곡, 1990년대 51곡, 2000년대 45곡으로 총 192곡을 매 시기별로 나누어 설명하고, 작사자·작곡자·악보를 함께 수록하였다.

다음으로 주목되는 노래집은 『우리 노래 50년』[연변인민출판사, 2008]으로 연변조선족자치주 창립 50돌 헌례작이며 연변 텔레비전 방송국 설립 30주년 기념으로 영상과 함께 설명을 붙여서 만들었다. 책자는 김승철, 남희철의 편저로 총 50부로 275곡을 성인가요와 동요를 수록하고 음악 평론가의 설명과 작곡가와 작사가의 인터뷰 등이 수록되어 창작배경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방송에 소개된 내용을 중심으로 악보를 넣어서 편집하였다. 또한 남희철·석화·김성희 등이 편찬한 『우리 노래 100년에 깃든 이야기』[연변인민출판사, 2012]와 김창근이 저술한『중국 조선족 가요 100수 분석』[연변인민출판사, 2014]들도 조선족 가요 발전사를 체계적으로 분석 정리하였다.

중국 조선족의 이주사와 맞물린 조선족 음악사는 일제강점기 해방 후부터 60년의 긴 시간을 통해서 시련을 극복하고 민족문화의 전통적 색채와 창조적 예술성을 발휘하면서, 음악 전문가들의 노력과 대중들의 애호로 지속적인 발전을 추구하고 있다.

참고문헌
  • 중국 작가 협회 연변 분회 편, 『연변 민가 선집』(북경 민족 출판사, 1960)
  • 중국 음악가 협회 연변 분회 편, 『연변 가곡집』-1946~1962(연변인민출판사, 1962)
  • 중국 작가 협회 연변 분회 편,『가요곡집』1~7(연변인민출판사, 1978~1981)
  • 중국 작가 협회 연변 분회 편, 『아동 가요 선집』(연변인민출판사, 1980)
  • 리인희 책임 편집, 『독창 가요집』(연변인민출판사, 1983)
  • 장정룡, 『한중 세시풍속 및 가요 연구』(집문당, 1988)
  • 중국 음악가 협회 연변 분회 편, 『중국 조선족가요선집』(민족 출판사, 1989)
  • 연변 아동 음악가회편, 『소년 아동 가요 선집』-1949~1989(동북조선민족교육출판사, 1989)
  • 동희철 주필, 『노래집 60청춘 늴리리』(동북 조선 민족 교육 출판사, 1992)
  • 고창모 책임 편집, 『연변 가요 무대』–자치주성립 40돐 기념(용정시 기관 인쇄창, 1992)
  • 김득만 주필, 『중국 조선족 동요 선집』-1952~1992 (동북조선민족교육출판사, 1992)
  • 연변인민방송국 음악부 편, 『방송 노래집, 연변 방송 특집』(1992)
  • 김남호, 『중국 조선족 민간 음악 연구』(흑룡강조선민족출판사, 1995)
  • 김득만, 『동요 200곡 집』(동북 조선 민족교육 출판사,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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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근 주필, 『연변 방송 가요 700수』(연변인민출판사, 2007)
  • 김승철, 남희철 편저, 『우리 노래 50년』(연변인민출판사, 2008)
  • 김봉관, 『중국 조선족 민간 음악집』(연변인민출판사, 2008)
  • 연변 조선족 문화 발전 추진회, 연변 음악가 협회, 연변 동북아 예술 연구원 편, 『중국 조선족 창작 동요 선집』(연변인민출판사, 2008)
  • 김남호, 『중국 조선족 전통 음악, 대중 음악론』(민속원, 2010)
  • 장익선, 『연변 민요의 음악적 특성과 전승양상에 대한 연구』(민속원, 2010)
  • 『조한대역 조선족애창가요 60수』(연변인민출판사, 2012)
  • 남희철, 석화, 김성희 편, 『우리 노래 100년에 깃든 이야기』(연변인민출판사, 2012)
  • 김창근, 『중국 조선족 가요 100수 분석』(연변인민출판사, 2014)
  • 전성호·김덕균·초산,「1945년 이후의 조선족 음악」(『조선족 문학 예술 연구』1, 연변인민출판사,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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