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분류

상투

영문 TOPKNOT
중문 髮髻
분야 생활·민속/생활
유형 의복/의복
지역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상세정보
성격 머리 치장
재질 섬유|말 꼬리털|사람 머리털
관련의례 성인식
입는시기 성인식 이후
특기 사항 시기/일시 1895년
정의

조선족 사회에서 전통 성인식을 거친 남성의 머리 모양.

개설

우리나라 전통의 성인식을 거친 남성의 머리 모양으로, 추계(推髻), 수계(竪髻)라고도 한다. 머리를 정수리로 올려 모아 작은 막대같이 틀어 감아 매어 작은 방망이 같이 모이게 하였다. 머리카락이 흘러 내리지 않게 망건으로 머리 주변을 정리하기도 하고 수건으로 감싸기도 하였다.

연원

상투는 중국의 『사기』에 위만이 조선에 들어올 때 ‘추결(魋結)’을 했다는 기록이 있고, 『삼국지』위서 동이전에 괴두노계(魁頭露紒)인 머리를 들어내고 ‘날상투’를 했다는 기록이 있다. 고구려 고분 벽화에도 다양한 모양의 상투가 묘사되어 있다. 크기가 다른 방망이 모양의 상투, 쌍상투 등이 보인다. 역사(力士)나 장사(壯士) 등은 상투를 그대로 드러내었고, 귀인층 등은 상투가 보이지 않도록 관모 등을 썼다.

이후 관모의 형태는 변화가 많았으나, 상투는 크게 변하지 않고 조선 시대에까지 이어졌다. 나이가 어려도 혼인을 하면 상투를 틀었고,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혼인을 하지 않으면 상투를 틀 수가 없었다. 따라서 혼인을 못한 사람 중에는 혼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도 상투를 틀기도 했는데 이런 경우 ‘건상투’라고 하였다.

변천

1895년 을미 개혁 때 단발령이 내려지면서 상투 머리는 금지되고 중머리, 하이칼라 머리가 보급되었다. 중국으로 이주한 조선족 남성에게서 상투 머리는 해방 직전에 거의 종적을 감추었다. 해방 후에는 지방의 일부 노인들에게서 볼 수 있었지만, 1940년대 말에 이르러서는 완전히 종적을 감추었다. 상투가 없어지면서 상투 머리를 할 때 필요한 망건, 탕건, 동곳 등은 물론 갓도 사라지게 되었다.

형태

삼국 시대 이전부터 상투를 틀었고, 중국에서는 방망이 모양의 머리라고 하여 ‘추결’ 등으로 일컬어졌다. 머리숱이 많으면 상투의 크기가 컸으며 숱이 적으면 상투의 크기가 작아졌다. 다른 시대에 비해 조선 시대 남성 상투의 크기는 크지 않았으며, 상투 머리 그대로를 드러내는 것을 매우 어려워하였다.

조선 시대에 상투가 크지 않았던 것은 정수리에 모든 머리를 올려 상투를 틀면 여름 더운 날씨에 열이 모이기 때문에 백호를 쳐서 머리숱을 줄여 상투를 틀기도 하였다. 머리 카락을 정수리에 모으고 올린 머리가 흘러내리지 않도록 망건이나 머리 수건으로 둘렀다. 정수리에 상투를 틀어 올리고 상투가 흐드러지지 않게 하기 위해 상투에 ‘동곳’이라는 장식을 꽂기도 하였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혼인을 한 남성은 모두 상투를 틀었기 때문에 상투 머리는 곧 기혼자의 상징이었다. 또 조선 시대에는 기혼자는 아무리 나이가 어려도 미혼자를 하대할 수 있었기 때문에 나이가 많은 미혼자는 혼인 절차 없이 상투를 틀기도 했는데 이런 경우 ‘건상투’라고 했다. 1895년 을미 개혁 단발령을 계기로 상투 머리를 금지했다. 중국의 조선족들은 해방 진적까지도 상투머리를 하였으나, 이후에는 거의 사라지고 벽촌 등지의 노인층에서만 더러 볼 수 있었다.

참고문헌
  • 박경휘, 『중국 조선족의 의식주 생활 풍습』(집문당, 1994)
  • 연변대학 제1차 중국 조선족 문화 학술 토론회 논문집, 『중국 조선족 문화 연구』(목원 대학교 출판부, 1994)
  • 김순심, 「중국 조선족의 복식 연구 1」(『복식』 20, 한국 복식 학회, 1993)
  • 김순심, 「중국 조선족의 민족 복식 연구」(『응용 과학 연구』 7-1, 서원대 응용과학 연구소, 1998)
관련항목
이전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