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감자 참안

한자 大坎子 慘案
중문 大坎子惨案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왕청현 대감자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성격 학살사건
관련인물/단체 일본제국주의 조선군 제19사단
발생|시작 시기/일시 1932년 3월 1일
종결 시기/일시 1932년 4월
발생|시작 장소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왕청현 대감자
종결 장소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왕청현 대감자
정의

1932년 3월과 4월에 일본군이 길림성 왕청현 대감자에서 약 40여 명의 조선인을 살해하고, 80여채의 가옥을 방화한 사건.

개설

1932년 3월 1일, 50여 명의 기병으로 구성된 일본군이 왕청현 대감자에 진입하여, 약 30여 명의 주민들을 살해하였다. 같은 해 4월에 다시 마을에 들어온 일본군은 마을 80여 세대의 가옥을 불태우고 10여 명의 농민들을 체포하였으며, 적위대 통신원 김기찬 등 8명을 집에 가두고 불을 질러 살해하였다.

역사적 배경

일제가 실행한 ‘삼광정책(三光政策)’은 모조리 죽이고(殺光), 모조리 불사르고(燒光), 모조리 빼앗는(搶光)을 말한다.

1931년 ‘9·18 사변’ 이후 연변에서는 항일 투쟁이 활발히 일어났다. 일제는 자신들의 식민 통치를 굳건히하기 위하여, 이른바 ‘치안 숙정 계획’을 제정하고, 연변지역에 끊임없는 ‘토벌’을 자행하였다.

일제는 1932년 4월부터 조선나남에 주둔하고 있던 일제 조선군 제19사단으로 이루어진 ‘간도 파견대’를 연변에 보낸다. 또한 장춘, 영안에서도 일본군을 연변으로 파견하여 야만적인 토벌을 실시하였다.

일제는 이 때 비행기와 대포까지 동원하여 381차의 토벌을 감행하여, 연길현 의란구, 왕청현 대감자, 덕원리, 전각루 등지를 폐허로 만들었고, 약 4,000여 명을 살해하는 끔찍한 학살을 저질렀다.

경과

일본군은 1932년 3월 1일과 4월 두 차례에 걸쳐 왕청현 대감자에 들어와 가옥을 불태우고 주민들을 체포 및 살해하였다.

결과

1932년 3월 1일 30여 명의 주민들을 살해하였다. 같은 해 4월에는 마을 80여 세대의 가옥을 방화하고, 10여 명의 농민들을 체포하였으며, 적위대 통신원 김기찬 등 8명을 집에 가두고 불을 질러 살해하였다.

참고문헌
  • 김철수 등 9명 저, 『중국 조선족 역사상식』(연변인민출판사,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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