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춘 일본 영사 분관

한자 琿春 日本 領事 分管
중문 珲春日本領事分管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지명/시설
지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혼춘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성격 일제 침략 기관
개관|개장 시기/일시 1910년 11월
이전 시기/일시 1920년 9월 9일
최초 설립지 길림성 연변조선자치주 혼춘시[ 대문 밖 한 백성의 집]
정의

1910년 용정(龍井)일본 영사관 관할 아래 길림성 혼춘(琿春)에 건립된 영사 분관.

개설

일제는 1910년부터 용정과 혼춘, 국자가(局子街), 두도구(頭道溝), 배초구 등지에 영사관과 영사 분관을 설치하였다.

구 혼춘 일본 영사 분관은 1910년 11월 서대문밖 한 백성의 집을 빌려 개관하였고, 새 혼춘 일본 영사 분관은 1920년 9월 개관하였다. 그러나 이 해 10월 2일 혼춘 사건으로 소각되었다. 그래서 1921년 11월 다시 준공하여 사용하였다.

혼춘 일본 영사 분관은 용정에 있는 총영사관의 관할에 있었는데, 혼춘 경내의 하다문, 마적달, 흑정자 등지에 경찰 분서를 춘화의 동흥진에 경찰 파출소를 두고 관할하였다.

혼춘 일본 영사 분관은 1920년 10월 2일 일어난 혼춘 사건이 일어났던 곳으로, 이 사건을 계기로 경신 참변이 일어나게 된다.

건립 경위

일제는 중국의 불평등 조약인 ‘두만강 중한 계무 조항(圖們江中韓界務條項)’을 맺은 후 1907년 설치하였던 통감부 간도 파출소를 대신하여 용정과 혼춘, 국자가, 투도구, 배초구 등지에 영사관과 영사 분관을 설치하였다.

변천

구 혼춘 일본 영사 분관은 1910년 11월 서대문 밖 한 백성의 집을 빌려 개관하였다. 그리고 새 혼춘 일본 영사 분관은 벽돌 벽에 기와를 얹은 단층집으로, 1918년 8월에 공사를 시작하여 1920년 7월에 준공하였다. 그리고 1920년 9월 개관하였으나, 이 해 10월 2일 혼춘 사건으로 소각되었다. 그래서 1921년 5월에 다시 공사를 시작하였고, 그 해 11월 준공하였다.

활동사항

1920년 6월 북간도의 봉오동(鳳梧洞)에서 독립군에게 대패 당한 일제의 조선군(朝鮮軍)은 그 보복으로 서북간도 지역에 근거지를 구축하고 항일전을 펼치고 있는 독립군들을 소멸시키기 위해 「간도 지방 불령 선인 초토 계획(間島地方不逞鮮人剿討計劃)」을 세웠다.

이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일제는 1920년 10월 2일 장강호(長江好)를 두목으로 하는 마적단을 매수하여 혼춘을 습격하였다. 마적단은 새벽 4시부터 상가를 약탈하고 혼춘 일본 영사 분관에 방화한 뒤 오전 8시에 퇴각하였다.

이로 인하여 중국인 70여 명, 조선인 7명이 살해당했고, 일본측의 피해는 사망 13명, 중상 11명, 경상 20여 명에 비어있던 혼춘 일본 영사관이 불에 탔다. 일제는 혼춘 일본 영사 분관을 습격한 무리들을 한국 독립군·중국군·러시아인이 혼합되어 있는 단체라고 주장하였다. 이에 일제는 재만 일본인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한다는 구실로 간도로 출병하게 된다.

현황

1983년까지 단층집 3채가 남아있었으나, 그 후 공안국 청사를 지으면서 모두 철거되어, 현재는 남아있는 건물이 없다.

참고문헌
  • 김철수 저, 『연변 항일 사적지 연구』(연변인민출판사, 2001)
  • 한국 독립운동사 연구소, 『한국 독립운동사 사전』한국 독립운동사 연구소,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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