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월구 천주교당

한자 明月溝 天主 敎堂
중문 明月沟天主教堂
분야 역사/근현대|종교/기독교
유형 지명/시설
지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안도현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성격 종교 시설
면적 1,564㎡
개관|개장 시기/일시 1931년
개칭 시기/일시 1935년
관련 사항 시기/일시 1890년대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22년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23년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26년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26년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42년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46년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51년 8월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66년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93년
관련 사항 시기/일시 2008년 이후
최초 설립지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안도현 명월구진 신안로
정의

1931년 만주(滿州) 간도성(間島省) 연길현(延吉縣) 명월구시(明月溝市)에 설립되어 1946년에 폐쇄된 연길 교구 소속 본당.

건립 경위

동북 지역에서의 천주교는 1890년대 전파되어, 1910년대에 널리 확산되었다. 1919년 3·13 운동 이후 이 지역의 반일 운동에 많은 종교인과 단체들이 참가였으나, 천주교는 일부분만 참가하고 소극적이었다. 이는 이 시기 천주교가 독일인 신부의 영향으로 초연적인 태도를 취하였고, 기독교의 교세에 눌려 크게 발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1920년대 일제가 반일 운동에 앞장섰던 기독교를 탄압하는 것을 기회로 천주교는 교세를 확장하였다. 이에 따라 1920년 서울 교구에서 원산 교구의 소속이 되었고, 1923년 독립되어 연변 교구가 설립하였다. 이 교구에는 화룡(和龍)·연길·왕청(汪淸)·혼춘(琿春)·안도(安圖)·돈화(敦化) 지구가 포함되었다.

이후 천주교는 연변에 웅장한 성당을 건축하고, 수도원·수사원을 설치하였으며 독일인 신부를 파견하여 교세를 확장하였다. 1922년의 통계에 의하면 천주교 신도는 노두구(老頭溝) 210명, 명월구 2,300여 명, 연길 635명[1923년]으로 확대되었다.

변천

명월구의 옹성랍자(甕聲磖子) 마을은 1900년대 초 조선 이주민들이 개척한 교우촌으로 팔도구 본당의 관할지역이었다. 명월구 성당은 1924년 교우촌 내에 보록 학교(保祿學校)[1926년 해성 학교로 개칭]가 설립된 후, 1926년 ‘대령동(大嶺洞) 본당’의 창설과 함께 대령동 본당의 공소로 개설되었다.

대령동 본당은 1910년 ‘팔도구 본당’의 공소였다가, 1926년 에머를링 신부가 주임으로 파견되어 본당으로 창설[10여 개 공소, 1,500여 명의 교우를 관할]되었다. 대령동 본당의 공소였던 ‘명월구 천주교당’은 1931년 으로 분리·신설되어 본당으로 승격되었고, 1935년 ‘명월구 본당’으로 개칭되었다. 한편 1936년 명월구 본당에서 액목현(額穆縣) 신참시(新站市)에 위치한 ‘신참 본당’을 분할·창설하였다.

1942년 알빈 슈미트(Alwin Schmid) 신부의 설계로 성당을 신축하여, 1944년 벽돌양옥의 성당을 완성하였다. 성당은 단순한 장방형 공간[1,564㎡]으로 건축되었고, 천장 선의 흐름이 신자들의 시선을 제단 십자가로 유도하게 되어있었다. 성전 진입로 2층 계단에 대형 종도 설치되었다.

1946년 만주를 점령한 소련군에게 성당을 비롯한 모든 교회 재산을 몰수당함으로써 본당은 폐쇄되어 이후 침묵의 교회가 되었다. 이후 2대 주임 렌하르트(A. Lenhard) 신부가 팔로군[인민 해방군 제8군]에 체포되어 남평(南坪)[난핑] 수용소로 끌려갔다가 2년 뒤 돌아와 1951년 8월까지 사목하였다. 1946년부터 1951년까지는 성당으로 사용되었다.

1966년 안도현 인민 정부는 성당을 압수하여 현청으로 개조해서 28년 동안 사용하였다. 1993년 정부로부터 성당을 돌려받고, 이후 15년간 성당으로 사용하였다. 하지만 안도현 정부가 현청으로 쓰기 위해 2층 건물을 3층으로 개축하여 성당의 원형이 크게 훼손되었고, 건물도 노후 되어 2008년 이후에는 더 이상 성당으로 사용되지 못하였다. 그래서 명월구 본당의 맥을 잇는 안도 본당[주임 윤덕헌 신부]에서는 현청 시절 무기고로 쓰던 허름한 건물을 성당으로 사용하였다.

활동 사항

시래플(C. Schrafl)[주(周)] 신부가 초대 주임으로 부임하여 학교를 증축하고 교세 신장에 힘을 쏟았다. 또한 올리베타노 베네딕토 수녀회 분원을 설치하고, 동(同) 회의 수녀들로 하여금 진료소를 운영하게 하였다.

1936년에는 공소 7개를 포함하여, 총 1,266명의 신도를 관리하였다. 본당 내의 신심 단체로 부인들의 모임인 안나회를 포함하여 3개의 단체가 있었고, 본당 운영의 사업체로 해성 학교, 진료소가 있었다.

현황

명월구 천주교당은 현재 안도현(安圖縣)[안도현] 명월구진 신안로에 위치해 있었다. 이 성당은 안도현 도시계획 구역에 포함되어 2008년 6월 23일에 헐렸다. 새 성당은 옛 성당에서 600m 떨어진 개발 구역 9,500㎡ 부지에 세워질 계획이다.

참고문헌
  • 한국 가톨릭 대사전 편찬 위원회, 『한국 가톨릭 대사전』한국 교회사 연구소, 2006
이전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