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도 일본 총영사관

한자 間島 日本 總領事館
중문 间岛日本总领使馆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지명/시설
지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용정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성격 외교 행정 기구
준공 시기/일시 1909년 11월 2일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28년 10월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31년 11월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11년 5월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22년 11월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26년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38년 3월 31일
최초 설립지 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용정시 육도하로 869번지
현 소재지 중국 길림성 용정시 육도하로 869번지
정의

1909년 일제가 간도 용정에 대륙 침략 정책의 일환으로 세운 총영사관.

건립 경위

1909년 일제는 중국과 불평등 조약인 “간도 협약”을 체결하여, 간도 지역 한인들의 생명, 재산을 보호한다는 명분 아래 세웠던 통감부 간도 파출소를 폐쇄하는 대신 용정, 국자가, 훈춘 등지에 외교 기관인 일본 총영사관과 분관을 설치하였다.

간도 일본 총영사관은 1909년 11월 2일 용정에 설치되었다. 연길, 화룡, 훈춘, 왕청 그리고 당시 봉천성에 속한 안도현 등 5개 현의 사무를 관할하였다.

변천

총영사관 청사는 1911년 5월과 1922년 11월 두 차례의 화재로 소실되었다. 일제는 20여 만 원의 자금을 투입하여 약 3년 간 공사를 진행하여 1926년 청사를 다시 준공하였다. 1937년 11월 일본과 만주국이 체결한 ‘만주국의 치외 법권을 철회하고 남만 철도 부속지 행정권을 양도할 것에 관한 조약’에 의하여 그해 12월 간도 일본 총영사관과 5개의 영사분관 및 경찰서를 철수하였다.

구성

건립 초기에는 대리 총영사와 부관 1명, 서리 2명, 경찰서장 1명과 16명의 경찰을 두었는데, 이들 대부분은 통감부 간도 파출소 직원들이었다. 그러다가 1920년 300명의 경찰을 두었고 총영사관에 경찰부를 설치하였다. 동시에 국자가, 천보산, 팔도하자 등 10여 곳에 경찰서를 설치하였다.

1928년 10월에는 일본으로부터 100여 명의 경찰을 보충하였고 1931년 11월에는 총영사관 경찰부에 ‘특수 수사반’을 두고 항일 운동 단체 및 운동가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체포 공작을 전개하였다.

활동 사항

간도 일본 총영사관은 1919년 3월 13일 당시 군벌과 결탁하여 ‘3·13’ 반일 시위를 탄압했으며 1930년 5월 간도 지역에서 일어난 ‘붉은 5월 투쟁’을 탄압했다. 1921년부터 1937년까지 16년 동안 간도 일본 총영사관 소속 경찰서에서 항일 운동가들을 28,245명을 체포했는데 그 중 여자가 1,121명이었다. 각종 형벌을 받은 사람은 16,949명이나 된다.

9·18 사변 이후 1934년 한 해 동안 3,635명이 체포되었는데, 당시 연변 조선족 인구가 42만 6,000여 명이었으니 인구 비례를 따지면 170명당 1명이 체포된 셈이다.

현황

간도 일본 총영사관으로 사용되던 건물은 현재 중국용정시 인민 정부 건물로 활용하고 있다. 또한 당시 간도 일본 총영사관 감옥은 “간도 일본 총영사관 죄증 전람”이라는 안내판을 부쳐서 전시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참고문헌
  • 재간도 일본 총영사관, 『간도 사정 경개(間島事情梗槪)』(만주, 1933)
  • 유광렬, 『간도 소사(間島小事)』(태화서관, 1933)
  • 김철수, 『연변 항일 사적지 연구』(연변인민출판사, 2002)
  • 권구훈, 「일제의 통감부 간도 파출소 설치와 성격」(『한국 독립운동사 연구』 6, 독립 기념관 한국 독립운동사 연구소,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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