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분류

5·30 폭동

한자 5·30 暴動
중문 5·30暴动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연길시  용정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성격 반제국주의적 항일 투쟁|반봉건 투쟁
관련인물/단체 박윤서|김근|중국 공산당 만주성 위원회 연변 당부|붉은 5월 투쟁 위원회
발생|시작 시기/일시 1930년 5월 29일
종결 시기/일시 1930년 5월 30일
발생|시작 장소 연길, 용정
종결 장소 용정
정의

1930년 5월 29일부터 5월 31일까지 중국 공산당 만주성 위원회 연변 당부 소속의 한인 공산주의자들이 주도한 폭동.

개설

5·30 폭동은 1929년경부터 추진되었던 한인 공산 주의자들의 중국 공산당 입당이 가닦을 잡아가고 1930년에 들어서면서 중국 공산당의 대중 노선이 급격하게 좌경화되면서 전개되었다. 폭동은 한인 공산 주의자들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는데 연변 당부에서는 1930년 4월 24일 붉은 5월 투쟁 위원회를 조직하고 활동에 들어갔으며, 5월 1일 국제 노동절 기념일, 5월 30일 상해 사건 기념일, 8월 1일 국제 인터내셔날 기념일, 8월 29일 한일 합방 기념일, 11월 7일 러시아 혁명 기념일, 12월 1일 광동 쿠데타 기념일 등을 계기로 대규모 폭동과 지속적인 대중 투쟁을 전개하였다. 5·30 폭동은 이 같은 일련의 폭동 가운데 용정 지역을 중심으로 전개된 항일 투쟁적 성격이 강한 투쟁의 하나였다.

역사적 배경

1928년 말 봉천군벌이 중국 국민당과 손을 잡고 공산당에 대해 대대적인 탄압을 가하자 중국 공산당 만주성 위원회는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었다. 또한 중국 공산당은 1928년 6월에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제6차 전국 대표대회에서 혁명의 새로운 고조를 위해 일성(一省) 또는 그 이상의 성(省)에서의 혁명의 고조와 노농 소비에트의 수립이 가능하다고 하여 이른바 이입삼 노선(李立三路線)으로 대표되는 좌경 모험주의 노선을 정식으로 채택하였다. 따라서 중국 공산당의 노선 변화와 일국 일당 주의(一國一黨主義)에 입각한 한인 공산 주의자들의 중국 공산당 입당 및 일본 제국 주의와의 강력한 투쟁을 원했던 한인 사회의 민족 의식이 5·30 폭동의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하였다.

경과

5·30 폭동은 5월 29일부터 31일에 걸쳐 야간에 전개되었다. 선전문의 살포와 일본 영사관의 습격, 조선 인민회. 총독부 보조서당, 일부 지주가에 대한 방화가 있었으며, 동양 척식 주식 회사(동척, 東拓)에 대한 폭탄 투척, 발전소 파괴, 전선 절단. 철도 교량 소각 등이 이루어졌다. 선전문을 통해서는 일본 제국 주의 및 일체 제국주의와 국민당 군벌정부의 타도, 일체 지주의 토지를 몰수하여 민족적 구별 없이 농민에게 분배할 것, 조선 혁명을 원조할 것, 소련을 무장적으로 옹호할 것, 지세(地稅) 가혹한 잡세(雜稅)를 거부하고 일체의 부채를 갚지 말자, 노농 소비에트 정권을 건설할 것 등을 주장하였다.

의의와 평가

5·30 폭동은 이후 김근을 비롯한 주동자들이 체포되면서 일단락되는 것처럼 보였으나 폭동이 성공적이었다고 판단한 중국 공산당은 더욱 강화된 좌경 모험 주의적 폭동의 전개를 계획하였다. 이는 이른바 간도 폭동(間島暴動)으로 확대되었다. 또한 일련의 폭동은 연변 지역에서의 공산주의 운동의 역량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한인 사회의 민족 운동의 흐름에도 일정하게 영향을 끼쳤다.

참고문헌
  • 황민호, 『재만 한인 사회와 민족 운동』(국학 자료원, 1998)
  • 박창욱, 「간도 대폭동 봉기와 조선족 공산 주의자들」(『間島史 新論』 下, 우리들의 편지사, 1993)
  • 장세윤, 「1930년대 초 간도 지방에서의 한인 봉기」(『동북아 질서의 형성과 변동』한국 정치 외교 학회, 1994)
  • 황민호, 「일제하 간도 봉기의 전개와 한인 사회」(『한국 민족 운동사 연구』 65,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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