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분류

경박호 전투

한자 鏡泊湖 戰鬪
중문 镜泊湖战斗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흑룡강성 목단강시 영안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성격 한·중 연합에 의한 항일 투쟁
관련인물/단체 지청천|신숙|요진산|한국 독립군|길림 구국군|중한 연합 토일군
발생|시작 시기/일시 1933년 2월 28일
발생|시작 장소 중국 흑룡강성 경박호 일대
정의

중국 동북 지역 경박호(鏡泊湖) 일대에서 1933년 2월 28일에서 29일에 걸쳐 한중 연합군이 일·만 연합군을 공격하여 대승한 항일 투쟁.

역사적 배경

1932년 11월 하순 2차 쌍성보(雙城堡) 전투의 패배와 일본의 괴뢰 ‘만주국’ 수립 등으로 곤경에 처한 한국 독립군 지도부 지청천(池靑天)·김창환(金昌煥)·신숙(申肅) 등은 그해 말 활동의 중심지를 종전의 북만주에서 동포들이 많이 사는 동만주로 옮기기로 결정하였다. 동시에 그 지역에서 활동 중이던 중국 의용군인 길림 구국군과 연합하여 항일 투쟁을 전개하는 방안도 결정하였다.

이에 1933년 1월 13일 수백 명 규모의 한국 독립군과 길림 구국군 제14사는 합작하여 공동 작전을 전개하기로 합의하고 ‘중한 연합 토일군(中韓聯合討日軍)[혹은 중한 토일 연합군, 이하 ‘연합군’으로 약함]’이라는 연합 부대를 결성하였다. 연합군은 그해 2월 10일 참모장 신숙과 참모 김상덕(金尙德)을 남경의 국민당 정부에 특파하여 재정적 후원과 무기·탄약의 지원을 요청하기도 했다.

경과

동만 지방으로 옮겨가던 한국 독립군은 1933년 2월 28일 길림 구국군 제14사와 함께 경박호 동쪽에 이르렀다. 그런데 마침 이 날 일본군 약 1개 대대가 동경성(東京城)을 출발하여 경박호 쪽으로 진공해 온다는 정보가 입수되었다. 이에 연합군은 일·만군이 통과할 만한 호수 주변 곳곳에 4개 부대로 나누어 매복하고 대기하였다. 이때 중국군 요진산(姚振山) 부대도 합류하였다. 예상대로 그 날 밤 일·만군 후속 부대가 얼음판 위를 지나갈 때, 매복한 연합군이 기습하여 큰 성과를 거두었다.

결과

연합군은 도주하던 일·만군을 토벌하여 거의 1개 대대를 전멸시키는 큰 전과를 올렸다. 아울러 소총 및 경기관총 70여 정, 실탄 6,000여 발, 기타 수많은 물품을 노획하기도 했다.

의의와 평가

경박호 전투는 한국 독립군이 동만 지역에서 중국 의용군인 길림 구국군과 연합하여 거둔 최초의 승리였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참고문헌
  • 신숙, 『나의 一生』(일신사, 1963)
  • 김승학, 『韓國 獨立史』(독립 문화사, 1965)
  • 조경한, 『白岡 回顧錄』(한국 종교 협의회, 1979)
  • 『한국 민족 문화 대백과 사전』 (한국학 중앙 연구원, 1991)
  • 독립 기념관 독립운동사 연구소, 『한국 독립운동사 사전』1-2 (한국 독립운동사 연구소,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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