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안비

한자 問安婢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평생 의례와 세시 풍속
지역 요령성  
시대 조선/조선 후기|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의례 장소 요령성 관전현 통강촌
정의

조선족 사회에서 새해에 사돈댁이나 이웃에게 부인을 대신하여 문안 인사를 보내던 여자.

개설

음력 설날에 부인들이 사돈집이나 친척들에게 나들이 옷을 잘 차려 입은 여자 종을 보내 새해 문안 인사를 대신 드리는 것이다. 요즘에는 간단한 선물을 보내거나 직접 축하의 글귀를 쓴 연하장을 보낸다.

연원 및 변천

조선영조 때 학자 이광려(李匡呂)의 시에도 “뉘 집 문안비가 뉘 집으로 문안하러 들어가는가(誰家問安婢問安入誰家)”라고 하였다. 유만공(柳晩恭)의 『세시풍요(歲時風謠)』(1843)에는 부잣집 여종들 가운데 문안비로 뽑히게 되면 머리에서 발끝까지 설빔으로 단장하는데, “부잣집 여종들은 너무 경쾌하여(豪家婢子太輕儇), 신코는 뾰족하고 비녀는 어깨를 누르네(鞋鼻尖尖髻壓肩). 길을 끼고 같이 걸어가며 찬란한 나들이옷 자랑하고(挾道聯行誇袨服), 명령에 따라 새해를 하례하네(好爲將命賀新年)”라고 읊었다. 현재 요령성(遼寧省) 조선족 사회에서는 이러한 풍습은 전하는 것이 없고, 다만 덕을 베풀어준 분에게 새해맞이 선물을 인사장, 명함과 함께 대신 전달해주기도 한다.

절차

과거에 중류 이상의 가정 부인들은 자기 대신 잘 차려입은 젊은 여자를 일가친척이나 그 밖의 신세진 분들, 관계있는 이에게 문안비를 대신 보냈다. 이들은 “누구 집에서 새해 인사를 왔습니다. 과세 안녕하셨습니까? 새해에는 소원 성취하신다니 고맙습니다.”라고 새해 인사를 전달한다. 문안을 받는 집에서는 문안비에게 세배상을 한 상 차려주었으며, 약간의 세뱃돈도 주었다. 또 그 집에서도 역시 문안비를 답례로 보내기도 한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새해에 대신 문안인사를 하는 것 가운데 대청마루에는 옷칠을 한 세함 위에 세함지(歲銜紙)를 소반 위에 놓는다. 그러면 방문한 사람이 세함지에 붓으로 이름을 쓰거나, 대신 명함과 같은 형식의 첩자(帖子)를 세함(歲銜=歲啣)에 넣고 간다. 설날에는 집주인이 하례차 집을 자주 비우거나 만남에 따른 오해를 피하기 위해 대신 인사장을 받는 것이다. 하례객이 와서 이름을 써서 놓고 갈 뿐, 환영하거나 환송하는 일이 없었다.

참고문헌
  • 장정룡, 『한·중 세시 풍속 및 가요 연구』(집문당, 1988)
  • 임기중 역주 해설·유만공 원저, 『우리 세시 풍속의 노래』(집문당, 1996)
  • 『조선 대세시기 Ⅲ-경도잡지·열양세시기·동국세시기』(국립 민속 박물관, 2007)
  • 『중국 요령성 한인 동포의 생활문화』(국립 민속 박물관, 1997)
  • 최상수, 『한국의 세시풍속』(홍인 문화사, 1960)
  • 천수산, 『중국 조선족 풍속』(북경 민족 출판사,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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