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분류

옥천동[훈춘시]

한자 玉泉洞[琿春市]
중문 玉泉洞[珲春市]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훈춘시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성격 조선족 마을
면적 경작지면적 58㏊(수전 36㏊)
가구수 51호
인구[남/여] 총217명(조선족 126명)
개설 시기/일시 1856년(함풍 5년)
변천 시기/일시 1875년
변천 시기/일시 1881년
변천 시기/일시 1912년 중화민국 초년
변천 시기/일시 1910년~1929년
변천 시기/일시 1920년
변천 시기/일시 1934년
변천 시기/일시 1936년
변천 시기/일시 1945년
변천 시기/일시 1958년
변천 시기/일시 1983년
변천 시기/일시 1986년
변천 시기/일시 중화민국6년(1917)
조선족 마을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훈춘시 경신향
정의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훈춘시 경신향에 속한 조선족 마을.

개설

훈춘시 동남쪽 47㎞ 떨어진 경신향의 아름다운 풍경구의 하나이다. 북쪽은 산에 기대어 있고 마을 남쪽은 확 트인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조선을 마주 바라볼 수 있는 곳이다.

명칭 유래

북쪽 산아래에서 맑은 샘물이 솟구쳐 흐르기 시작한 때부터 옥천동이라고 마을 이름을 칭하였다.

형성 및 변천

1856년(함풍 5년)에 마을이 섰고, 1881년(광서 초년) 후에 인구가 계속 늘어나 18도집(十八道集)이라고 했다. 1912년에 마을 북쪽의 산 아래에서 맑은 샘물이 솟구쳐 흐르기 시작한 때부터 옥천동이라고 마을 이름을 지었다.

옥천동은 1875년 광서년간에는 진원보(鎭遠堡), 돈인사(敦仁社)에 소속되었고 1910년 (선통 2년)부터 1929년까지 경신향 18도집촌(十八道集村)에 소속되었으며 1920년에는 3구유신향(三區有信鄕)에 속했고 1934년에 경신보 옥천동갑(敬信堡玉泉洞甲)이었으며 1936년(민국 25년)에는 경신촌 옥천동툰이었다. 1945년 8월 15일에 일본이 항복한 후 경신구 2도구촌(二道溝村)에 속했다가, 1958년에 2도포대대 제1소대로 편성되었다. 이후 1983년에 2도포촌에서 갈라져 나와 옥천동촌을 이루었다가 1986년에는 또 이도포촌에 합병되었다.

1917년에 일본 주재 훈춘령사령관이 분관 경찰서 분서를 설치하였으며, 1931년에 반일전사 박식영(朴植榮)이 여기서 출옥 투쟁에 성공했다.

자연환경

옥천동 중심으로 북쪽은 산에 기대어 있고 마을 남쪽은 확 트인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조선을 마주 바라보고 있다.

현황

북쪽 산기슭에 길게 뻗은 취락으로서 51호에 217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그 중에서 조선족은 126명이었다. 경작지면적 58㏊ 중에 36㏊는 수전(논)이다.

참고문헌
  • 심혜숙, 『중국 조선족 취락지명과 인구분포』(연변대학출판사 서울대학교출판부,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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