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인근

한자 方仁根
중문 方仁根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상세정보
성격 소설가
성별
대표관직|경력 조선문단창간|숭덕학교교사|소설가|춘해프로덕션사장
활동 시기/일시 1924년
활동 시기/일시 1927년
활동 시기/일시 1929년~1935년
활동 시기/일시 1954년
몰년 시기/일시 1975년
출생지 충청남도 예산
수학|강학지 경성
수학|강학지 일본동경
수학|강학지 일본동경
정의

일제 강점기와 해방 이후 국내에서 활동한 소설가.

가계

호는 춘해(春海)이며 1899년 충청남도 예산 출생이다

활동 사항

배재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에 건너가 청산학원(靑山學院) 중등부를 거쳐 중앙대학(中央大學) 독문과에서 수학하였다. 1924년에는 사재(私財)를 내어 종합 월간 문예지 『조선문단(朝鮮文壇)』을 창간하였다.

이는 같은 시기에 문단을 풍미하였던 계급주의적 프롤레타리아문학운동에 대항, 민족주의 문학을 옹호하기 위한 것으로, 『조선문단』은 박영희(朴英熙)·김기진(金基鎭) 등의 프로 작가들이 활약하던 『개벽(開闢)』에 맞서서 최서해(崔曙海)·채만식(蔡萬植)·박화성(朴花城)·이장희(李章熙) 등의 문인을 배출시켰다.

『조선문단』 창간 이후 1927년에는 숭덕중학(崇德中學)에서 교편 생활을 하였으나, 1929년에 기독교신보사(基督敎申報社)에 입사, 이어 『문예공론(文藝公論)』 편집, 1931년 『신생(新生)』 편집장, 1935년 『시조(時兆)』 편집장 등을 역임하였다.

광복 후에는 영화에도 관여, 1954년 춘해(春海)프로덕션의 사장을 지내기도 하였다. 초기에는 「하늘과 바다」(1923) 등의 시를 썼으나 곧 소설로 전향하였다.

학문과 저술

그의 작품으로는 「분투 奮鬪」(1923)·「어머니」(1924)·「비오는 날」(1924)·「살인 殺人」(1924)·「죽지 못하는 사람들」(1925)·「외로움」(1926)·「최박사 崔博士」(1926)·「노총각」(1926)·「강신애 康信愛」(1926)·「자기를 찾은 자」(1926)·「반동 反動」(1927)·「순간의 낙원」(1927)·「살인방화 殺人放火」(1927)·「백의인농민 白衣人農民」(1927)·「금비녀」(1927)·「행진곡」(1930)·「울며 세배받는 이」(1932)·「눈물 지팡이」(1932)·「바다를 건너서」(1932)·「모뽀이 모껄」(1932) 등의 단편이 있다.

또한 「평화로운 봄」(1933)·「박철 朴哲」(1935)·「새길」(1935)·「화심 花心」(1936)·「그 후의 방랑의 가인(歌人)」·「은행나무」(1941) 등의 단편과 「슬픈 해결(解決)」(1939) 등의 중편, 「마도(魔都)의 향불」(1934)·「춘몽 春夢」(1936)·「화심 花心」(1935)·「쌍홍무 雙紅舞」(1939)·「방랑의 가인(歌人)」(1939)·「젊은 아내」(1942)·「동방의 새봄」(1944)·「여인풍경 女人風景」(1955)·「명일 明日」(1947)·「인생극장 人生劇場」(1954)·「청춘야화 靑春夜話」(1955)·「동방춘 東方春」(1956) 등의 장편 외에, 「금십자가 金十字架」(1932) 등의 희곡을 남겼다.

이 밖에 「농민문학과 종교문학」(1927)을 비롯한 평론 및 각 잡지의 월평(月評)을 썼다. 그는 낭만주의적 대중 소설을 주로 발표하였으며, 광복 후 한때 탐정물을 시도하기도 하는 등 소설의 심미적 가치나 사회성보다는 대중적·통속적인 면에 의미를 부여하였다. 『조선문단』 창간을 비롯한 문단 활동이 그의 주요 문학사적 공로로 평가되고 있다.

참고문헌
  • 백철, 『신문학사조사』(신구 문화사, 1970)
  • 김동인 외, 『한국 문단사』(삼문사, 1982)
  • 방인근,「사십년간의 문예지」(방인근, 『사상계』, 19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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