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규

한자 朴翰奎
중문 朴翰奎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예술인
지역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상세정보
성격 음악가
성별
대표경력 동북 신흥 문예 협회 음악부장|조선 인민군 협주단 작곡가|조선인민군 문예창작실 소속 작곡가|공훈예술가
출생 시기/일시 1919년
수학 시기/일시 1930년대 전후
활동 시기/일시 1945년
활동 시기/일시 1947년
활동 시기/일시 1950년 6.25 전쟁
활동 시기/일시 1972년부터 1984년
활동 시기/일시 1960년 전후
몰년 시기/일시 1992년 사망
출생지 함경북도 회령군
거주|이주지 길림성 용정
학교|수학지 길림성 용정
학교|수학지 일본
활동지 흑룡강성 목단강시
활동지 평양
활동지 평양
활동지 평양
정의

해방 이후 북한에서 활동한 작곡가.

개설

박한규는 1947년 국립 교향 악단에 입단하여 바이올린 연주자로 있으면서 작곡가로 활동하였다. 그는 북한문화 선전성 문화예술지도원, 조선 인민군 문예 창작실 실장 등을 맡으며 여러 음악을 작곡하였다.

활동 사항

1919년 함경북도 회령군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 부친을 따라 중국길림성 용정으로 이주하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소학교와 중학교를 졸업하였다. 이후 중국동북 지역에서 교사로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음악에 뜻을 두고 바이올린을 공부하였다. 그는 일본 음악 학원에서 음악을 익혔고, 하얼빈에서 바이올린을 배웠다. 1945년 목단강 고려 중학교에서 음악 교원으로 일하였고, 동북신흥문예 협회 음악 부장으로 활동하였다. 1947년에는 귀국해 문화 선전성 문화 예술부원을 지내다가 국립 교향 악단에 입단하였다. 이 때 그는 바이올린 연주자로 있으면서 음악 창작에 몰두하였다. 이 시기에 창작한 가요 「인민공화국 선포의 노래」가 북한 창립일에 연주되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바다의 노래」·「구국투쟁가」·「빨치산의 노래」를 비롯한 가요와 교성곡 「동해」를 창작하였다. 1950년 6·25전쟁 때는 조선 인민군 협주단 작곡가로 있으면서 전시 가요를 창작하였다. 그는 「해안포병의 노래」·「승리하고 돌아오리라」·「고지에서」·「안해의 노래」 등의 전시 가요와 교성곡 「조국의 고지」를 창작하였다. 1972년부터 1984년 인민 무력부 조선 인민군 문예 창작실 작곡가로 활동하였고, 1960년 공훈 예술가 칭호를 받기도 하였다. 이후 그는 1992년에 사망하였다.

저술 및 작품

『구국투쟁가』(1948), 『해안 포병의 노래』(1952), 『아무도 몰라』(1953), 『손풍금수 왔네』(1957), 『오 눈보라 눈보라』(1961)

상훈과 추모

국가훈장 1급 2개와 노력훈장 1개, 국가훈장 2급 4개를 수상하였다.

참고문헌
  • 宋芳松, 『한겨레 음악인 대사전』, (보고사,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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