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팔양

한자 朴八陽
중문 朴八阳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상세정보
성격 시인
성별
대표관직|경력 조선 최고인민위원회 대의원
출생 시기/일시 1905년 8월 2일
활동 시기/일시 1925년
활동 시기/일시 1934년
활동 시기/일시 1946년
몰년 시기/일시 1988년
출생지 경기도 수원시 안룡면
정의

일제 강점기 여러 자연시와 경향시 등을 발표하고 카프에 참여한 시인

개설

박팔양은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 동맹에 참여하였다가 이후 자진 탈퇴하고 구인회에 가담하여 활동하였다. 해방 이후에는 조선 문학가 동맹에 가담하였다. 그는 서정성과 예술성에 관심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현실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사회적 현실에 대한 작품도 발표하였다. 카프에서 탈퇴한 이후에는 도시의 병리적 현상에 대한 작품을 발표하였다. 또한 해방 이후 월북하여 김일성을 우상화하는 글을 썼다.

가계

박팔양은 1905년 8월 2일 경기도 수원군 안룡면에서 가난한 농부의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호는 여수(麗水)이다.

활동 사항

1920년 서울재동 보통 학교를 거쳐 배재 고등 보통 학교를 졸업한 후, 1923년 경성법학전문학교를 졸업하였다. 경성법학전문학교 재학 시절 정지용(鄭芝容)·박제찬·김화산 등과 함께 동인지 『요람(搖籃)』을 간행하였다. 192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신의 주(酒)」가 당선 되어 등단하였다. 1925년에는 서울청년회 일원으로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 동맹에 참여하였다. 그러나 2년 만에 자진 탈퇴하고 1934년에 구인회에 가담하였다. 1940년 박문서관에서 『여수시초(時抄)』를 간행하였다. 중외일보·만선일보 기자를 역임하였고, 해방 후에는 조선 문학가 동맹에 가담하였다. 1946년에는 월북하여 『박팔양시집』(1946)과 서사시 『황해의 노래』(1958), 『눈보라 만리』(1961) 등을 간행하였다. 월북 후에 그는 문예총 중앙 위원과 작가 동맹 부위원장직을 거쳐서 최고 인민회의 대의원을 역임하였다. 한때 평양 문학 대학의 교수를 지내기도 하였다. 그러나 1966년 반당종파분자로 숙청되었고, 그 이후의 활동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학문과 저술

그의 작품으로는 시 「저자에 가는 날」, 「데모」, 「승리의 봄」, 시집 『여수시초(麗水詩抄)』, 『박팔양시집(朴八陽詩集)』, 소설 『오후 여섯 시』 등이 있다.

그는 「구월(九月)의 시단(詩壇)」과 같은 시에서는 서정성과 예술성을 강조하였다. 계급 문학 운동에 관심을 가지고 활동하다가 1927년부터 이와 거리를 두기 시작하면서 카프를 자진 탈퇴했다. 이후로는 도시 문명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시를 썼다. 「1929년의 어느 도시의 풍경」 이후의 시는 도시의 병리적 현상에 대해 다루고 있다. 북한에서 지은 작품으로는 「눈보라 만리」, 「위대한 그분」, 「밀림의 력사」, 「승리의 기빨」, 「건설의 노래」 등 수십 편이 있다. 이 작품들은 대부분 김일성을 우상화하는 글이다.

참고문헌
  • 유성호, 「여수 박팔양 시연구」,(연세대학교 석사 학위 논문, 1989)
  • 홍신선, 「박팔양 도회적 병리와 자연과의 거리」,(『현대 문학』, 1990)
  • 이명재, 『북한 문학 사전』(국학 자료원, 1995)
관련항목
이전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