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후영

한자 戴厚英
중문 戴厚英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상세정보
성격 중국 현대 여류 소설가, 평론가
성별
대표관직|경력 상해 대학교
출생 시기/일시 1938년 3월 18일
활동 시기/일시 1960년
활동 시기/일시 1968년
활동 시기/일시 1972년
활동 시기/일시 1979년
출생지 안휘성(安徽省) 영상현(潁上縣) 회하(淮河)
수학|강학지 상해
정의

문화대혁명 시기인 1968년 당시 비판받던 중국의 시인 원지에[聞捷, 1923~1971]를 조사하는 심사단원으로 참가한 후 반혁명분자로 몰려 고난을 받았던 중국 현대 여성 작가.

가계

1938년 3월 18일 중국안휘성(安徽省) 영상현(潁上縣) 회하(淮河)에서 7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상점 점원으로 일했으며, 어머니는 공장의 미싱사였다.

활동 사항

대후영은 1956년 상해의 화동사범대학(華東師範大學) 중문학부에 입학했다. 1960년 3월 대학을 졸업하고, 상해작가협회 문학 연구소에서 문예 평론가로 활동 했다. 그녀는 1961년에 결혼을 했고, 1966년 문화대혁명이 시작되자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1968년 당시 비판받던 중국의 시인 원지에를 조사하는 심사단원으로 참가했다. 이후 5·7간부학교에서 그를 다시 만나게 되었고, 이에 반혁명분자로 몰려 고난을 받았다. 이 무렵에는 남편에게 이혼을 요청 받음과 동시에 반혁명 대자보 비판을 받기까지 하였다. 1970년 원지에와 함께 당에 결혼 신청을 했지만 허락받지 못하였다. 이에 1971년 원지에는 자살을 하였다. 이 당시의 경험은 훗날 『시인의 죽음[詩人之死]』이라는 자전적 소설로 작품화되었다. 1972년 상해시 당위원회의 창작그룹에 배치된 후 4년 동안 대학 교재 편집, 외국 문학 소개 등의 일을 하였다. 1979년 상해의 복단대학교(福旦大學校) 중문학부로 전임되었으며, 1980년 동대학의 분교인 상해대학교로 전근되어 갔다. 1980년 이후 상해대학교에서 문예이론 수업을 담당하면서 창작 활동에 주력하였다. 대후영은 1980년대 중국현대 휴머니즘 문학에서 큰 주목을 받게 되었다. 반우파 투쟁 시기와 문화대혁명을 거쳐 개방화의 분위기 속에 발표된 그의 작품은 간행과 동시에 작품 내용을 둘러싸고 논쟁이 일어나서 국내외의 주목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중국 당국으로부터 금서[禁書] 조치를 당했다. 오늘날까지도 찬반논쟁이 있는 것이 그의 작품이다. 이러한 연유로 한때 그가 자살했다는 소문이 있기도 했다. 또한 1997년에는 그녀가 상해의 자택에서 조카에게 살해되었다는 기사가 상해 신문에 실렸다고 전해진다. 그녀의 죽음에 대해서는 확실히 밝혀져 있지 않다.

학문과 저술

대표적인 작품으로 『사람아 아, 사람아』 (1980), 『시인의 죽음』 (1982), 『하늘의 발자국 소리[空中的足音]』(1985) 등이 있다. 이 세 작품은 문화대혁명 시기 중국 지식인들의 연대기를 그린 3부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외에도 중단편 소설집 『부드러운 사슬』이 있다.

참고문헌
  • 다이허우잉 저·신영복 옮김, 『사람아 아, 사람아! : 중국 현대 휴머니즘 문학의 기수 다이허우잉』,(다섯수레, 2005)
  • 강경구, 「戴厚英, 『인아, 인!』3부작 연구」,(『중국 어문학』42,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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