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철

한자 金友哲
중문 金友哲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상세정보
성격 북한에서 활동한 평론가·시인
성별
대표관직|경력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동맹|북조선 문화예술 총동맹 평북위원회|김우철시선집 간행
출생 시기/일시 1915년 9월 20일
활동 시기/일시 1930년대 전후
활동 시기/일시 1930년대
활동 시기/일시 1934년
활동 시기/일시 1946년
몰년 시기/일시 1959년 6월 17일
출생지 평안북도 의주군
수학|강학지 신의주 고등보통학교
정의

일제 강점기와 해방 후 북한에서 활동한 평론가·시인.

개설

김우철은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 동맹에 가담하였으며 해방 이후 북조선 문화예술 총동맹 평북 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였다.

활동 사항

김우철은 평안북도 의주군의 농가에서 출생하였다. 신의주 고등 보통학교을 다녔으며 재학 당시부터 ‘백은성’이라는 필명으로 동요를 창작하여 발표하였다. 독서회 및 동맹휴학 사건으로 출학 당한 이후 1929년 일본으로 건너갔다가 유학을 포기하고 1931년경 귀국하였다.

1930년 초반 계급 문학운동에서 농민 문학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놓고 백철(白鐵)이 안함광(安含光)과 논쟁을 벌일 때, 김우철은 백철의 견해에 가까이 서서 농민에 대한 계급 의식의 일방적인 주입이 불가함을 역설하였다.

김우철은 1930년대 후반기 카프(KAPF :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동맹)에 가담하였고, 아동문학의 문제를 계급적인 관점에서 논의한 평론을 발표하였다. 카프의 맹원답게 그가 주로 작품을 발표한 매체는 『별나라』, 『신소년』등 계급문학을 표방한 잡지였다. 같은 시기에 「진달래꽃」, 동화 「닭똥장사」, 소설 「방학날」 등 아동문학 작품들을 발표하였다.

이후 김우철은 아동문학의 문제를 계급적인 관점에서 논의한 평론 「아동문학에 관하야」(중앙일보, 1931.12.) ·「동화와 아동문학-동화의 지위 및 역할」(조선중앙일보, 1933.7.)·「아동문학의 문제」(조선중앙일보, 1934.5.)·「아동문학의 문제-특히 창작동화에 대하여」(조선일보, 1937.1.) 등을 발표하였다. 한편 1930년대 초중반 계급 문학 운동에서 농민문학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놓고 백철이 안함광(安含光)과 논쟁을 벌이고 있을 때, 김우철은 백철의 견해에 가까이 서서 농민에 대한 계급의식의 일방적인 주입이 불가함을 역설하였고, 농민문학이 계급문학의 동맹자적인 지위에서 발전해야 함을 강조하였다. ˂농민문학에 대한 과거의 오류˃(조선일보, 1933.8.)·˂동맹자문학인 농민문학의 필연성˃(조선일보, 1933.8.)·˂농촌생활을 기초로 농민문학을 수립-캅프작가의 임무˃(조선일보, 1933.8.)·˂잡지 ‘농민’일파의 농민문학론 비판˃(조선중앙일보, 1933.10.) 등이 바로 이에 해당한다.

1934년 김우철은 ‘신건설사(新建設社)’ 사건에 연류가 되어 1년여의 옥고를 치렀다. 이후 「낭만적 인간탐조」(조선중앙일보, 1936.4.)라는 글을 발표하였다.

1946년 김우철은 해방 직후 북조선 문화예술 총동맹 평북위원회 위원장으로 북한에서 활동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1947년에 첫 시집 『나의 조국』이 출판되었다. 1950년 전쟁이 발발하자 종군작가로 활동하였고 1957년 4월에 발간된 『김우철 시선집』에는 해방 전부터 발표한 그의 우수한 시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한설야 숙청에 따른 당의 문예정책에 반발, 철도에서 자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학문과 저술

『나의 조국』(1947)

『김우철 시선집』(1957)

참고문헌
  • 백철, 『신문학 사조사』(신구 문화사, 1980)
  • 권영민, 『한국 민족 문학론 연구』(민음사, 1989)
  • 이명재, 『북한 문학 사전』(국학 자료원, 1995)
  • 권영민, 『한국 현대 문학 대사전』(서울대학교 출판부,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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