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계 조선족 농악무[본계시]

한자 本溪 朝鮮族 農樂舞[本溪市]
중문 本溪朝鲜族农乐舞[本溪市]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요령성 본계시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무용 농사일과 관련된 조선족 전통 무용
정의

요령성 본계시의 무형문화 유산에 등재된 조선족 전통 무용.

개설

농악 놀이는 크게 농악무, 농악회, 농악 노래, 농악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농악무의 구성

농악놀이에서 꽹과리를 치는 사람이 농악 놀이의 지휘자가 되는데 이를 '상쇠'라고 한다. 상쇠는 항상 대열의 선두에 서서 악대의 진영을 일렬 종대, 원형 등 여러 가지 형태로 변형시키며 악곡의 변화도 상쇠의 손에 달린다. 상쇠는 머리에 상모를 단 전립[벙거지]을 쓴다. 상쇠는 상모를 앞뒤로 흔들기도 하고 뱅뱅 돌리기도 하여 재주를 부리며 춤을 추는데 이것을 '상쇠놀이'라고 말한다.

농악대의 기수, 기타 잡이들도 전립을 쓰기는 하나 대부분의 경우에는 아름답게 장식한 종이 고깔을 쓴다. 잡이들은 붉은 마고자에 누른색, 흰색, 검은색의 끝동을 소매에 달아 입고 남색 허리띠를 가슴에 눌러 띠여 뒤로 잡아매고 가지가지 색깔의 무명주 온폭 드림을 구색을 맞춰 세폭씩 뒤들에 매달아 드린다. 잡색들은 각각 제 특징대로 탈을 쓰고 옷차림을 한다.

농악무의 구분

농악무에는 '마당 돌이'와 '구정 놀이'가 있다. '마당 돌이'는 앞선 사람이 대열을 지어 둥그렇게 돌며 여러 가지의 가락에 맞추어 춤을 추는 원무이다. 가락에 따라서 각각 제멋대로 즉흥 무도 추며 두 세명씩 짝을 지어 끼리끼리 대무도 춘다. 뛰기도 하고 달리기도 하고 들쑥날쑥 서로 엇갈리기도 한다. 잡이들이 돌거나 돌아서서 연주할 때에 탈을 쓴 잡색들이 가운데로 들어가서 제각기 춤을 춘다.

'구정 놀이'는 '영산 놀이'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잡이나 잡색들이 각자 개인의 연기를 뽐내는 독무, 대무 등이다. 이런 독무, 대무 등은 각 개인의 연기 수준을 겨루는 경연과 다름 없는 놀이이고 설장구는 장구 장이들의 놀이이다. 법고놀이는 북잡이들의 놀이이며 소고놀이는 소고 잡이들의 놀이이다. 이런 놀이들에서는 한 사람씩 나와서 단독 연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 단독 연기자가 지휘자가 되어 대열을 이끌고 이를 지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농악무의 특성

농악무는 극회적인 놀이이다. 앞선 사람이 대오를 짓고 연무하는 것은 '마당 돌이'와 같으나 장단만 맞추어서 마음대로 추는 군무와는 달리 줄을 맞추어 춤을 추는 형식으로 노는 놀이이다. 이것은 '진굿', '문잡이', '도적 잡이', '허허 굿', '노래 굿', '풍류 굿' 등과 잡색의 탈놀이로 이루어진다.

'진굿'에는 '모란진', '국화진', '아자진', '을자진'등이 있는데 뛰어 닫는 분열 행진으로 군대가 진을 치고 훈련하는 것을 본 딴 놀이이다. '문잡이'는 두 군사가 진을 치고 훈련하는 것을 본 딴 놀이이다. '문잡이'는 두 군사가 관문을 사이에 두고 싸우는 것을 내용으로 하며, 영기로 문을 세운 뒤 두 편의 농악대가 서로 옥신각신하며 오르내리는 모양을 하며 노는 놀이이다.

'도적 잡이'는 이름 그대로 도적을 잡는 것을 내용으로 한 놀이이다. '탈놀이'는 잡색의 우두머리인 총쟁이가 놀이를 지휘한다. 지방에 따라 인물과 인원수가 같지 않으나 모두가 봉산 탈놀이, 강령 탈놀이와 비슷하다. 다만 농악 탈놀이는 간단하며 장황한 대사가 없이 춤이나 너름새로만 그 내용을 형상화한다.

양반이나 중의 추태 또는 비행을 폭로하고 풍자, 야유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는 것은 다른 탈놀이와 동일하다. 다만 농악 탈놀이에서는 거문고, 가야금, 당비파 반주가 아니라 타악기 반주인만큼, 동작이 강하고 억세며 사건이 매우 짧으면서도 빠른 것이 특징적이다.

농악 노래 및 농악기

농악 노래는 농악 놀이에 따르는 노래로서 일하며 부르는 '상회 소리', '만두레 소리'와 같은 민요[농사와 관련된 민요]도 있고 다른 노래도 있다. 농악 노래는 일정한 자리에 서서도 부르고 행렬 중에서도 부르는데 주악이 그치면 노래를 부르고 노래가 그치면 주악을 계속하기도 하며 징소리는 내지 않고 북장구와 가볍게 울려주는 꽹과리 가락의 반주로 부르기도 한다. 한사람이 선소리를 멕이면 군중이 받는 화창도 있고 일제히 함께 부르는 제창도 있다. 농악기는 타악기를 중심으로 하는데 주로 꽹과리[쇠], 징, 장구, 북, 소고 등이 있다. 농악대에서는 기수, 총각, 장구, 북, 소고 등이 중요하다.

농악대는 기수, 총각, 대방, 잡이, 잡색 등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일반적으로 기수[부락의 상징인 ‘농사천하지대본’이 라고 쓴 농기, ‘령’자를 쓴 령기를 든 사람]가 2명, 군률을 수호하는 위엄으로 내세운 총각, 대방이 2명이다. 잡이는 그 수가 일정하지 않으나 대개 꽹과리를 치는 쇠잡이가 4~5명, 징수[징을 치는 사람] 1~2명, 장구 잡이 4~5명, 북 잡이 5~6명, 소고 잡이 7~8명 정도로 구성된다. 잡색에는 초쟁이[포수], 양반 광대, 할미 광대, 각시 광대, 창부[남자 광대]가 각각 2명이고, 비리쇠는 보통 1명을 두지만 지방에 따라 그 수에 조금씩 차이가 있다.

농악 놀이의 특색

예전에 농악놀이는 모내기, 김매기 등 농경 작업을 할 때 벌어졌을 뿐만 아니라 정초, 단오, 백중, 추석 등 명절날이나 기타 집단적인 행사, 유희, 오락에서도 거행되었으며 매구[섣달 그믐날 밤에 지난 1년 동안의 부정한 것, 불길한 것을 농악으로 써 다 돌아내고 깨끗이 털어 씻고서 복스러운 새해를 맞이하는 행사]나 지신 밟기 등 무속적 행사에서도 벌어졌다.

이렇듯 군중이 모이는 곳에서는 농악 놀이가 벌어졌으며 농악이 울리는 곳에는 으레 농악놀이가 따르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이 가운데서도 모내기나 김매기 때 작업에서 오는 피로를 덜고 작업 효율을 높이기 위해 벌였던 농악놀이가 가장 주목을 받는다.

모내기나 김매기 철에 같은 두레에 속한 사람들은 아침 일찍 마을 '영자'님 또는 상쇠잡이 집 마당에 모인다. 그들은 ‘농자천하지대본야’라고 쓴 농기를 장대에 달고 꿩 장목을 그 꼭대기에 꽂아서 마당 앞에 내세운 다음[용을 그린 기발을 내걸기도 함] 그 농기를 중심으로 농악 놀이를 한다. 한바탕 마음껏 뛰놀다가는 농기를 앞세우고 논두렁 길이나 들판 길을 따라 한 줄로 서서 꽹과리, 북, 징 등을 두드리고 피리를 불며 농부가의 가락에 맞춰 마구잡이 춤을 춘다. 아이를 어깨에 올려 춤을 추게 하기도 하고 껑충껑충 멋을 부리면서 일터로 나간다.

일터에 이른 후 논두렁이나 밭머리에 농기를 꽂아놓고 한참동안 상모를 돌리며 놀다가 영자님이나 상쇠 잡이를 비롯한 한 두 사람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다 논에 뛰어 들어 모내기와 김매기 등을 한다. 이때 상쇠잡이가 북을 둘러메고 장단을 치며 선소리를 먹이고 군중들은 소리를 받아 후렴을 제창하면서 일을 하는데, 그 속도가 때로는 느리고 때로는 소나기처럼 숨 가쁘게 몰아치기도 한다. 특히 일이 거의 끝날 무렵이나 해질 무렵에는 장단을 빠르게 쳐서 더욱 힘을 내고 환호성을 치며 일할 수 있도록 한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생긴 일, 그때에 해야 할 말들을 노래로 부르기도 한다. 저물녘에 일을 끝내고 돌아올 때도 일터로 나갈 때와 마찬가지로 농기를 앞세우고 한 줄로 서서 흥겨운 농악에 맞추어 춤추고 노래하며 돌아온다. 그날 작업한 농가의 추녀 끝에 농기를 세워두고 바깥 마당에서 한바탕 열두 상모를 돌리며 여흥을 즐기고, 이어서 멍석을 펴고 마당에서 함께 저녁 식사를 한다.

농악 놀이의 기원

민족적 특색을 보이는 농악 놀이는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고대 우리 조상들의 풍습을 기록한 옛 문헌 『위서』, 『후한서』 등에 의하면 우리 조상들이 봄갈이와 파종이 끝난 5월 단오나 추수가 끝난 음력 10월에는 모두 모여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는 낮과 밤을 이어 술을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추었다고 한다. 이것을 농악 놀이의 원시 형태라고 볼 수 있다.

또 농악에 사용되는 징, 꽹과리 등은 청동기나 철기를 쓸 때부터 만들어졌다고 추측된다. 그러나 이는 오늘날의 농악 놀이와 같이 복잡하고 다채로운 것이었을 수는 없다. 처음에는 매우 단조로운 형식이었을 것이다. 이후 우리 민족의 생활 역사와 더불어 발전·전승되어 현재와 같은 농악 놀이에 이른 것이다.

참고문헌
  • 崔凤锡, 『中国 朝鲜族 舞蹈 论稿』,(延边 大学 出版社, 1996)
  • 崔文植, 『조선 민족 역사 문화 연구 총서』 4,8,9 (요령민족출판사, 2006)
  • 黄有福, 『走进 中国 少数 民族 丛书-朝鲜族』(요령민족출판사, 2012)
  • 장선애, 「중국 동북 3성 조선족 비물질 문화재에 대한 연구」, (『용인대 박사 논문』, 2012)
  • 인민넷 (http://korean.people.com.cn/74090/1096006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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