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족 농악무[목단강시]

한자 朝鮮族 農樂舞[牡丹江市]
중문 朝鲜族农乐舞[牡丹江市]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흑룡강성 목단강시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무용 농사일과 관련된 조선족 전통 무용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09년 9월 30일
정의

흑룡강성 목단강시에서 보유하고 있는 조선족 민간 무용 중 하나로, 농민이 풍년을 자축하며 추던 전통 무용.

개설

농악무는 조선족 대표적 민간 전통 활동으로 농경 노동에서 유래했지만, 고대 제사의 특성도 가지는데 그 형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한 가지는 춤과 무언극 형식으로 진행되는 플롯(plot) 중심의 연출이고, 다른 한 가지는 신년과 풍년 자축 시, 격렬하고 풍부한 전통 무용을 위주로 한 대중적 공연이다.

조선족 농악무의 현황

농악무는 조선 민족의 민속춤에서 가장 오랜 역사와 광범위한 지역 특성을 가진 대표적 춤이다. 농악무는 살길을 찾아 중국으로 이주해온 조선족들에 의해 중국에 전파되었는데 그 역사가 이미 100여 년에 이르렀다.

농악무는 농악이라고도 하는데 길림(吉林), 흑룡강(黑龍江), 요령(遼寧) 등 조선족 거주지에서 전해진다. 그 유래는 고조선 시대 농경에서 파종 및 수확 할 때 행해지던 제천 의식의 일종인 ‘지신 밟기’로 볼 수 있다. 농악무는 음악, 춤, 노래가 한데 어우러진 종합 민간 예술이다.

젊은 남성이 공연하는 ‘소고무’, 아이들이 공연하는 ‘인간 피라미드’, 여럿이 여러 사람이 같이 공연하는 ‘편고무’, 남녀가 같이 공연할 수 있는 ‘장고무’, 많은 사람이 큰 부채를 가지고 공연하는 고대 ‘무무(巫舞)’에서 기원한 ‘부채춤’, 가형 무용[동물 따위로 분장하여 공연]인 ‘학춤’, 공연 끝자락에 멋진 인상을 남겨줄 수 있는 남자들의 ‘상모무’ 등이 있다. 상모무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감정을 격양시키는 춤으로 춤꾼이 머리를 이용하여 20m 정도의 끈을 흔드는 고난도 기술이 특징적이다.

농악무는 각 마을에서 조직한 농악대가 그 지역 연회에 참가하게 할 때 공연되었다. 농악대의 최전방에는 영기(令旗)[전통시대 농민 사이에서 농악을 연희할 때 장식용으로 쓰던 기]와 “농자천하지대본(農者下之大本)”이라고 적힌 농기를 선두에 둔다. 바로 뒤에는 징을 치며 총지휘를 하는 남자 한 명이 따른다. 그의 인솔 하에 손에 태평소, 나팔, 각종 북 종류의 악기를 든 악단과 분장한 춤꾼들이 의장대를 이루고, 이어 소고무, 편고무, 장고무, 부채춤, 학춤, 상고무, 가면무, 무언극 공연 팀이 있는데 참가인수에는 제한이 없다.

상모무는 농악무 중 중요한 형식으로 종류가 많고 무용기술도 다양한데 ‘장상모’, ‘중상모’, ‘단상모’, ‘선상무’, ‘털상무’, ‘꼬리 상무’, ‘불꽃 상무’ 등이 있다. 상모의 꼬리를 돌리는 기술은 좌우로 돌리기, 앞뒤로 세우기, 한 번 돌리기, 두 번 돌리기, 심지어 세 번 돌리기까지 있으며, 서서 돌리기. 앉아서 돌리기, 무릎 꿇고 돌리기, 손으로 땅을 짚고 엎드려 돌리며 전진 하기[扑地甩]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상모 꼬리는 몇 척이나 될 정도로 긴 것도 있고, 몇 장이나 될 정도로 긴 것도 있다.

조선족 농악무는 중국길림성, 요령성, 흑룡강성 내 조선족들 사이에서 전해진다. 특히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에 대부분의 농악대가 소재한다. 농악무는 각종 명절이나 의식에서 추는 춤으로 공연 예술의 일종이다. 한반도에서 유래되었으며, 19세기말 중국으로 건너온 조선족 이주민들이 중국에 소개하기 시작하였다. 중국에 건너온 이후에는 농악대 구성에서는 관악파트가 확대되었고, 타 민족의 영향을 받아 상모의 검은 색이 붉은 비단 천으로 바뀌었다. 또한 예전에는 남성 연주자 일색이었으나, 지금은 여성들도 연주에 참여한다.

농악무는 춤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평화와 풍작을 기원하는 지신 밟기와 고사 의식을 거행한다. 농악대 우두머리는 '농자천하지대본'이라는 깃발을 앞세우고, 농악 연주자들이 태평소, 징, 꽹과리, 북 등의 악기를 연주하며 뒤를 따른다. 그 뒤로 춤을 추며 따르는 춤꾼들이 있다. 중국 조선족의 오랜 삶과 노동 속에서 함께 해 온 농악무는 조선족의 삶 속에 스며들어 오랜 지혜의 산물이자 소중한 문화유산으로서 전해지고 있다.

2009년 9월 30일 유네스코 보호 비물질 문화유산 정부간 위원회(保護非物質文化遺產政府間委員會) 제4차 회의에서 「인류 비물질 문화유산 대표작 명록(人類非物質文化遺產代表作名錄)」에 심의·통과되었다.

왕청현 '조선족 농악무'가 국가 문화부 비물질 문화재 보호 중심의 초보적인 심사에 통과되었을 뿐만 아니라 유엔 비물질 문화 보호 중심에 세계급 비물질 문화유산을 신청하였다. 이는 길림성에서 유일하게 세계급 비물질 문화유산으로 신청된 무형문화재이다. 본래 전해진 4가지 판본의 조선족 농악무를 기초에 두고 재가공과 창작을 거듭하고 있으며, 국가급 전업 무용 선생을 초빙하여 지도를 받음으로써 5번째 판본을 더욱 다채롭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조선족 농악무의 기원

조선민족은 가무에 능한 민족으로 설 명절이나 경사스런 날이면 남녀 노소를 막론하고 북 가락과 가야금으로 흥겨운 춤마당을 벌이는 것이 생활화되어 있다. 백두산아래 거주하는 조선족은 장기간 북방 벼농사에 종사하여 왔다. 이들은 넓은 면적의 논 관리를 편리하게 하기 위하여 집단 노동과 상호 협력의 노동 형태를 취해왔다. 사람들은 일터에 나갈 때면 편고(扁鼓)와 새납(嗩吶), 농기구를 가지고 일터로 나갔다. 그리고 휴식 시간이면 명쾌한 북소리에 흥겹게 춤판을 벌임으로 피로를 씻어내곤 하였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러한 즉흥적인 가무는 오락성을 띤 조선족 민간 무용으로 정착되었으며, 이를 통해 각종 전통 민속 활동이 행해져 왔다.

조선족 농악무에는 조선족들이 험악한 생활환경에 직면하여 서로 도와가면서 피로와 망국의 설움을 달래고 야수의 침입을 물리쳐온 치열한 역사와 함께 강렬한 생존 의식, 개척 정신, 낙관 주의 정신 등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또한 우리 선조들의 '천지 만물 일체' 사상이 체현되고 있으며 농경 생활과 세시 풍속을 결합시킨 민간 예술로서 독특한 매력을 지니고 있어 곳곳에서 환영받고 있다.

조선족 농악무의 예술 특색

조선족의 대표적인 전통춤인 ’농악무’는 일반적으로 2가지 형식을 갖는다. 하나는 무용(舞蹈)과 무언극(啞劇)형식으로 줄거리중심의 공연이며, 다른 하나는 새해의 시작과 풍년을 경축하는 시기에 전통 무용을 내용으로 하는 대중적인 표현 활동이다. 이때에 각 마을에서는 ‘농악무’ 팀을 보내어 현지의 축제에 참여하도록 한다.

공연팀의 선두에서는 ‘영기(令旗)’와 ‘농업위천하지본(農業為天下之本)’이라는 농기(農旗)를 들고 총지휘를 담당하는 ‘꽹과리[小鑼, 상쇠]’가 뒤따른다. 그의 인솔 하에 ‘태평소(太平簫)’, ‘나팔(喇叭)’과 각종 북(鼓)류 악단 단원들이 여러 인물로 분장하여 농악무의 의장부분을 구성한다. 이어서 소고품[小鼓舞, 남 무용수들이 공연], 편고춤(扁鼓舞), 장고춤(長鼓舞), 부채춤(扇舞),학춤(鶴舞), 상모춤(象帽舞), 탈춤[面具舞] 및 무언극[啞劇] 공연단원들이 뒤따른다.

농악무 공연은 총 12부분으로 구성된다. 공연이 무르익음에 따라 무용의 예술성은 더욱 농후해 진다. 많은 사람들이 추는 전통 ‘편고무’는 남녀 모두가 참가할 수 있는 북춤으로서 무용수들이 사용하는 편고의 크기가 성별에 따라 구분된다. 남자 무용수들은 군무를 위주로 하여 격렬하고 즐거운 북소리에 맞추어 달리면서 남자의 힘찬 기세를 드러낸다. 편고를 맨 여자 무용수는 다양하고 숙련된 북 장단 기교를 보여주어야 할 뿐만 아니라 편고의 의장단에 맞추어 조선족 여성의 외유내강, 대범함을 지닌 춤사위를 보여 주어야 한다.

서로 다른 풍격의 편고무는 관객들의 찬사를 받는다. 현재 조선족의 장고춤은 많은 사람들에 알려져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 무용을 단지 여성들의 무용으로만 알고 있다. 민간에서의 장고춤은 남녀가 모두 표현할 수 있는 무용이다. 장고는 조선족 악기 중 음색이 가장 아름답고 자기만의 특색을 갖춘 악기 중의 하나로서 북가락[鼓槌]과 채[鼓鞭], 손장단으로 가락을 맞춘다. 표현력이 풍부하다는 특색을 지닌다. 장고는 악기일 뿐만 아니라 무용 소품이기도 하다. 무용수의 북장단과 춤사위는 관객을 도취시키고 황홀하게 만든다. 리듬이 빨라지면서 무용도 분방하고 활발하게 바뀐다. 이때 무용에 심취한 무용수는 각 개인 특유의 기술을 보여주며 공연의 분위기를 최고조에 이르게 한다.

장고무에 이어 특대형의 부채춤이 뒤따르는데 이는 고대의 무속 무용인 부채춤에서 기원되었다. 무용수는 하나 혹은 두개의 부채를 들고 도형이나 조형을 만들면서 표현한다. 부채춤에 이어 탈춤 유형의 무용이 이어진다. 아름다운 학으로 변장한 무용수들이 음악에 맞추어 리듬을 타며 학춤을 춘다. 이는 미래의 안녕과 길함을 기원하는 것이다. 농악무는 남자 무용수들의 상모춤으로 끝을 맺는다. 이는 종래로 사람들을 흥분하고 격동하게 하는 무용으로 꼽힌다. 무용수들은 머리위의 채색 띠로 여러 가지의 기교를 보여주는데, 길게는 20m 길이의 채색 띠로 기교를 표현하기도 한다. 소고와 편고, 장고를 든 무용수들이 상모춤과 어우러져 농악무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참고문헌
  • 崔文植, 『조선 민족 역사 문화 연구 총서』 4,8,9 (요령민족출판사, 2006)
  • 黄有福, 『走进 中国 少数 民族 丛书-朝鲜族』(요령민족출판사, 2012)
  • 장선애, 「중국 동북 3성 조선족 비물질 문화재에 대한 연구」(용인 대학교 박사 학위 논문,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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