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분류

「조선족 검무」[도문시]

한자 朝鮮族 劍舞[圖們市]
중문 朝鮮族刀舞[图们市]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도문시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무용 칼을 이용하여 추는 조선족 전통 무용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06년
정의

「검무」에서 변화된 무용으로, 용감함, 대담함, 지혜와 낙관적인 성향 등 조선족의 기개와 민족적 특성을 두드러지게 표현한 것.

개설

「조선족 검무(朝鮮族劍舞)」는 우리말로 「칼춤」이라 한다. 「칼춤」은 여러 무용가들이 전복(戰服)을 입고 전립(戰粒)을 쓰고 서로 맞서서 양손에 쥔 칼을 휘저으며 추는 춤으로 문헌에는 검기무(劒器舞)라고도 되어있다.

칼춤의 기원

길림성 무형 문화유산인 「칼춤」은 고대의 「검무」에서 변화된 것인데 수천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장중하고 맹렬한 기세가 춤의 전반 과정에 드러난다. 이를 통해 용감하고 지혜로우며, 낙관적인 조선 민족의 기개를 표현한다.

「칼춤」은 「검무」에서 변화된 무용이다. 「칼춤」과 「검무」에서는 웅장함과 용맹함, 강한 약동성이 작품 전체에 표현되고 있다. 춤사위에는 강인함과 유연함이 잘 조화되어 있고 낭만적인 무용 자태는 강한 호소력이 있어 조선족 무용의 우수성을 보여준다.

춤사위는 강하면서도 부드럽고 격렬함과 느긋함, 빠름과 느림이 교체되어 조화를 이룬다. 거센 바람 마냥 앞으로 나가면서 좌우로 찌르는 동작, 가볍고도 빠르게 움직이는 동작, 칼을 돌릴 때마다 규칙적으로 나는 ‘절렁 절렁’ 소리와 낭만적인 춤 자태는 강한 흡인력을 지니며 민족적 특색을 보여준다. 예술인들의 노력에 힘입어 「칼춤」은 리듬이 더욱 완벽해졌고, 그 안에 새로운 시대 정신이 부여되었다.

「칼춤」은 조선족의 고유한 춤으로서 신라 시기부터 유래되었다고 한다. 속설에 전하기를 신라 때에 황창이라는 소년이 어린 나이에 백제의 시중에 들어가 「칼춤」을 추었는데 그때 구경하는 사람들이 토성처럼 그를 둘러쌌다. 백제 왕이 이 소문을 듣고 황창을 불러서 「칼춤」을 추라고 명하였다. 황창은 기회를 노리다가 칼로 왕을 찔렀다. 이에 백제인들이 황창을 붙잡아 죽였다. 황창의 죽음을 슬퍼한 신라인들이 「칼춤」을 추었는데 그것이 지금도 전해지고 있다고 한다. 신라국에서는 황창의 얼굴 모습을 본 따 가면을 만들어 쓰고 손에는 절반으로 끊어진 칼을 들고 황창이 공연하던 무용 동작으로 춤을 추었다고 한다.

이러한 유래 때문인지 「칼춤」에는 어딘가 처절하고 슬픈 분위기가 있다. 빨간색, 파란색, 검정색으로 선명하게 대비되는 옷과 번쩍이는 칼날을 상상해도 그렇고 무시무시한 긴 칼과는 어울리지 않게 가녀린 몸매와 얼굴을 한 무용수를 봐도 그러하다.

칼춤의 특징

「칼춤」에 쓰이는 칼은 보통 칼과는 다른 모양이다. 13㎝쯤 되는 둥근 나무자루를 붉은 색비단으로 싸고 자루 끝에 색실을 달았다. 춤을 추기 위해서는 음악이 있어야 하기에 삼현육각의 6인조 악사를 배치한다. 맨 오른쪽에 자리하는 북치는 사람과 장고치는 사람이 약간씩 옆으로 틀어 앉아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며 장단을 맞춘다.

「칼춤」은 여러 무용수들이 전복(戰服)을 입고 전립(戰粒)을 쓰고 서로 맞서서 양손에 쥔 칼을 휘저으며 추는 춤으로 문헌에는 검기무(劒器舞)라고도 하였다. 검기무는 『진연 의궤(進宴儀軌)』와 같은 궁중 연향(宮中宴享)에 관한 문헌에 보이는 바, 궁중과 관아의 잔치 자리에서 연행(演行)되었다.

「칼춤」은 조선 민족의 전통 무용으로 오랜 세월 전해져 내려오면서 무대 예술로 자리잡았으며, 형식상에서 어느 정도 변화가 있기는 하지만 민족 고유의 특색과 풍격을 의연히 보존하고 있다.

참고문헌
  • 崔凤锡, 『中国 朝鲜族 舞蹈 论稿』(延边 大学 出版社, 1996)
  • 黄有福, 『走进 中国 少数 民族 丛书-朝鲜族』(요령민족출판사, 2012)
  • 장선애, 「중국 동북 3성 조선족 비물질 문화재에 대한 연구」(용인 대학교 박사 학위 논문,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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