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족 농악무-걸립무」[철령시]

한자 朝鮮族 農樂舞-乞粒舞[鐵鈴市]
영문 Chaoxian Dynasty Farmers' Dance
중문 朝鲜族农乐舞-乞粒舞[铁铃市]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요령성 철령시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무용 조선족 전통 무용
정의

요령성 본계 동부에 위치한 환인만족자치현의 횡도천(横道川)과 육도하(六道河) 지역에서 전승되어 오고 있는 조선족 민간 무용.

개설

「걸립무」는 「상모춤」, 「장고춤」, 「접시춤」 등 여러 가지 무용 형식에 줄다리기에 보이는 「쌍층무」의 정수가 서로 융합되어 형성된 무용으로 조선 민족의 독특한 풍격을 보여주는 민속 문화이다.

걸립무의 기원

「걸립무」는 「조선족 농악무」의 일부분으로서 한나라 때에 이미 「걸립무」가 존재하였음을 역사 자료에서 찾아볼 수 있다. 환인만족자치현 및 그 일대의 역대 귀족 관료들의 무덤에서 5세기 전후의 여러 벽화가 출토되었는데 이들 벽화에 당시 이와 같은 무용을 했던 것이 형상화되어 있다.

중일 갑오 전쟁 이후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자 망국노가 되는 것을 원치 않은 조선인들이 중국으로 이주하였다. 이때 조선평안북도 벽동군(碧潼郡)의 백성[김명환(金明焕)]이 온 가구를 거느리고 환인 횡도천에 이주하게 된다. 그는 황무지를 개간하는 고단한 생활 속에서도 실의에 빠지지 않고 가무로 피로를 풀며 이를 즐겼다. 악기가 없어 젓가락이나 그릇의 소리로 이를 대신했는데, 이는 이후 「표주박춤[瓢舞]」, 「접시춤[碟舞]」 등의 출현을 가져왔고, 이와 함께 2,0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걸립무」도 환인 지역에 자리 잡게 되었다.

「걸립무」는 한대에 형성되었으며 그 발전 과정 중에 조선 민족의 민족적 특성이 결합되었다. 여기서 '걸립'은 쌀알을 구하는 활동을 말한다. 그 유래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전한다. 첫째, 조선족들의 집단 거주 지역에서 큰 행사나 활동을 거행할 때 마을의 지위 있는 사람이 가무에 능한 사람들을 조직하여 아름다운 민족 복장을 입고 풍악을 울리며 부자집, 상점 앞에서 공연하며 지원을 요청한 것에서 기원했다는 것이다. 둘째, 사찰을 건축 혹은 중수하기 위하여 중들이 자바라를 들고 경문을 읽으며 동냥하러 다닌 것에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걸립무」의 형식에도 이런 옛 풍속이 반영되어 있다. 예를 들면 지금도 「걸립무」의 지휘자는 손에 자바라를 들고 춤을 춘다는 점이다. 이는 곧 사찰의 중들이 동냥하러 다니던 모습에서 전래된 것이라고 한다.

「쌍층무」는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조선족 민중들이 즐기는 줄다리기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대회 참가 인원과 구경꾼들이 너무 많아 응원단의 가무가 제 역할을 발휘하기 어렵게 되자 7~8세의 어린이를 어른의 어깨위에 서게 한 후 노래하고 춤추게 한 것이 오늘날의 「쌍층무」이다. 「쌍층무」는 「걸립무」 중에서도 독특한 특색을 지녀 조선족의 기타 무용과 형식적으로 구별되기도 한다.

걸립무의 현황과 전승

「걸립무」는 요령성 환인만족자치현의 횡도천(横道川)과 육도하(六道河) 지역에서 전승되어 오고 있는데. 이 지역의 기복을 이루는 산들과 밀림 등 독특한 지리적 환경이 「걸립무」의 독특한 민속 민간 문화 생태와 전승의 특수 환경을 구성하였다.

「걸립무」는 정해진 형식이 있으나 그 형식이 완전히 제한적이지는 않다. 「걸립무」는 일반적으로 넓은 장소에서 진행되는데 공연 참가 인원은 몇십 명에서 몇백 명에 이른다. 공연의 대열은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조선 민족은 예로부터 가무에 능한 민족으로 명절이나 경사스런 날이면 자발적으로 공연단을 조직하여 가무를 즐겼는데, 「걸립무」는 조선족의 역사, 생활 현장을 생동감 있게 표현하는 무용으로서 높은 민족 문화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걸립무」의 미래는 그리 낙관적이지 못하다. 최근에는 문화 오락이 다양해져 젊은 세대들은 「걸립무」를 하찮은 오락으로 취급하고 있다. 또한 「걸립무」는 전문 공연 인원이 없기 때문에 존폐 위기에 놓여있다. 현재 본래 형태의 「걸립무」를 민간에서 자발적으로 공연하는 일은 드물고, 전통 문화 예술의 회복을 위해 인위적으로 군중을 조직해서 공연하는 경우에나 공연을 볼 수 있을 뿐이다.

이에 「걸립무」 전승 지역에서는 걸립무 연구실, 전승 업무실 등을 설립하고 걸립무 보호 기금을 설립하는 등 조치를 강구하고 장기적인 보고 체제를 구축하여 지속적으로 전승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걸립무」의 전승자들은 수년간 「걸립무」 공연을 여러 측면에서 변화·발전시켜 왔고, 이에 따라 「걸립무」는 그 내용과 형식이 풍부하게 발전되었다. 천년의 문화유산은 이들의 노력에 의하여 고유의 멋을 잃지 않으면서 새로운 시대의 멋을 가미하는 방향으로 탈바꿈되고 있다.

참고문헌
  • 黄有福, 『走进 中国 少数 民族 丛书-朝鲜族』(요령민족출판사, 2012)
  • 장선애, 「중국 동북 3성 조선족 비물질 문화재에 대한 연구」(용인 대학교 박사 학위 논문,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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