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족 농악무-걸립무」[본계시]

한자 朝鮮族 農樂舞-乞粒舞[本溪市]
영문 Chaoxian Dynasty Farmers' Dance
중문 朝鲜族农乐舞-乞粒舞[本溪市]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요령성 본계시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무용 조선족 전통 무용
정의

요령성본계시와 철령시에서 공연되는 「조선족 농악무」의 한 종류.

개설

「걸립무」는 참여하는 사람이 많고 영향이 광범위한, 조선족 농민의 대표적인 집단 무용이다. 「걸립무」는 「상모춤」, 「장고춤」, 「접시춤」 등 여러 가지 무용 형식을 일체화하고 줄다리기의 「쌍층무」의 정수를 융합하여 보여준 조선 민족의 특유의 민속 문화이다.

걸립무의 특성

「걸립무」는 「농악무」의 연장 종목으로 국가급 무형문화유산 대표 종목이다. 요령성(遼寧省) 본계시(本溪市) 환인현(桓仁縣) 지역에서 유행하는 「걸립무」는 「농악무」의 일종으로 풍년과 안녕을 기원하는 민속 행사이며 그 역사가 유구하다. 시대의 발전에 따라 점차 오락성과 연기성이 결합된 민속 무용이 되었다.

「걸립무」는 어느 정도 고정화된 전통적인 형식을 가지고 있지만 실제 공연하는 사람은 전통 형식의 제한을 받지 않고 기분에 따라 춤을 추는 즉흥성을 보이기도 한다. 공연자의 기분이 최고조에 이르면 이들은 제각기 자신의 재주를 뽐낸다. 남성은 상모의 긴 끈을 마치 날아갈 듯 빨리 돌려 아름다운 호를 그린다. 여성은 장고를 치면서 주변을 빠르게 돌아 형체의 생동감을 전달한다. 노인 역을 하는 사람들은 춤의 정취는 물론 자태 또한 중요시하고 다양한 동작의 변화를 취한다. 이와 같이 「걸립무」는 즉흥성이 가미된 공연을 통해 공연을 통해 도달하는 기쁨과 환희의 심정을 적극적으로 표현한다.

「걸립무」는 조선족의 중요한 명절이나 돌[한 살 생일], 회갑[60세], 회혼[결혼 60주년 기념일]식, 결혼식, 개업, 사당 신축 및 보수 등과 같은 큰 행사가 있을 때 공연되는데 이때에는 마을 노인들이 나서서 공연을 조직한다.

걸립 「농악무」는 기원적 성격인 ‘지신밟기’ 「농악무」나 오락성 「농악무」에 비해 공연성이 강하다는 특징을 지닌다. 걸립 「농악무」는 복잡한 형태, 세련된 동작, 뛰어난 기교로 조선족 무용 중 독특한 지위를 점하고 있다.

「걸립무」는 대중들이 매우 즐겨하는 민간 무용으로서 독특한 표현 기법과 풍격을 갖고 있다. 중국 국가 민족사무위원회와 국가 문화부가 연합으로 조직한 전국 예술 과학 계획 지도 소조 전문가의 검증에 의하면 「걸립무」는 본계 지역에서만 유행된다고 하며 대부분 가족 계승을 통해 전해진다. 국가 ‘7차 5개년 계획’ 기간에 편찬된 『중국 민족 민간 무용 집성』에 수록되었다.

걸립무의 내용

「걸립무」는 「기립무」라고도 한다. 「걸립무」는 「조선족 농악무」의 일부분으로서 한나라 때에 이미 존재하였음을 역사 자료에서 찾아볼 수 있다. 환인만족자치현 및 일원의 역대 귀족 관료들의 무덤에서 5세기 전후의 여러 벽화가 출토되었는데 벽화에 당시 무용을 했던 형상이 그려져 있다.

「걸립무」는 요령성 본계 동부에 위치한 환인만족자치현의 횡도천(橫道川)과 육도하(六道河) 지역에서 전승되어 오고 있다. 이 지역의 기복을 이루는 산들과 밀림 등 독특한 지리적 환경이 「걸립무」의 독특한 민속 민간 문화 생태와 전승의 특수 환경을 구성하였다. 「걸립무」는 조선족 민간 무용 「쌍층무(雙層舞)」와 기립 활동 중의 정수를 일체화하여 만들어낸 무용으로 독특한 표현 형식과 풍격을 지닌다.

「쌍층무」는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조선족 민중들이 즐기는 줄다리기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대회 참가 인원과 구경꾼들이 너무 많아 응원단의 가무가 제 역할을 발휘하기 어렵게 되자 7~8세의 어린이를 어른의 어깨위에 서게 한 후 노래하고 춤추게 한 것이 오늘날의 「쌍층무」이다. 「쌍층무」는 「걸립무」 로서의 독특한 특색이 있어 조선족의 기타 무용과 구별되는 형식이기도 하다. 기립 활동은 쌀알을 간절히 바라는 활동으로 화폐가 생산되기도 전에 이미 출현하였다.

「걸립무」는 일정한 과정이 있으나 그 과정이 완전히 제한적인 것은 아니다. 「걸립무」는 일반적으로 넓은 장소에서 진행되는데 공연 참가 인원은 몇십 명에서 몇백 명에 이르기도 한다. 공연을 위해 펼쳐진 대오에서 이 공연의 장대함이 보인다.

걸립무의 현황과 전승

「조선족 걸립무」의 미래는 그리 낙관적이지 못하다. 최근에는 문화 오락 형식이 다양해져 젊은 세대들이「걸립무」를 하찮은 오락으로 취급하고 있다. 특히 「걸립무」는 전문 공연자가 없기 때문에 존폐 위기에 처해 있다. 현재는 민간에서 본래 형태의 「걸립무」를 자발적으로 공연하는 일은 찾아볼 수 없고, 전통 문화의 회복을 도모하고자 인위적으로 군중을 조직하여 공연을 하는 경우만 볼 수 있을 뿐이다.

「걸립무」 전승 지역에서는 걸립무 연구실, 전승 업무실 등을 설립하고 걸립무 보호 기금을 설립하는 등의 조치를 강구하여 장기적인 보고 체제를 구축함으로써 전승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들 지역에서는 창의성을 발휘하여 여러 측면에서 「걸립무」 공연의 변화를 이끌어냈고 내용과 형식을 발전시키고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걸립무의 기원

중일 갑오 전쟁 이후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자 망국의 노예가 되기를 원치 않은 조선인들은 중국으로 이주하였다. 이때 조선평안북도 벽동군(碧潼郡)의 백성[김명환(金明煥)]이 온 가구를 거느리고 환인 횡도천에 이주하게 된다. 그는 황무지를 개간하고 고단한 생활을 하는 중에도 실의에 빠지지 않고 가무로 피로를 풀며 이를 즐겼다. 악기가 없어 젓가락, 그릇 등으로 그 소리를 대신했고, 여기에서부터 훗날의 「표주박춤[瓢舞]」, 「접시춤[碟舞]」 등이 출현하게 되었다. 또한 2,0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걸립무」가 환인에 자리 잡게 되었다.

기립은 쌀알을 구하는 활동을 가리킨다. 그 유래는 주로 두 가지 설로 압축된다. 첫째, 조선족들의 집단 거주 지역에서 큰 행사나 활동을 거행하려면 마을의 권위 있는 사람이 선두로 가무에 능한 사람들을 조직하여 아름다운 민족 복장을 입고 악을 울리며 부자집, 상호 앞에서 공연하며 지원을 요청하였다는 설이다. 둘째, 사찰을 건축, 개축하기 위하여 중들이 자바라를 들고 경문을 읽으며 동냥하러 다닌 것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전한다.

「걸립무」의 형식에서도 이러한 민속적 특징이 반영되어 있다. 예를 들면 오늘날에도 「걸립무」의 지휘자는 손에 자바라를 들고 춤을 춘다. 이는 곧 사찰의 중들이 동냥하러 다니던 모습에서 전래·고착화된 것이다. 「쌍층무」는 조선족의 줄다리기가 변형되어 전래된 것이기도 하다.

참고문헌
  • 장선애, 「중국 동북 3성 조선족 비물질 문화재에 대한 연구」, (『용인대 박사 논문』, 2012)
  • 陈华文(2007),从非物质文化遗产概念看.非遗申报与保护中存在的误区, (http://www.chiinafolklore.org)
  • 중국 국가 문물국 [中华人民共和国国家文物局] (http://www.sach.gov.cn)
  • 중국 비물질 문화 유산망(中国 非物质 文化 遗产 网) (http://www.ihchina.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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