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길림성]

한자 我離娘
중문 阿里郎[吉林省]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민요 전통 민요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11년
정의

중국 동북 3성에서 각기 다르게 표현되고 있는 조선족의 전통 민요.

개설

‘아리랑’은 한반도 전통 민요로서의 성격을 분명히 가지면서 세태 풍자와 민족 의식의 고취, 항일 투쟁의 의지 등 민중의 목소리를 직접적이고도 신속하게 반영하는 역동적인 면모를 보이고 있다.

아리랑은 중국어로 ‘우리 낭군님’으로 번역된다. 아리랑은 고려 시기부터 전해 내려온 사랑 이야기이다. 길을 떠나는 남편에 대한 서러움, 불신 등에 대한 내용을 노래한 것으로 이 이야기와 노래가 전해 내려와 조선 민족의 대표적 음악 작품으로 정착되어 세계 어디에서나 조선족이 있는 곳에는 아리랑이 불려지게 되었다.

길림성 아리랑의 특징

오랜 시간 전해 내려 오면서 아리랑은 여러 가지 버전으로 변형되었다. 또 한반도 각 지방에 따라 가사의 내용이 조금씩 차이가 있다. 이와 같이 아리랑은 지역마다 다른 특성을 보여주지만 모두 고대 여성들의 강인함을 보여주고 있다.

조선족 최다 거주지인 중국길림성 용정에는 조선족의 첫 이주 역사가 시작되었다는 ‘아리랑 고개’가 있다. 필자는 화천 출신으로 『해란강 여울 소리』 주필을 맡고 있는 황상박과 함께 이곳을 찾았다. 그는 1909년 중국과 북한의 경계선인 도문을 지나 아리랑 고개를 넘어 온 이주민의 후손이다.

아리랑 고개는 용정과 삼합을 잇는 아흔 아홉 굽이로 이뤄진 고개로 삼합 앞에 위치한 두만강을 건너면 북한회령 땅이 눈앞에 펼쳐진다. 조선족들은 두만강을 건너 이곳을 지나야 비로소 중국 땅에 안착할 수 있었다. 즉 북한 땅을 통해 이주 길에 나선 조선인에게는 피할 수 없는 관문이었던 셈이다.

지금은 비록 아스팔트가 깔려 당시 험준한 흙길을 오르던 조선족들의 모습은 상상에 맡길 수밖에 없지만, 길가마다 꿋꿋이 피어난 질경이들은 “발바닥으로 옮긴다.”는 학명에 걸맞게 조선족들의 발자취를 대변하고 있었다.

이 고개를 ‘피눈물의 고개’, ‘역사의 고개’, ‘민족의 얼을 지키는 고개’라고 표현했다. 당시 재물이 있어 보이는 소금 장수들 중에는 도적들에게 돈을 뺏기고 폭행도 당하며 목숨까지 잃은 사람도 많았으며, 고갯길 곳곳에서 순식간에 덮치는 도적들과 호랑이 같은 산짐승을 피하기 위해 10여 명이 길동무가 되어 아리랑을 부르며 고개를 넘었다고 한다.

2011년 용정시 인민 정부에서 해관령으로 명명한 이곳은 조선족들에게 ‘오랑캐령’으로 더 익숙하다. 이 고개를 넘으면 오랑캐 땅으로 간다고 하여 이와 같은 이름이 붙었다. 오랑캐령아리랑 고개로 달리 불리게 된 배경에는 고통스런 인생을 한탄하면서도 이를 극복하기 위한 조선족의 아리랑 역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길림성 아리랑의 의미

조선족이 중국 땅에 이주하기 시작한 1800년대 후반부터 현재까지의 아리랑을 정착기, 침체기, 성장기, 발전기로 나누어 시기별로 특징을 설명했고, 아리랑의 갈래를 전통 민요와 항일 민요, 가요 등 새롭게 창작되어 확산된 조선족 아리랑으로 구분해 특징과 창법, 이러한 아리랑의 배경이 되는 이주 공간, 아리랑 전승을 위해 펼쳐온 조선족 연구가들의 힘겨운 노력과 활동의 결과물을 그동안 정리한 폭넓은 예증 자료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이와 함께 아리랑이 가극과 연극, 문학, 다큐멘터리, 미술 등으로 장르를 넓혀 나타나는 양상을 시대별로 자세히 보여주고 있다.

특히 조선족 아리랑 채록 자료 편에는 진용선 소장이 그동안 중국흑룡강성 요령성 길림성 등지에서 조선족 1,2,3세대를 대상으로 채록한 47종의 아리랑 6백여 수를 가창자 정보와 함께 실었고, 문헌 자료 편에서는 1950년대 조선인이 ‘조선족’이라는 이름으로 중국 공민이 되면서부터 중국에서 나온 문헌 속에 수록된 아리랑 100여 종을 수록해 중국 조선족 아리랑의 종합적이고 방대한 자료집으로도 손색이 없다.

아리랑 곡 유래에 대한 설도 많지만 그 가운데 자비령 전설이 비교적 믿음직하다. ‘자비령’은 지도에 존재하는 위치가 아니라 중국 한나라 시기 대륙의 북방 민족들이 압박을 못이겨 월강하게 되는데 고향을 등지고 가는 이주민들의 이주 중의 어려움을 곡에 담아 전하고 마음속 고통을 호소하였는데 이 곡이 한반도 중부 지방에 전해졌다. 역사학자들도 이 설을 믿으며 아리랑은 바로 고대 조선어 ‘러랑[樂浪]’의 소리를 본 딴 말이다.

참고문헌
  • 柳世錦 編, 『中國 文化 遺産 産業 發展 報告』(社會 科學 文獻 出版社, 2008)
  • 黄有福, 『走进 中国 少数 民族 丛书-朝鲜族』(요령민족출판사, 2012)
  • 「조선족 아리랑 관문 ‘아리랑 고개’」(『강원도민 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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