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족 학무」[길림성]

한자 朝鮮族 鶴舞[吉林省]
중문 朝鲜族鹤舞[吉林省]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작품 전통 무용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07년
2008년
정의

길림성 안도현에서 높은 예술성을 지닌 것으로 평가되어 국가급 무형문화유산으로 선정된 조선족 전통의 「학춤」.

개설

국가급 무형문화유산의 대표 종목인 「학춤」은 학이 여유 작작하게 노니는 거동을 모방하여 창작한 무용이다. 즉 학이 긴 목을 비틀고, 물고기를 쪼아대고, 날개를 파닥거리는 동작을 모방하여 인간의 아름다운 생활에 대한 동경을 표현하였으며 학을 숭배하는 조선족의 신앙과 선, 미에 대한 강렬한 추구를 형상적으로 구현하였다. 「학춤」은 조선족 민간 무용에서 유일하게 새를 모방한 탈춤 형식의 무용으로서 소박하고 유연하고 자연스러운 느낌을 주는 특수한 예술 표현 형식의 하나이다.

학춤의 특징 및 의의

「학춤」은 주로 학의 동작을 본 따 사람들의 아름다운 생활을 갈망하는 심적 상태를 묘사한 것으로서 조선족 민간 무용 중 유일하게 새 탈을 쓴 가면무이다. 그 움직임과 춤사위가 학의 형태를 모방한 것으로 소박하고 유연하고 펼쳐진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하나의 특수한 예술 표현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학춤」은 그 기원이 오래되었고, 조선족 특유의 무용 표현 형식으로서 민족 특색과 예술 연구 가치가 있을 뿐만 아니라 조선족 무용을 연구함에 있어 참고적 가치가 있다. 또한 중국 민족 무용 형식을 풍부히 한다는 데 중요한 의의가 있다.

흔히 학이 날개 짓을 하면 춤춘다고 말한다. 이를 두고 우리말로는 「학춤」이라 하였고, 한자어로는 「학무(鶴舞)」라 불렀다. 우리나라에는 「학춤」이 다양해서 이를 탈학춤, 갓학춤, 관학춤 등 세 가지로 구분하기도 한다.

학춤의 전래 발전 과정

「학춤」은 조선족이 이주하는 과정에서 중국에 편입되었다. 1952년 연변 안도현 만보향의 농민 업여[아마추어]문예 공연 때 「학춤」의 제1대 전승자인 김재산이 「학춤」을 연기하였다. 이후 1980년대에 문예 종사자들의 발굴과 정리를 통하여 「학춤」이 계속 전해질 수 있었다. 1997년 「학춤」은 국가 문화부에서 편집한 『중국 조선족 무용 집성』에 수록되었다. 또 2008년에는 국가급 무형문화유산 대표 종목으로 지정되었다.

본래 「학춤」은 최초로 대형 궁중 가무인 「오방 처용무」에서 삽입 공연 형식으로 공연된 것으로 이로부터 두 마리의 학이 두 송이 연꽃을 에워싸고 추는 「학림 연화대무(鶴林蓮花臺舞)」가 만들어지기도 하였다.

자료에 의하면 김재산은 1890년 조선강원도 금화군에서 출생하여 민간에서 무예를 닦고 1914년 길림성 안도현으로 이주해 「학춤」과 「거북춤」을 전파했다고 전한다.

이에 따르면 「학춤」이 중국에 전해진 것은 이미 백 여년 전의 일이다. 이후 학춤은 민간 예술인들의 가공과 정리를 통해 더욱 새롭게 변화했고 민간에서 전해 내려오는 가운데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중국 해방 초기 길림성 연변 지구의 각 지역에 보급되었고, 현재는 연변 안도현에 제일 많이 보급되어 있다.

조선 민족은 새를 민족 토템의 하나로 삼아왔으며 도교 문화의 영향 하에 학을 천계와 신선들이 의존하는 새로 간주하고 선학이라 불렀다. 과학의 진보와 발전에 따라 종교적 색채가 점차 희미해지긴 했지만 선학에 대한 사랑과 존경은 여전히 이어져오고 있다. 사람들은 선학을 장수와 행복의 상징으로, 학의 서식지를 행운의 장소로 간주해 왔다. 조선족 남자들의 전통 복장도 선학의 하얀 깃털과 검을 날개를 모방하여 지은 것이며 갓 또한 학의 모양을 본 뜬 것으로서 고귀한 품위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한다. 「학춤」의 출현 초기, 무용수들의 의상은 학과 매우 흡사하였다. 20세기 중엽 이후 중국에 전해진 「학춤」은 민간 예술인들의 가공을 거쳐 눈에 띠는 변화를 거치기 시작했다. 따라서 한반도의 「학춤」과도 많은 차이를 갖게 되었다. 「학춤」은 현대 문화의 도전을 받아 발전과 전승에 어려움을 겪었으며 이에 따라 전문적 공연 기회는 날로 줄어들고 있는 상태이다. 이에 따라 재능 있는 「학춤」 예술 전승자의 명맥이 끊기는 위기에 직면해 있다.

조선족이 추는 「학춤」과 우리나라의 「학춤」은 연희 형식이 유사하다. 이 춤을 길림성 안도현에 전파한 김재산과 「학춤」을 창작한 한성준은 같은 시대 사람이며, 이 둘의 「학춤」은 『악학궤범』의 「학무」와 유사하다. 1971년 한성준이 창작한 「학무」는 김천흥·한영숙·이흥구 등을 전수자로 하여 국가 지정 무형 문화재 제40호로 지정 받았다.

안도현 「학춤」 발굴

통상적으로 중국 창건 이후 연변에서의 민간 예술 발굴 사업이 지속적으로 진행되었다고 보는데, 이는 다시 세 단계로 나누어볼 수 있다. 강덕수는 지난 세기 80년대 초에 시작된 민간 예술 발굴 사업에 뛰어들어 민간에 소장된 민속춤을 발굴해냈다. 민족 민간 무용은 이민 생활과 정착 전반이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는데 대개 모체가 한반도에 있지만 이주 후에 나름으로 발전한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조선족들의 춤은 시각적인 예술을 추구하기 보다는 무용 자체를 즐기기 위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강덕수가 발굴, 정리한 민속춤은 안도라는 특정 지역적인 문화와 민속이 배여 있고 특정 지역 환경과 그 속에서 살아가던 서민들의 온갖 애환과 숨소리가 배어 있다는 데서 예술적인 가치가 있고 지역 특색이 있는 것이다. 「학춤」은 2007년에 길림성 성부와 길림성 문화청으로부터 성급 비물질 유산으로 명명되었고, 중화인민공화국 국무원과 중화인민공화국 문화부로 부터 국가급 비물질 문화유산으로 명명되었다. 그리고 국가 문화부에서 출판한 『중국 조선족 민간 무용 집성』 책에도 등재되었다.

참고문헌
  • 김종운, 『예술사』(북경 대학 조선 문화 연구소, 1994)
  • 이금순, 『조선족 민간 무용 기본』, (연변대학, 2004)
  • 장선애, 「중국 동북 3성 조선족 비물질 문화재에 대한 연구」, (『용인대 박사 논문』, 2012)
  • 중국 국가 문물국 [中华人民共和国国家文物局] (http://www.sach.gov.cn)
  • 중국 비물질 문화 유산망 (中国 非物质 文化 遗产网) (http://www.ihchina.cn/main.j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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