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강촌[혼춘시]

한자 密江村[琿春市]
중문 密江村[珲春市]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훈춘시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성격 조선족 마을
면적 55㏊
가구수 100여 호
인구[남/여] 150여 명
개설 시기/일시 1875년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97년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08년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09년
조선족 마을 도문시 양수진
정의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도문시 양수진에 있는 조선족 마을.

명칭과 유래

밀강촌은 훈춘시에서 서북쪽으로 약 30리 떨어진 곳에 있다. 밀강의 옛 이름은 밀점(密占)이다. 밀강은 밀점이 잘못 전달된 음이다. 요·금 시대에 지금의 밀강 부근에 오탑성(塢塔城)이라는 산성이 있었는데 일명 밀점이라고도 불렀다. 밀점의 의미는 좋은 화살을 만들 수 있는 나무라는 뜻이다. 아마 밀강 부근에 밀점이라 불리는 나무가 많았을 것이다. 명나라 때도 밀강을 밀점이라고 불렀으며, 밀강에 밀점위(密占衛)를 두기도 했다. 위(衛)는 명나라 때 변방지방의 행정 단위이다. 청나라 때도 그냥 밀점이라 불렀으며, 이곳에 밀점카룬[密占卡倫]을 세웠다. 카룬[卡倫]은 변방초소를 말한다. 중화인민공화국이 탄생하면서 비로소 밀점이 밀강으로 바뀌었다.

형성 및 변천

1710년대에 이 골짜기에는 관(關)씨와 태(邰)씨 성을 가진 여러 세대의 만족들이 들어와 널판자와 흙 볏짚으로 집을 짓고 살았다. 그러다가 약 백오십년이 지난 1875년부터 조선에서 이주민들이 두만강을 건너 밀강하를 따라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주민들은 토박이 만족들과 더불어 황무지를 일구면서 마을의 규모를 조금씩 넓혀 나갔다.

밀강의 퉁소 발전 역사를 돌아 볼 때 한신권이라고 하는 노인을 빠뜨릴 수 없다.

한신권 노인은 50여세 때인 1930년대 초, 일제의 약탈을 피하여 괴나리봇짐 속에 퉁소 하나와 북 하나를 넣어가지고 함경북도로부터 두만강을 건너 밀강촌으로 왔다. 그가 퉁소를 불면 끊어질듯 이어질듯 듣기 좋은 음색과 고저강약이 어울리는 은은한 연주가 행해졌다. 이에 구경나온 사람들마저 제멋에 겨워 바가지장단, 북 장단을 울리면서 한마당 춤판을 벌이기도 하였다. 사람들은 퉁소를 잘 부는 한신권 노인을 ‘한퉁소’라고 불렀는데, 한퉁소라 하면 인근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한신권 노인은 이웃마을의 강재권 노인과 손잡고 퉁소 합주를 하였고 한풍기라는 노인을 북쟁이로 모시고 지역의 생일, 결혼, 회갑 오락판을 활기차게 만들었다. 이 세 사람으로 구성된 연주대가 밀강향 제1대 퉁소 연주대였다. 한신권의 퉁소 연주는 지역에서 관심을 받기 시작했고, 촌민들은 퉁소에 흥취를 가지기 시작했다. 1950년에서 60년대, 이 고장에는 퉁소가 널리 보급되었는데, 구성진 퉁소가락을 듣는 것으로 휴식의 한때를 즐기며 심신을 유쾌하게 보내는 것이 이 고장 사람들의 문화 생활의 주요한 내용이었다.

밀강향 퉁소연주대가 다시 발전한 것은 1992년부터이다. 향 정부의 적극적인 지지하에 민속촌을 건설하고 변경풍경관광 등 프로젝트를 개발함에 따라 퉁소문화는 자연 경관과 서로 조화를 이루면서 국내외의 관객들의 발길을 끌었다. 흥취와 오락으로 자발적으로 조직된 이 퉁소 애호가들은 밀강향의 제2대 퉁소연주대가 되었고 퉁소는 대중오락으로 널리 전파되었다.

한신권 노인이 씨앗을 뿌려놓은 퉁소는 밀강에 뿌리내리고 발전을 가져왔는바, 한 노인으로부터 퉁소를 배운 이들이 또 그 후대들에게 가르치면서 오늘날 밀강 퉁소는 국가급 무형문화재 명록에 등재되기까지 하였다. 이리하여 밀강향은 집집마다 퉁소를 불 줄 아는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1930년대부터는 이주민들이 마가자(삼안촌)와 해방촌 그리고 대황구에 집단적으로 이주를 해왔다.

자연 환경

밀강은 땅이 기름지고 땔나무가 많았으며 강에는 물고기가 많아 말 그대로 산 좋고 물 좋은 고장이었다. 산자락마다에는 옥수수, 조, 기장, 감자밭이 있다. 산이 깊다.

현황

10년 전의 밀강향 밀강촌은 활기찬 마을이었다. 인구가 많은데다 민족전통악기의 하나인 퉁소가 보급이 잘 되어 그 퉁소소리에 춤판이 늘 벌어졌다. 또 밀강하의 물고기가 오염이 되지 않아 맛이 좋다고 외지에서 오는 천렵꾼들의 발길도 끊기지 않았다. 그리고 한때는 우유가공회사를 선두로 여러 개의 기업이 밀강에 들어와 공장 건물을 짓느라 길에는 대형트럭들이 쉴 새 없이 다녔는데, 지금은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는다. 퉁소소리도 더는 들리지 않는다. 밀강하를 거슬러 올라가면 약 10리 간격으로 마을들이 나타난다. 해방촌과 하와자(下洼子)촌, 중강자(中崗子)촌, 삼안(三安)촌이 있다.

현재 밀강 골짜기에 들어앉은 마을들이 모두 새집을 짓고 새마을로 변모했다. 국가에서 변방 새마을 건설 비용으로 내려 보낸 자금에 의해 지은 것으로, 집들의 크기와 겉모양과 지붕. 벽의 색채가 동일하다.

밀강에는 비문화유산으로 이름난 “퉁소”가 있다. 이 마을 사람들은 누구나 퉁소를 잘 분다 하여 “퉁소의 고향”이라고도 한다. 1997년 훈춘시 밀강향은 연변주 문화국으로부터 ‘퉁소의 고향’으로, 2008년 국가 문화부로부터 ‘중국 민간 문화 예술의 고향’, 2009년 중국 민간 예술가 협회로부터 ‘중국 조선족 퉁소 예술의 고향’이라 명명되었다.

훈춘시 밀강향에서는 조선족의 민족문화를 전승, 발전시키고 퉁소문화를 브랜드화하여 문화품위를 승격시키며 군중문화 생활을 풍부히 하고자 2006년부터 2년에 한번씩 퉁소문화관광절을 개최하면서 밀강의 지명도를 높이고 경제, 사회의 발전을 추동해가고 있다.

참고문헌
  • 퉁소와 밀강 그리고 한신권(http://yanbian.moyiza.com/t02_7/326704)
  • 현지조사(정희숙, 2010~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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