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암촌[도문시]

한자 亭巖村[圖們市]
중문 亭岩村[图们市]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도문시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성격 민족마을
가구수 100여 호
인구[남/여] 300명
개설 시기/일시 1930년대
변천 시기/일시 1949년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03년
조선족 마을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도문시 양수진
정의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도문시 양수진에서 1930년대에 충청북도 사람들이 개척한 조선족 마을.

개설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도문시 양수진 정암촌(亭巖村)은 1938년에 충청북도 청주군, 보은군, 옥천군 등지의 농가 80여 호가 집단으로 이주·정착하면서 생겨난 마을이다. 북한의 최북단이라고 할 수 있는 함경북도 온성군(穩城郡)에서 두만강 건너 북쪽으로 약 5㎞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이주민들은 대부분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이주의 땅을 새로운 희망의 터전으로 삼았다. 그러나 그곳은 경작할 수 없는 척박한 땅이었고, 수탈이 자행되는 또 다른 식민지였다. 때때로 비적(匪賊;騎馬賊)이 출몰해 애써 일군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놓기도 했다. 그래도 같은 고향에서, 같은 지역으로, 같이 이주해온 사람들끼리 더불어 위로하며 공동체적 삶을 영위했다. 그 결과 70여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원주지의 문화적 정체성이나 동질성을 생활 가운데서 유지하고 있다.

명칭 유래

1949년에 충주군 출신의 서홍범이 마을 서북쪽에 있는 ‘정자 바위’의 이름을 따서 마을의 명칭을 “정암촌”으로 정했다.

형성 및 변천

정암촌은 1938년에 충북 사람들이 집단으로 이주하여 개척한 마을이다. 이주민 대부분은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만주에 가면 땅에는 쌀이 많고, 물에는 물고기가 시끌시끌하고, 산에는 짐승들이 시끌시끌하다. 3년 간 자기가 농사지어 먹고 3년 후부터 공출하는데, 그 3년이면 회사 빚 갚고도 땅 사고 지주가 된다. 여기는 땅이 적으니 땅 많은 만주 가서 네 농사지어 네 먹어라.”라는 일제의 유혹은 빠질 수밖에 없었던 희망이었다. 희망을 좇아 청주군, 옥천군, 보은군, 충주군, 괴산군 등지의 농가 180호가 청주역에 집결하여 무작정 기차에 올랐다. 함경북도온성역에 내린 그들은 두만강을 건넜다. 청주군, 보은군, 옥천군에서 이주한 80호는 왕청현 춘방촌 서백림둔에, 나머지 100호는 왕청현 하마탕향에 정착했다. 왕청현 춘방촌 서백림툰은 1947년부터 훈춘현 양수향에 소속되었다. 1949년 충주군 출신의 서홍범이 마을 서북쪽에 있는 정자 바위의 이름을 따서 마을의 명칭을 “정암촌(亭岩村)”으로 정했다.

1945년 이후 서백림둔 및 하마탕향에 정착했던 과반수의 이주민들이 귀국했다. 귀국의 기회를 놓친 서백림둔 이주 1세대 20여 명을 포함한 2∼3세대 및 정암촌으로 재이주한 하마탕향 이주민 일부가 오늘날까지 정암촌에서 삶을 영위하고 있다.

현황

1992년에 충북 대학교임동철 교수가 연변대학 조선어문학부의 언어실습장으로 활용되던 정암촌을 처음 발견했다. 이후 충청북도를 중심으로 정암촌 사람들의 국적을 회복시켜야 한다는 사회적 여론이 확산되었다. 충청북도는 이를 반영하여 2000년 10월에 정암촌 1세대 서른 두 명의 고향 방문을 성사시켰다. 게다가 2001년부터 정암촌 2∼3세대들 중에서 3∼4명씩 선발하여 충북권역 각 군청의 초청으로 농장 및 식품가공업체 등에서 선진 영농기술을 익히게 했다. 민간 차원에서는, 안상경이 주도하여 정암촌정암촌 사람들의 후원을 목적으로 ‘정암회’를 결성했다. 여기에는 충청북도의 관계, 학계, 언론계, 경제계 등 인사들이 대거 참여했다. 정암회의 후원은, 뜻밖에도 연변조선족자치주 주 정부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연변조선족자치주는 관련한 연구 성과물을 토대로 정암촌의 내력을 조사하고, 2003년에 정암촌을 ‘길림성 재정지원 시범촌’ 및 ‘민속촌’으로 지정했다. 이를 계기로 정암촌의 면모가 달라졌다. 마을길이 포장되었으며, 107세대의 초가가 문화주택으로 개량되었다.

2006년부터 충북 대학교에서는 학부생 20여 명을 선발하여 결성한 해외자원봉사대를 필리핀의 한 마을에 이어 정암촌으로 파견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도 여름 방학을 이용하여 15일간 정암촌에서 봉사 활동을 벌이고 있다. 약초밭과 옥수수밭 잡초 제거, 마을 대청소, 하수도 정비 등 마을환경 개선은 물론 양수진 소학교와 중학교 학생들에게 컴퓨터, 수학, 영어, 태권도, 레크레이션 등을 지도한다. 해외자원봉사 원년에는 노인 독보조를 위해 게이트볼구장을 건설하기도 했다. 또한 충청북도 의사회의 진료봉사도 계속되고 있다.

참고문헌
  • 리혜선, 『두만강의 충청도아리랑』(도서출판 좋은날, 2001)
  • 안상경,「연변조선족자치주 정암촌 청주아리랑의 문화관광콘텐츠 개발 연구」(한국외국 어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2009)
  • 림영,「중국 정암촌의 세시풍속 연구」(충북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2009)
  • 임동철,「정암촌의 ‘청주아리랑’」(『중국 조선족의 문화와 청주아리랑』 집문당,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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