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련성

한자 八連城
영문 palyenseong
중문 八连城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혼춘시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발해
상세정보
성격 성곽
양식 도성, 내외 이중성
관련인물 문왕
크기 외성: 동벽746m, 서벽735m, 남벽701m, 북벽712m내성: 동벽318m, 서벽318m, 남벽218m, 북벽218m
문물|보호단위등급 1961년 길림성 중점 문물 보호 단위, 2001년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
조성|건립 시기/일시 786년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24년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41년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43년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4~2009년
문화재 지정 일시 1961년
문화재 지정 일시 2001년
현 소재지 길림성 혼춘시양종장 내 N 42°51′31.78″,E 130°16′59.06″
원소재지 길림성 혼춘시양종장 내 N 42°51′31.78″,E 130°16′59.06″
정의

길림성(吉林省) 연변조선족자치주(延邊朝鮮族自治州) 혼춘시(琿春市) 양종장(養種場) 내에 있는 발해 시대의 도성.

개설

팔련성발해 5경 가운데 하나인 동경 용원부(東京龍原府)로서 내성과 외성으로 이루어진 내외 이중성이다. 『신당서(新唐書)』 발해전에 의하면, 동경은 발해 3대 문왕이 정원 연간[785~805]에 이곳을 도읍으로 정하였다고 한다. 그후 문왕의 뒤를 이은 폐왕이 즉위 1년만에 살해되었고, 다시 그의 뒤를 이은 5대 성왕이 794년 상경으로 환도할 때까지 약 7~8년 동안 발해의 수도였다. 동경 팔련성을 제외하고 발해에는 4개의 경이 더 있는 점을 고려해 볼 때 다경제(多京制)를 통해 전국을 균형적으로 발전시키고 통치하려 했던 문왕의 통치 이념이 반영된 것이 아닌가 한다.

도리야마 기이치[鳥山喜一] 등이 1924년 팔련성을 조사하였고, 1936년에 팔련성 일대를 조사하였다. 1937년에는 팔련성의 일부 지역을 발굴하고 팔련성 평면도를 작성하였으며, 1938년에는 「발해 동경고」라는 글을 발표하여 팔련성발해동경 용원부 고지라고 하였다.

1941년에는 재등우(齋藤優)가 팔련성을 조사하고, 1943년에 내성 북부 건축지와 내성 남문을 발굴하였다. 재등우는 이 발굴을 통해 팔련성에도 상경성처럼 외곽성이 있을 것으로 파악하고 팔련성의 외성을 내성, 내성을 궁성으로 보았다.

2004~2009년 길림성 문물 고고 연구소와 길림대학 변강고고연구중심에서 팔련성을 전면적으로 발굴 조사하였으나 아직까지 발굴 보고서는 발간되지 않았다.

위치

팔련성은 길림성 혼춘시 양종장 내에 있다.

형태

팔련성은 화룡(和龍)에 위치한 서고성과 마찬가지로 내성과 외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내성은 외성의 중북부에 위치한다. 팔련성은 장방형의 외성 안에 남북 두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남쪽 구역은 다시 남북으로 나뉘어 총 3개의 구역으로 나뉜다. 그중 3번째 구역에 회랑으로 연결된 2개의 건축지가 남북 중축선상에 위치하며 좌우의 회랑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남쪽에 위치한 1호 건축지는 정면 7칸, 측면 4칸의 건축지이고, 좌우에는 정면 2칸, 측면 15~17칸의 회랑이 있다. 또한 2호 궁전지의 좌우에서 또 다른 건축지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외성 평면은 대체로 방형을 이루고 있으며, 외성 규모는 동벽 746m, 서벽 735m, 남벽 701m, 북벽 712m이고, 남벽 중간에는 성문이 있다. 성문 규모는 너비 3.2m, 길이 5.2m이다.

내성은 외성 중간에서 북쪽으로 치우친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평면은 장방형을 이룬다. 내성 규모는 동벽과 서벽이 317.6m, 북벽과 남벽은 216.4m이다. 남벽 중간에는 북쪽으로 13.5m 꺾여 들어갔으며, 그 중간에 성문이 있다. 성문 규모는 동서 약 28m, 남북 약 16m이다. 궁전은 내성의 북반부에 있다. 궁성은 남북으로 늘어서 있는 회랑으로 연결된 구조로 공(工)자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1호 궁전은 기단이 높고 크며, 양측면에 완만한 비탈[漫道]이 있고, 이것을 회랑이 감싸고 있다. 기단 남벽 좌우에 계단이 있다. 2호 궁전은 중심 건물과 좌우의 배전으로 이루어져 있고, 중심 건물 북쪽에서는 연도와 연통 기단이 발견되었다. 2호 궁전 배전 외곽에서 다시 대형 건축 기단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서고성의 3호, 4호 궁전지에 비견할 수 있다.

출토 유물

팔련성에서 많은 유물이 발견되었는데, 대부분은 벽돌, 기와, 지붕 장식, 주초 장식 등이다. 또한 문자와, 수키와, 암키와 등이 발견되었다. 이러한 건축 자재의 대부분은 회황색이며, 홍갈색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기와 안쪽에는 모두 포목흔이 있고, 새끼줄무늬 암키와도 수습되었다.

현황

1961년, 길림성 중점 문물 보호 단위로 지정되었다가 2001년에 전국 중점 문물 보호 단위로 지정되었다. 2013년 현재, 서고성은 국가의 관리와 보호를 받고 있다.

의의와 평가

팔련성발해문왕이 정원 연간에 도읍으로 삼은 발해 5경 가운데 하나이다. 1924년 첫 번째 발굴을 시작으로 2009년까지 이루어진 수차례의 발굴을 통해서 팔련성의 구조와 배치의 특징이 확인되었다. 팔련성은 1호 궁전과 2호 궁전이 중랑에 의해 연결된 공(工)자형 구조이며, 그 외곽을 회랑이 감싸고 있는 구조이다. 이러한 구조는 화룡시(和龍市) 서성진(西城鎭)에 위치한 서고성과 흑룡강성(黑龍江省) 영안시(寧安市)에 위치한 상경성의 3~4호 궁전과 그 배치 형태가 유사하며, 발해 도성의 변천사 및 도성 간의 관련성을 연구하는 데 많은 실마리를 제공한다.

참고문헌
  • 吉林省文物志 編纂委員會 主編, 『渾春縣文物志』(1984)
  • 길림성문물 고고 연구소, 『田野考古集粹』(문물출판사, 2008)
  • 김진광, 『북국 발해 탐험』(박문사,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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