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고성

한자 西古城
영문 Seogosung
중문 西古城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발해
상세정보
성격 도성
양식 내외 이중성
관련인물 문왕 대흠무
크기 외성: 동벽734.2m, 서벽725.7m, 남벽628.2m, 북벽632m내성: 동벽311.1m, 서벽306.8m, 남벽187.9m, 북벽187m
면적 0.46㎢
문물|보호단위등급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
조성|건립 시기/일시 742년경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23년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37~1945년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64년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0~2002년
문화재 지정 일시 1981년
문화재 지정 일시 1996년
현 소재지 길림성 화룡시 서성진 성남촌N 42°42′35.23″,E 129°08′56.39″
출토 유물 소장처 길림성 연길시
정의

길림성(吉林省) 연변조선족자치주(延邊朝鮮族自治州) 화룡시(和龍市) 서성진(西城鎭) 성남촌(城南村)에 있는 발해 시대의 도성.

위치

서고성은 길림성 화룡시 서성진 성남촌에 있으며, 남쪽으로 해란강(海蘭江)과 1.5㎞, 하남둔 고성과는 2.5㎞, 동남구 사찰지와는 4.5㎞, 동남쪽으로 용두산 고분군[정효 공주 묘]과는 5.6㎞, 서남쪽의 팔가자 남산 산성과는 6㎞, 서쪽으로 북대 고분군과는 약 5㎞ 정도 떨어져 있다.

발굴 조사 및 경위

서고성은 1923년 도리야마 기이치[鳥山喜一]가 처음으로 발굴하였고, 1937년, 1942년, 1943년, 1945년 재차 만주국 문교부의 위탁을 받아 발굴하였다. 그 중에서 1937년 발굴 자료는 『간도성 고적 조사 보고』, 1944년 「발해 중경고」에 발표되었다. 1960년대에 들어서 중조 연합 고고대가 서고성을 조사하였고, 1997년에는 길림성 문물 고고 연구소, 연변조선족자치주 문물관리위원회 판공실, 연변조선족자치주 박물관 공동 조사팀이 서고성을 실측하였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2002년까지 3년에 걸쳐 서고성 터를 발굴하였고, 그 결과는 문물 출판사에서 발간된 『서고성』에 보고되어 있다.

형태

서고성은 내성과 외성으로 이루어진 이중성으로 평면은 남북으로 긴 장방형을 이루고 있다. 내성과 외성은 모두 판축하였으며, 내성의 둘레는 992.8m, 외성의 둘레는 2720.1m, 잔고는 1.5~2.5m, 가장 높은 곳은 4m 정도이다.

내성과 외성은 모두 중축선상에 위치하고 있으며, 내성은 외성의 중앙 북쪽에 위치한다. 내성 안쪽은 크게 두 구역으로 나뉘는데, 전면에는 1~4호 궁전이, 후면에는 5호 궁전이 자리한다. 전면에 위치하고 있는 1호 궁전은 판축층과 자갈층을 번갈아 쌓아 올렸고, 기단의 남북 양쪽에는 문지가 있다. 후면에는 3, 2, 4호 궁전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순서대로 늘어서 있다. 2호 궁전은 중심 건물과 배전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동쪽에 위치한 3호 궁전은 횡장방형 구조를 이루고 있으며, 이와 대응하는 서쪽에 위치한 4호 궁전도 3호 궁전과 동일한 구조이다. 또한 전면에 있는 1호 궁전과 후면의 2~4호 궁전은 다시 회랑으로 이어져 있다. 내성 북면에 위치한 5호 궁전은 횡장방형의 구조를 띠고 있는 정면 11칸, 측면 5칸의 건축물이며, 건축물 중간에 초석을 줄인 감주식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출토 유물

발굴 과정을 통해 서고성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암키와, 꽃무늬벽돌, 녹유 기둥받침, 녹유 기와 등이 발견되었다. 또한 서고성에서 발견된 일부 유물들은 연변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데, 그 중에는 귀면 건축 장식품 잔편, 지압문 암키와, 붓대롱으로 찍은 무늬가 있는 암키와, 녹유 수키와, 청색 수키와, 문자와, 연꽃무늬 와당, 인동무늬 와당 및 유약을 바른 도기, 무늬가 있는 도기 잔편 등이 있다. 암키와, 수키와 등의 기와류와 치미, 토수 등의 장식물, 녹유와당, 기와, 채색된 기둥받침 등의 건축재, 유약을 바른 도기 등 다양한 유물이 발견되었다.

현황

1981년 길림성 중점 문물 보호 단위로 지정되었다가 1996년에 전국 중점 문물 보호 단위로 지정되었다. 2013년 현재, 서고성은 국가의 관리와 보호를 받고 있다.

의의와 평가

서고성은 발해 제3대 문왕 시기에 도읍한 곳으로 알려져 있어 중경 현덕부 고지로 알려져 있다. 또한 그 평면 형태가 흑룡강성(黑龍江省) 영안시(寧安市)에 위치한 상경성(上京城)의 3~5호 궁전 및 팔련성(八連城)의 1~2호 건축지 구조와 유사하여 발해 도성 변천사를 연구하는 데 매우 주목을 받았다. 서고성과 상경성·팔련성은 모두 문왕이 도읍을 했던 곳이었고, 구조도 유사하여 중국 학계에서는 발해 도성의 변천을 서고성-상경성-팔련성의 발전 과정으로 설정하기도 하였다.

『신당서(新唐書)』 발해전에, 상경의 남쪽은 중경(中京)이고 현덕부(顯德府)라 하며, 노주(盧州)·현주(顯州)·철주(鐵州)·탕주(湯州)·영주(榮州)·흥주(興州) 등 6주를 관할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신당서』 지리지에는, 현주는 천보 연간 왕이 도읍한 곳이라는 기록이 있다. 이 두 기록을 바탕으로 살펴보면, 740년대 발해국의 도읍이 된 곳임을 알 수 있고, 서고성이 위치한 이곳은 수주인 노주의 뒤쪽에 위치하고 있는 현주이므로, 어느 시기에 이전해 온 것인지를 알 수 있다. 현재 중국 학계와 대부분의 학자들은 서고성을 8세기 중엽에 문왕이 도읍한, 즉 구국에서 상경으로 천도가 이루어지기 이전에 도읍했던 현주로 비정하고 있다. 따라서 서고성의 존재는 발해문왕대 도성지의 위치를 비정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발해 5경 설치 시기 및 의미를 연구하는 데도 의의가 있다. 다만 중경 현덕부의 소재지가 현주인데, 문헌 기록에서는 다른 곳과 달리 현주가 아닌 노주가 수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또한 주변에는 발해문왕의 넷째 딸의 무덤인 정효 공주 묘가 있다. 그 밖에도 하남둔 고성, 팔가자 남산 산성, 북대 고분군, 군민교 사찰지, 동남구 사찰지 등이 위치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성터에도 수많은 유물들이 남아 있기 때문에 각 유적 간의 관련성에 근거하여 연구한다면 발해 도성제의 현상을 확인하는 데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참고문헌
  • 문물출판사, 『서고성 2000~2005년도 발해국중경현덕부고지 발굴보고서』(2007)
  • 吉林省文物志 編纂委員會 主編, 『和龍縣文物志』(1984)
  • 김진광, 『북국 발해 탐험』(박문사,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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