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 虎山村[尙志市]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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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문 | 虎山村[尙志市]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흑룡강성 하얼빈시 상지시 |
시대 | 현대/현대 |
성격 | 자연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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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적 | 1,000무 |
가구수 | 약 50호 |
인구[남/여] | 약 150명 |
개설 시기/일시 | 1945년 이전 |
변천 시기/일시 | 1986년 |
촌 | 위하진의 서북쪽으로 12리 되는 곳에 위치 |
흑룡강성 상지시 위하진의 조선족 마을.
호산촌은 1945년 이전부터 흑룡강성 상지시 위하진에 형성된 조선족 마을이다. 기존에는 농업이 마을의 소득 원천이었지만 한국으로의 이주가 시작되며 300명 이상이 해외로 이주해갔고, 현재 약 50세대 약 150명이 마을에 거주하고 있다.
마을 근처의 용호산 이름을 따서 “호산”이라 이름 지음.
1945년에 박태기, 박상익, 박영호, 박기동, 김로호, 김시원, 강석구, 섭병석, 김영준, 박인혁, 송기준 등이 선후하여 이곳에 이주해왔을 때 오춘군, 오광남, 양재건, 양준일, 양재준, 이기만, 박원호, 박용진 등 8세대가 해방 전 일본 개척단이 있을 때부터 이곳에 마을을 이루며 거주하고 있었다. 1946년에 김수동을 비롯하여 새로 이주해오는 사람들로 인하여 24세대로 늘어났다.
1950년에 김명수 등 5세대가 원 마을과 6리 떨어진 일본인들이 살던 곳에 이주해 와서 집도 짓고 황무지도 개간하였는데 이곳을 신성2춘이라 하였다. 이후에 세대 수가 점차 늘어 30세대가 되었다.
1982년에 세대별 생산량 도급제가 실시된 후 농가들의 생산 열정을 전례 없이 높아졌다. 당시 수전 151㏊에 모두 모내기를 하여 수확량이 140만근, 총수입이 710만원[RMB], 인구당 수입이 1,600원까지 올랐다. 이때부터 해외로 출국이 시작되어 2005년까지 해외로 이주한 사람들의 수가 300명에 달했고 이들은 대부분 몇 십만 원 씩 벌어왔다. 반면에 한국으로의 이주로 인해 가정이 파탄된 집도 있었는데 이런 집이 출국한 가구의 10% 정도이다. 또한 과소비 현상이 심해졌다.
용호산으로 둘러 쌓인 산지 지역
2007년 기준으로 해외와 중국내 대도시 진출로 인하여 현재 호산촌에 남아 있는 세대 수는 약 50세대로, 그 중 30세대가 50㏊ 정도의 농사를 짓고 있으며 120여㏊는 한족을 포함한 외부인들이 경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