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성촌[상지시]

한자 月星村[尙志市]
중문 月星村[尙志市]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흑룡강성 하얼빈시 상지시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성격 자연촌
면적 1,000여 무
가구수 42호
인구[남/여] 170여 명
개설 시기/일시 1944년
일면파진 동쪽으로 10km 떨어진 마이하 연안 북쪽에 자리 잡음
정의

흑룡강성(黑龍江省) 상지시(尚志市) 일면파진(一面坡鎭)의 조선족 마을.

개설

월성촌은 1944년에 흑룡강성 상지시 일면파진에 형성된 조선족 마을로 오인환이 50여 세대의 조선족들과 함께 이곳으로 이주해오며 마을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2007년 기준으로 42세대가 마을에 거주하며 농사를 짓고 있고, 최근에는 대도시의 몸이 쇠약한 사람들이 요양의 목적으로 마을로 들어오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명칭 유래
형성 및 변천

1944년, 오인환이 차덕일, 이동하, 이석필, 장윤호, 이근화 등 50여 세대의 조선족들과 이곳으로 이주해왔다. 사람들은 임시로 지은 움막에서 살기 시작했다. 농토는 일제시대에 일본인들이 경작해오던 100㏊ 가까운 면적의 한전이었다. 당시 소가 부족해 ㏊ 당 수확량이 2,000근 정도였다.

1945년에 해방을 맞으며 일부 농가들이 떠나고, 남은 사람들은 1947년 토지 개혁을 거쳐 토지를 분배 받았다. 1950년에는 마을에 호조조가 조직되어 마음이 맞는 집들끼리 5개 조를 이루어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1969년에 자동차 부속품 공장이 세워졌고, 소득을 공동 분배하여 마을 주민들의 소득이 증가하였다.

1983년부터 세대별 생산량 도급제를 실시하며 한국으로의 이동도 시작되었다. 해외에 진출하는 기회가 많아짐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많은 돈을 벌어왔는데 100만원 이상 번 집도 몇 세대나 되었다.

월성촌은 산 좋고 물 좋으며 공기가 좋은 고장으로서 지금 하얼빈 등에 거주하는 대도시의 환자나 몸이 쇠약한 사람들이 이런 자연환경을 바라고 이주해 와서 살아가고 있다.

자연환경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산지 지역이다.

현황

2007년 기준으로 월성촌의 호적에는 112세대가 있는데 지금은 42세대가 월성촌에 남아 거주하고 있다. 마을에 남아 있는 주민들은 여전히 농사일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현재 23세대가 80㏊의 논을 경작하고 있다. 또한 중국 내 대도시나 한국 등의 해외로 이주한 사람들이 점점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월성촌은 깨끗한 자연환경으로 유명하여 하얼빈 등의 대도시에 거주하는 환자나 몸이 쇠약한 사람들이 월성촌에 들어와 거주하고 있는데 현재 3세대가 요양을 이유로 마을에 들어와 살고 있다.

참고문헌
  • 류충걸외 2인, 『흑룡강성조선족 인구와 경제』(연변인민출판사, 2008)
  • 한득수, 『상지시 조선 민족사』(상지시 조선민족사 편집위원회, 민족출판사, 2009)
  • 「中조선족 토지경영권 확인 합법 합리적 처리가 대안」,(『길림신문』, 2008. 1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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