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촌[상지시]

한자 新盛村[尙志市]
중문 新盛村[尙志市]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흑룡강성 하얼빈시 상지시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성격 자연촌
면적 333ha
가구수 163호
인구[남/여] 547명
개설 시기/일시 1937년
일면파진에서 남쪽으로 10KM 떨어져 위치
정의

흑룡강성(黑龍江省) 상지시(尚志市) 노가기향(老街基鄕)의 조선족 마을.

개설

1937년까지만 해도 인적이 없는 허허벌판이었는데, 1937년에 이금룡 일가 3대가 인적 없는 황무지에 집을 짓고 논을 만들어 벼 농사를 시작하고 밭을 개간하여 마을을 형성하기 시작하였다. 2007년 기준으로 547명의 조선족들이 신성촌에 거주하고 있다.

형성 및 변천

1937년 이금룡 일가 3대가 마을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1938년 이후 노가기향에 일본 이민단이 들어온 후부터 이금룡의 집은 일본 이민단의 허가 없는 화전민 신세가 되어 그들이 재배한 벼를 빼앗겼다. 일본 이민단은 노가기를 중심으로 반경 30리 안의 땅을 모두 이민단의 땅으로 확정하였다. 이금룡의 집은 노가기와 거리가 멀지 않아 당연히 일본 이민단이 통제하는 범위 내에 있었다. 이곳은 먹을 것이 흔한 곳이어서 1942년부터 대청천에 살던 농가들이 이금룡의 농가 근처로 이사오기 시작하였다. 이곳에서 20리 떨어져 있는 노가기 중심 소학교가 아이들의 통학에 가깝다 하여 이곳으로 몰려왔다.

해방이 되자 일본 이민단 사람들은 모두 떠나가고 이 근처에 살던 조선족들도 피난을 가서 마을은 텅 비어버렸다. 1946년, 일본 이민단이 경작하던 비옥한 땅이 놀고 있다는 소문에 일면파 철도에서 일하던 인부들과 시내의 유민들이 이곳으로 몰려오기 시작했다.

1982년, 세대별 생산량 도급제를 실시한 후 신성촌은 ha당 1만 3,000~1만 8,000근까지 증산하여 향 내에서 가장 많은 생산량을 보였다.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많은 사람들이 한국으로 일을 하러 가고 중국 내 대도시로 이동하게 되면서 마을을 떠나는 사람들의 수는 점점 증가하였다.

자연환경

얕은 산지와 평야가 있는 지역이다.

현황

2007년 기준으로 신성촌은 163세대, 인구는 547명이다. 1992년의 한중 수교 이후 많은 사람들이 한국으로 일을 하러 가고 중국 내 대도시로 이동하게 되면서 신성촌 농민들은 큰 도시로의 진출 또는 해외로 일을 하러 가는 사람들의 수가 점점 증가하였다. 북경, 심양, 청도, 연대 등 중국 내 대도시에 진출하는 사람들은 상업에 종사하거나 아이들을 공부시키고 있다. 현재 마을에서 생활하는 농가 수는 3세대로 대부분의 토지는 한족 농가들이 경작하고 있다.

참고문헌
  • 한득수, 『상지시 조선민족사』(민족출판사, 2009)
  • 바이두 백과사전(http://baike.baidu.com/)
관련항목
이전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