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시

한자 遼陽市
중문 辽阳市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요령성 요양시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성격 지급시
면적 4,741㎢
인구[남/여] 185만 8,768명(남자: 945,546명/여자: 913,222명)
지급시 122°35E′-123°41E′, 40°42N′-41°36N′
정의

요령성에 속한 지급시.

개설

요양시는 요령성 중부, 요동 반도 북부 중심부에 위치하고, 서남 변경이 발해만과 70㎞거리이고, 동남 경계는 황해안과 100㎞ 거리에 있다.

요양시 정부는 백탑구(白塔區)에 소재하며 행정 구획은 백탑구, 문성구(文聖區), 굉위구(宏偉區)궁장령구(弓長嶺區), 태자하구(太子河區)의 5개 시 직할구와 등탑시(灯塔市)의 1개 현급시, 요양현의 1개 현(縣)으로 이루어져 있다.

명칭 유래

404년 요나라가 이 지역에 동경 요양부를 두고 배도(陪都)로 삼으면서 요양이란 명칭을 사용하게 되었다고 전한다.

형성 및 변천

오늘날 요양시는 전국(戰國) 시기에는 연(燕)의 요동군 수부(首府) 소재지였다. 진(秦) 시기에는 요동군의 군치(郡治)였으며 서한 및 동한 시에는 현도군(玄菟郡)에 속하였다. 동진(東晉), 16국 시기에는 이 지역은 전연(前燕), 후연(後燕)에 속하였고, 404년에는 고구려가 상평(襄平)을 점령하여 요동부로 개칭하였다.

당(唐)이 고구려를 멸망시킨 후에는 안동 도호부(安東都護府)를 상평으로 이전하였다. 요는 배도(陪都) 동경 요양부로 삼으며 요양으로 개칭하였고 금(金)도 이곳을 배도(陪都)로 삼았다. 원(元)은 요양 행중서성(遼陽行中書省)을 설치하며 요양을 치소(治所)로 삼았으며 명(明)은 요동 도사(都司)를 두었고 후금은 1622년 이곳으로 천도하여 동경성(東京城)을 삼았다.

이후 요양주(州)로 하여 이후에 봉천성(奉天省)으로 바뀐 성경 장군(盛京將軍) 관할에 두었다. 1904년 러일 전쟁 시에는 이곳에서 일본군과 러시아가 전투를 벌였다.

자연환경

요양시는 요동 반도 북부 중심부에 위치하고, 서남 변경이 발해만과 70㎞ 거리이고, 동남 경계는 황해안과 100㎞ 거리를 두고 있다. 해양의 영향을 비교적 크게 받으며, 1년 내내 온화하고 사계절이 분명하다.

봄에는 빠르게 따뜻해져 온난하지만 비는 적고 서남풍이 강하게 분다. 증발량이 많고, 일조 시간이 비교적 길어 봄철 가뭄이 잘 발생한다. 여름철에는 무덥고 비가 많이 내리며 동남풍이 분다. 온도가 높고 강수가 집중되며 북방 기류와 만나면 강한 대류성 날씨가 발생한다.

가을은 온도가 천천히 내려가며 청량한 날씨이고, 서늘하고 습윤하다. ‘가랑비가 내리면 추워지고, 이슬이 세 번 내리면 서리가 한번 생긴다’라는 특점을 가진다. 겨울철엔 한랭한 기간이 비교적 길다. 강수량은 비교적 적고 추위가 극심하며 건조하다. 때로 한파로 인해 눈이 내리기도 한다. 요양 동부는 요동 산지와 접하고 서부는 요하 평원을 대한다. 태자하강은 동쪽 교외로부터 흘러와 북에서 서로 방향을 바꿔 남부에서 발해로 유입된다.

현황

요양시의 경지 면적은 221만 묘인데 이는 총 면적의 31.2%를 차지한다. 1인당 경지 면적은 1.3묘이다. 농업이 비교적 발달하여 국가와 성에서 대표적인 농업 생산 기지이다. 콩 재배 면적이 180만 묘 이상이고 곡식의 연 평균 생산량은 75만 톤이고, 과일 재배 면적은 31만 묘이며, 담수어 생산량은 4만 톤이고 총 생산량이 전성에서 두 번째이다. 요양시에서 발견된 지하자원은 9부류 48가지이고 이미 매장량을 확인한 것은 28가지이고 개발이 가능한 것은 30여종이다. 석탄, 철, 규석, 마그네사이트, 운모, 석고, 점토 등이 가장 풍부하며 광산 보유량이 요령성에서 가장 많다. 규석과 백운모의 경우 각각 총 생산량의 60%와 70%를 차지한다.

참고문헌
  • 이현국, 『중국국가행정지리』(인포차이나, 2009)
  • 요양시(www.liaoyang.gov.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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