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얼빈 창녕 그룹

한자 哈爾濱 昌寧 그룹
중문 哈尔滨昌宁集团
분야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흑룡강성 하얼빈시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성격 조선족 기업가가 경영하는 그룹
설립자 석산린 회장
설립 시기/일시 1985년 6월
최초 설립지 하얼빈시 교외
정의

흑룡강성 하얼빈시에 있는 기업.

설립 경위

하얼빈 창녕 그룹의 석산린은 1963년에 하얼빈 공업 대학에 입학하여 핵물리학을 전공하였다. 그러나 문화 혁명 시기에 반혁명 판결을 받고 1969년에 북한 감옥에 압송되었다. 그 후 10년의 세월을 감옥에서 보낸 후 1979년도에 무죄로 석방되었다. 1985년 3월에는 하얼빈 제1 조선족 중학교 용접공장을 인수하였고 6월 12일에는 중국 급수 설비의 일대 변혁을 상징하는 하얼빈 창녕 급수 설비 공장이 하얼빈 교외에 세워졌다.

변천

1985년 6월 하얼빈 창녕 급수 설비 공장이 하얼빈 교외에 세워졌다. 1989년 6월에 석산린은 집체 기업으로 되어있는 창녕 급수 설비 공장을 사영 기업으로 변경할 것을 정부에 정식으로 신청하였으나 받아들여 지지 아니하였다. 그 후 1990년에 석산린은 해남성 해구시에 한국정화 회사와 합자하여 연간 생산액이 900만 달러인 정화 창녕 완구 유한 회사를 세웠고, 뒤이어 1991년 10월부터 하북성 진황도에 사영 기업인 창녕 공업 유한 회사를 세웠다.

구성 및 운영상황

하얼빈 창녕 그룹은 업종이 급수 설비 제조업이며 사영 독자 기업이다. 그리고 계열사 현황을 보면 하얼빈 금성 창녕 펌프 공장(합자)이외에 8개의 계열사가 있으며 창업은 1985년 6월 12일에 하였다. 매출 추이를 보면 1985년도에는 220만 위안의 매출을 올렸으며 1989년도에는 1억 2천만 위안의 매출을 올렸다.

현황

중국내 조선족 기업가들은 가장 성공한 조선족 개인 사업가로 하얼빈에서 창녕 급수 설비창을 경영하는 석산린 회장을 꼽는다. 교통 사정이 좋지 않은 중국 현실에서 석산린 회장은 주로 밤기차에서 자고 아침에 목적지에 도착하여 일을 보는 방법으로 일주일에 평균 6개 도시를 방문하는 강행군으로 고객들을 만나서 사업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 것이다.

의의와 평가

하얼빈 창녕 그룹의 석산린 회장은 발명과 기업 경영을 통하여 조선족의 우수성을 중국전역에 알림으로써 조선족의 자존심을 지켜주었다. 또한 사업을 통하여 벌어들인 이익을 민족 교육 사업 등을 통하여 사회에 환원함으로서 모범이 되는 기업가상을 보여주었다. 또한 어떠한 어려운 환경에서도 끈질긴 생명력으로 위기를 기회로 승화시키는 멋진 기업가 모델이다.

참고문헌
  • 임채완·이장섭, 『흑룡강성 조선족기업의 성장과 기업가정신』(북코리아,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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