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철도 부설과 한인의 하얼빈 이주

한자 中東 鐵道 敷設과 韓人의 하얼빈 移住
영문 The laying of the Middle East Railway and the Korean moved to Haerbin
중문 敷设中东铁路与韩人移住哈尔滨
분야 역사/근현대|지리/인문 지리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흑룡강성 하얼빈시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부설 공사 시작 1896년
개통 시기 1903년
개칭 시기 1945년
최초 설립지 흑룡강성 동남부
현소재지 내몽골자치구, 흑룡강성, 길림성, 요령성
정의

중국 동북 지역에 중동철도의 부설과 이를 배경으로 전개된 한인들의 하얼빈으로의 이주에 대한 이야기.

러시아의 중동철도 건설

러시아는 제2차 아편전쟁 이후 1862년 《육로 통상 장정(陸路通商章程)》의 체결을 시작으로 1869년과 1881년 두 차례에 걸쳐 중국과 《개정 육로 통상 장정(改定陸路通商章程)》을 체결함으로써 중국 내에서의 무역 특권을 보장받고자 했다. 이를 위해 중국 경내를 통과하는 교통로의 확보가 필요함에 따라 철도 건설에 부심하였다.

1896년 5월 중국의 이홍장은 청나라 특사의 신분으로 러시아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신임 황제 니콜라이 2세의 대관식에 참석하였다. 이때 이홍장은 러시아정부 대장대신 우이터와 《중러 밀약》을 체결함으로써 중국의 동북경 내 동쪽 수분하로부터 서쪽 만주리까지 중동철도의 부설을 확정지었다. 이어 1898년 5월에는 하얼빈을 중동철도의 관리중심으로 정하고 1898년 7월 《동청철도 공사 연속 계약(東淸鐵道工事連續契約)》을 맺어 하얼빈부터 여순까지의 중동철도 남만주 지선의 부설권까지 획득하였다.

중동철도는 본래 청국과 러시아 국경을 따라 총연장 1,300 베르스트에 달하는 활 모양의 아무르 노선으로 건설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만주를 통과하는 800 베르스트의 직선 노선으로 대체할 경우 경제적으로 철도 부설 비용의 절감뿐만 아니라 공사기간과 거리의 단축 효과까지도 기대할 수 있었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중국 측의 양해가 절대적으로 필요하였다.

이에 대해 중국은 일본의 침략을 견제하기 위해 중동철도의 만주 경유를 승인하였다. 러시아 세력을 이용해 중국에 대한 일본의 침략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려는 생각이었다.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에게 요동 반도가 할양되자 러시아는 삼국 간섭을 통해 이를 저지하였다. 일제가 남만주를 획득할 경우 동아시아에서의 무역과 세력 확대를 계획하던 러시아의 이해 관계와 충돌되기 때문이었다.

중국은 이 같은 러시아 세력을 이용해 일본의 침략을 저지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러시아 군대가 일본과의 분쟁지역으로 용이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만주를 경유하는 중동철도 부설을 승인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1897년 본격적인 철도 부설 공사가 시작되었다. 2월 11일 양국은 철도 건설을 위해 러시아에 동성 철로 공사(東省鐵路公司)를 수립하고 북경화아도성은행(北京華俄道胜銀行) 내에 분점을 설치하였다. 그 해 4월 러시아의 책임 하에 철도 건설이 시작되어 1901년 3월 중동철도의 동쪽선인 하얼빈으로부터 러시아의 시베리아 철도를 잇는 우수리스크까지 열차가 개통되었다. 1903년 동쪽의 수분하(綏芬河)로부터 서쪽의 만주리(滿洲里)까지 전체 길이 2,500㎞에 달하는 중동철도의 전선이 개통되면서 6년여에 걸친 철도 부설 공사가 마무리 되었다.

중동철도 부설 공사와 한인의 이주

러시아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만주리로 이어지는 중동철도를 부설하면서 철도 연선 주변의 여러 지역으로부터 많은 노동력이 동원되었다. 1897년 여름 동녕현 삼차구(東寧縣三岔口) 부근에서 중동철도 착공식이 있은 후 20여 만 명의 노동자가 철도 부설공사에 투입되기 시작했다.

이들 중에는 연해주와 만주, 한반도 북부 지역의 한인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한인 노동자들은 한반도 북부, 중국의 길림 등지로 이주했던 사람들로 일자리를 찾아 다시 중동철도연선 지역으로 이주해 온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러시아가 공사를 진행하면서 초기 연해주 지역 한인들을 노동자로 동원했기 때문에 이 지역 한인들의 재이주도 적지 않았으며, 흑룡강성의 수분하·영안· 목단강(牧丹江)·목릉(穆棱)·훈춘(琿春) 등지에서 이주해 오는 사람들도 많았다. 한인 철로 건설 노동자와 임업 노동자는 돌과 흙을 운반하여 철로의 기반을 닦고 벌목을 하기도 했으며, 목재를 운반해 쌓는 등 대부분 고된 육체 노동에 종사하였다. 큰 자본과 토지가 없었던 빈곤한 한인들에게 철도 부설 노동은 생계를 가능하게 해주는 기회가 되었기 때문에 철도 부설 공사가 시작된 이후 철로 수축 과정이 고된 노동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한인들의 이주는 계속되었다.

러시아 혁명에 참가했던 사회주의 운동가이자 여성 혁명가인 김 알렉산드리아도 1895년 중동철도 건설 현장의 통역관이 된 아버지 김두서를 따라 러시아에서 중국으로 이주해 온 경우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아버지의 친구를 따라 다시 연해주로 돌아왔다고 한다. 한편 면도하진(免渡河鎭)의 조선족 정정옥(鄭正玉) 노인의 기억에 따르면 그녀의 부모 역시 1903년 러시아에서 일자리를 찾아 재이주해 왔으며, 중동철도 부설 노동자로 생활하였다. 그녀의 가족들이 이주해 오기 전 이미 러시아에서 이주해 와 중동철도 부설 노동자로 종사하며 생활하던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고 한다.

일본의 남만 철도 주식 회사가 중동철도 부설 공사와 관련해 이주한 한인들에 관해 작성한 『만주농업이민방책관계자료(滿洲農業移民方策關係資料)』에는 ‘1897년 동청철도 부설공사에 품팔이를 하기 위해 많은 조선 사람이 길림성으로부터 만주리 쪽으로 이사해 왔고 횡도하자, 고령자 일대에 조선 사람이 팔방 10리에 집거해 살고 있다’는 내용이 보이기도 한다.

철도 부설 공사에 노동자로 이주했던 한인들은 1903년 6월 철도 부설 공사가 끝난 후 하얼빈을 중심으로 동쪽의 수분하에서 서쪽의 만주리에 이르는 철도 연선 지역에 주로 정착하였다. 이들은 대개 연선 지역에 정착해 수전을 경영하며 생활하였다. 이들은 철도 연선 지역 가운데에서도 비교적 수전에 적합한 수분하, 마도석, 일면파, 아성 등지에서 생활하였다.

수전 지역에 정착하지 않은 한인들은 러시아가 연선 주변 지역의 이권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임업공이나 광공업 등으로 종사하였다. 중동철도 부설 공사가 끝나자 러시아는 중동철도 부설 공사를 진행하면서 획득한 철도 연선 주변에 대한 이권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철도 연선 주변 지역 즉 북만주 지역에 대한 세력 확대를 도모하기 위함이었다.

중동철도연선 지역은 대흥안령(大興安嶺) 삼림 지역으로 임업 자원이 풍부하였기 때문에 러시아 차르와 자본가는 중동철도가 지나가는 대흥안령 천연 임목 지대에 많은 벌목 회사를 설립하였고, 찰뢰낙이(扎賚諾爾) 석탄광산에 대한 채벌과 채굴을 진행하는 등 연선지역 개발에 심혈을 기울였다. 이때 일자리를 찾아 새롭게 이주해 광산 채굴이나 벌목 노동자로 생활하는 한인들이 생겨났다.

한편, 이권 개발 회사가 들어선 지역을 중심으로 상업 지구가 형성되자 이곳에서 소규모 상점을 경영하며 생활하던 한인들도 있었다. 중동 철도가 통과하는 만주리, 찰란둔 등 호륜패이맹 일대 중동철도연선 지역에 대한 개발로 인해 점차 이들 지역에 상업 지구가 형성되었다. 특히 만주리와 해랍이(海拉爾) 두 지역은 모두 중동 철도의 입선 지역에 속하는 곳으로 철도를 포함한 육상 교통의 요지로서 접근성이 높아 각국의 교민들과 노동자가 모여들던 지역으로 꼽힌다. 이곳에 점차 상업 지역이 형성되자 청 정부는 두 지역을 ‘상업 특별 지역(商業特別地域)’으로 선정해 관리하였다. 상공업에 더해 이 지역의 수공업·목축업 생산 역시 일정 규모에 달하면서 주변국들과의 교역까지 발달하게 되었다. 그러자 일부 한인들은 각국에서 몰려드는 노동자들을 상대로 하는 소규모 상점을 경영하며 생활하였다. 아극석시(牙克石市) 건국부국장 홍광식(洪光植)의 외조부는 해랍이에서 주점을 경영했는데 1920년대에 찰란둔시 서합랍소(扎蘭屯市西哈拉素) 기차역 거리로 이주해 살았다고 한다. 1921년 만주리진 내에도 세 가구의 한인 상인들이 거주하였으며 그 수는 11명에 달하였다.

한인들의 하얼빈 이주

중동철도의 개통은 한인들이 하얼빈으로 이주하는데 큰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러시아가 중동철도를 부설하면서 필요했던 노동자를 시베리아와 중국 동북 지역, 조선 북부 지역 등 인근 지역으로부터 고용해 충당하면서 부설 공사의 중심지였던 하얼빈으로도 이주해 오게 된 것이다.

『동청철도 연혁사(東淸鐵道沿革史)』에 따르면 중동철도 부설을 위하여 러시아 측에서 최초로 하얼빈에 파견한 선발대가 1898년 3월 8일 블라디보스토크를 출발하였다. 이 선발대는 기사 스터뤄브스끼를 위수로 하여 기사, 기상 기술자, 의사, 통역, 주방장, 노동자 그리고 병사들까지 약 50명이 30대의 마차를 타고 삼차구, 영고탑, 길림 등을 거처 4월 24일에 하얼빈에 도착했는데, 여기에는 한인 통역관도 포함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한인들은 철도 부설 공사에 노동자로 참여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들 대부분은 조선 북부 지역 혹은 러시아연해주 지역에서 생계를 위해 이주해 왔다.

중동철도의 동쪽선인 하얼빈으로부터 러시아의 시베리아 철도를 잇는 우수리스크까지는 1901년 3월 3일에, 1903년 7월 14일에는 동청철도 서쪽선인 하얼빈에서 만주리까지의 전 노선이 개통되었다.

1903년 동쪽의 수분하로부터 서쪽의 만주리까지 중동철도의 전선이 개통된 이후 철도 부설 공사에 참여했던 노동자들은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철도 주변 지역에 그대로 남아 정착하는 경향을 보였다. 특히 한인들은 하얼빈과 목단강, 목릉하, 수분하 유역에 정착해 생활하였다. 1910년 1월 15일 하얼빈 주재 일본 총영사관에서 일본 외무 대신한테 보낸 《재하얼빈한국인정황에관한보고》에 따르면 당시 하얼빈에는 268명의 한인들이 거주하고 있었다고 한다.

한편, 중동철도 부설 이후 러시아 정부가 중동철도를 관리하기 위한 중심지를 하얼빈으로 선정하고 중동철도 관리국을 이곳에 설립하면서 많은 러시아인 중동철도 관리 인원들이 하얼빈에 상주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작은 어촌 마을이던 하얼빈은 정치, 경제, 문화, 사회 각 방면에서 빠르게 발전해 중국 동북의 상업 중심지로 거듭나게 되었다. 이후 중동철도가 통과하는 지역과 주변 소규모 도시에서 각국의 많은 노동자, 청부업자와 공상업자들이 하얼빈으로 몰려들었다. 이때 중동철도는 이들이 보다 용이하게 하얼빈으로 접근할 수 있는 수단이 되어주었다. 특히 중동철도남만지선까지 완공된 이후에는 길림지역의 한인들도 중동철도를 이용해 직접 흑룡강성 중부 지역 즉 하얼빈, 치치하얼 등지로 이주할 수 있어 한인 이주자가 증가하였다.

공사가 완공된 이후 하얼빈을 중심으로 수분하에서 만주리에 이르는 철도 연선 지역에 거주하는 한인들에 관해 하얼빈빈강도(濱江道)이광주가 1911년 10월에 남긴 『철도연선 중외호구조사(鐵道沿線中外戶口調査)』에도 “수분하에서 만주리 사이의 철도 연선에 거주하는 조선 사람이 2,364명이나 된다.”고 기재하고 있어 중동철도가 한인의 하얼빈 이주에 큰 영향을 미쳤음을 짐작할 수 있다.

앞서 살펴본 한인들의 하얼빈 이주의 특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한인들의 하얼빈 이주는 대개 러시아로부터의 재이주가 많았다. 이들은 대부분 조선에서 러시아로 이주해 정착했다가 하얼빈의 성장과 함께 다시 이주한 경우였다.

둘째, 하얼빈 한인들은 대개가 노동자들이었다는 것이다. 한반도 북부 혹은 러시아에서 중동철도 건설시 이주해 철도 부설 공사에 참여하거나, 연선 지역 주변의 이권을 러시아가 개발하면서 임업공 등으로 참여한 한인들이 노동자로 이주하였다. 전기한 1910년 보고한 하얼빈 재주 한인 268명 가운데 노동자와 그의 가족 수는 90%에 달하였다. 더 나은 생활을 위해 노동자로 재이주 했지만 대다수 하얼빈 이주 한인들은 빈곤한 생활을 벗어나지 못했다.

셋째, 이주 초기 노동자를 중심으로 하던 한인의 하얼빈 이주는 점차 각지에서 모인 노동자 등을 대상으로 하려는 한인 소상인과 철도 관리 중심에 근무하는 한인 등 다양한 직업의 한인들로 확대되었다. 하얼빈의 중동철도국에서 사무를 보는 사람도 4~5명나 되었다. 그들의 러시아어는 상당한 수준에 달했으며, 그 가운데 김좌기(金佐琪)가 오가(五家)점 부역장으로 취임하기도 했다. 동청철도에 한인이 부역장에 취임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처럼 노동자로 하얼빈에 이주하기 시작한 한인들은 뛰어난 수전 기술과 어학 실력 및 높은 학구열 등으로 인해 점차 하얼빈 사회에 안정적으로 정착해 나갔다.

참고문헌
  • 徐基述 편, 『黑龍江省朝鮮民族』(黑龍江省朝鮮民族出版社, 1988)
  • 內蒙古自治區地方志編纂委員會辨公室 編, 『內蒙古大事記』(內蒙古人民出版社, 1997)
  • 滿洲里市志編纂委員會 編, 『滿洲里市志』(內蒙古人民出版社, 1998)
  • 呼倫貝爾盟史志編纂委員會 編, 『呼倫貝爾盟志』(內蒙古文化出版社, 1999)
  • 김창호·류승렬·유명희·진용선·전신재 편저, 『재중 강원인 생활사 연구-중국 흑룡강성』(강원 발전 연구원, 2007)
  • 서명훈, 『할빈시 조선 민족 백년 사화』(민족 출판사, 2007)
  • 宁朝「朝鲜族移居黑龙江的历史 原因, 迁徒路线及其性质问题」(『黑龙江民族丛刊』2期, 1991)
  • 邵华「1898-1931年哈尔滨早期现代化特点研究」(『神州』 3, 2013)
  • 「中東鐵道에 朝鮮人副驛長, 처음으로 부역댱」(『동아 일보』, 1927. 3. 22.)
  • 「これを中央に移して処理す」(『東京 朝日 新聞』 , 1929. 6. 18)
  • 서명훈,「하얼빈 조선민족의 정착」(『흑룡강 신문』 , 2005. 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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