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강루 고분군

한자 望江樓 古墳群
중문 望江楼墓群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고분
지역 요령성 본계시 환인만족자치현 아하조선족향 남변석합달촌  
시대 고대/삼국 시대/고구려
상세정보
성격 고분군
양식 적석묘(돌무지무덤)
크기 4호묘(M4) 길이 15m, 너비 13m, 잔존 높이 1.6m.6호묘(M6) 길이 13.5m, 너비 13m, 높이 1.5m
조성 시기/일시 기원전 1세기 전후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71년 또는 1974년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4년 10~11월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6년
소재지 요령성 본계시 환인만족자치현 아하향 남변석합달촌
정의

요령성(遼寧省) 본계시(本溪市) 환인만족자치현(桓仁滿族自治縣) 아하향(雅河鄕) 남변석합달촌(南邊石哈達村)에 있는 고구려 시대의 고분군.

개설

망강루 고분군은 혼강(渾江)가의 산마루에 6기의 고분이 지세가 높은 곳에서부터 낮은 곳으로 일렬로 배치되어 있는 고구려 초기 적석묘(積石墓) 고분군으로 가족 묘지로 추정된다. 출토된 금귀걸이가 서풍(西豊) 서차구(西岔沟) 고분의 출토품과 유사하고 철제 차관(茶罐)은 유수(楡樹) 노하심(老河深) 고분의 출토품과 유사하여 고분의 조성 연대는 고구려 건국 전후 시기에 해당한다. 특히 출토품이 화려하다는 점에서 고구려 건국 전후의 귀족 무덤 구역으로 추정된다.

위치

망강루 고분군은 요령성 본계시 환인만족자치현 아하향 남변석합달촌 서북쪽 약 1.5㎞의 산마루에 있다. 산마루 북쪽은 급격한 낭떠러지로 그 아래 혼강이 흐르고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망강루 고분군은 주변 마을 사람들에 의해 도굴되거나 파괴되었다. 1971년 본계시·환인현 문물관리 부문에서는 고분 4기에서 나온 목걸이 등 도굴된 일부 유물을 회수하였다.

2004년 도굴이 빈번하게 일어나 유물의 발굴이 시급히 요청되었다. 이에 10월 중순∼11월 상순 사이에 요령성 문물 고고 연구소, 본계시 박물관, 환인현 발굴대가 6기의 적석묘[돌무지무덤]를 발굴하였다. 6기의 적석묘는 대체로 산의 방향에 따라 배열되어 있었다. 지세가 높은 서쪽에서부터 낮은 동쪽으로 가면서 고분 번호를 M1∼M6으로 부여하였다. 이들 고분은 모두 강돌로 쌓은 적석묘이며, 평면은 불규칙 타원형으로 보이지만 본래는 장방형이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4기는 능선의 돌출부를 이용하여 축조하였으며, 2기는 능선 아래의 완만한 비탈에 축조되었다. 고분이 자리한 곳의 산세에 따라 높은 곳은 돌을 좀 낮게, 낮은 곳은 비교적 높게 축조하였다. 고분 규모는 M1, M4, M6 등 3기가 비교적 크며, M2, M3는 비교적 작다. M5는 지표 위에 한 층의 조약돌만 깔려져 있어서 완성되지 못한 무덤의 기초 부분으로 추정된다.

형태

망강루 고분군의 묘실[무덤칸]은 모두 장방형으로 4호묘[M4]만 암반을 쪼개고 파낸 묘광으로 지표 아래 조성되었으며, 6호묘[M6]을 비롯한 2호묘[M2] 및 1호묘[M1]는 모두 지상에 묘실을 조성하였다. 대형묘인 4호묘[M4]와 6호묘[M6]를 통해 구체적인 적석묘 축조식을 살펴볼 수 있다.

4호묘[M4]는 고분군의 중앙에 위치하며, 규모는 길이 15m, 너비 13m, 잔존 높이 1.6m이다. 강돌로 축조하였으며, 매장부는 암반을 쪼아 파서 만든 비교적 얕은 장방형의 묘광인데 무덤 바닥을 평평하게 하기 위해 비탈 위는 좀 깊게 쪼아 파고 비탈 아래는 얕게 쪼아 팠다. 묘실 평면은 말각 장방형으로 길이 3.5m, 너비 2.9m, 제일 깊은 곳 0.3m, 제일 얕은 곳 0.1m이다. 무덤 바닥에는 작은 조약돌들을 한 층 평평하게 깔아 놓았는데, 이 작은 조약돌 사이에서 사람뼈의 잔해와 일부 구슬 장식[珠飾]들이 발견되었다. 묘실 내의 동북쪽과 서북쪽 모서리에는 주먹만한 크기의 조약돌무지가 남아 있는데 두께가 약 0.3m쯤 되며, 그 위는 큰 조약돌무지가 있다. 이는 죽은 자를 장례한 후 주먹만한 크기의 조약돌로 묘실을 채워 넣은 다음 다시 조금 더 큰 조약돌로 묘실 전체를 봉하였던 것을 보여준다. 무덤은 심하게 훼손되어 쪼아서 판 묘광의 사면 위에 가장자리, 특히 비교적 얕은 남쪽의 위에 가장자리를 조약돌로 계속하여 무덤 벽을 쌓았는지는 불명확하다. 북쪽에 있는 돌무지의 바깥쪽에서 조약돌로 에워 쌓은 불규칙적인 석권(石圈) 1곳이 확인되는데 석권의 직경은 0.3m 안팎으로 그 내부에는 비교적 많은 토기편들이 발견되어 묘제(墓祭)와 연관이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6호묘[M6]는 고분군 제일 아래 끝에 위치하며, 규모는 길이 13.5m, 너비 13m, 높이 1.5m이다. 조약돌로 축조하였으며, 묘실은 지상에 조영하였는데 평면은 장방형에 가까운 형태로 길이 4m, 너비 2m, 깊이 0.3m이다. 무덤 바닥은 지면과 대체로 거의 평행하며, 무덤 바닥에 10∼27㎝ 두께로 돌을 깔았으며, 그 돌 위에서도 일부 주먹만한 크기의 조약돌이 발견되었으나 이미 파괴되어 조약돌 축조 정황은 불명확하다. 무덤 내에는 1개의 장방체 돌[石頭]이 있는데, 돌무지에 사용된 자갈과는 달리 묘광 축조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서남쪽 돌무지 밖의 가장자리에 안으로 기울게 세워진 편평한 모양의 대형 강돌과 산돌들이 빈틈없이 빼곡하게 쌓여 돌담(石墻)을 이루고 있다. 이는 무덤 위의 돌들이 떨어져 허물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보호석 역할을 한다. 또한 보호석을 고정하기 위해 보호석의 바깥 기초 부분에도 부분적으로 조약돌들을 쌓아 그 꼭대기를 눌러 주었다.

출토 유물

1971년 조사 당시 이미 무덤 내 부장된 금제 팔찌[金鐲], 철검[銅柄鐵劍], 철제 차관[鐵車軎], 구슬 장식[珠飾], 오수전(五銖錢) 등의 유물이 도굴 당하였으며, 철제 차관과 한 무더기 구슬 장식만을 회수하였다. 이후에 토기편, 동제 운주[銅節約], 금제 귀걸이 장식[金耳飾] 등을 새로 발견하였다. 2004년 조사에서는 토기 잔편, 목걸이의 구슬장식, 돌도끼, 돌망추, 청동 방울, 청동고리, 청동 팔찌, 청동반지, 철제 재갈, 철제 어구, 철촉, 철제 칼, 은반지, 유리 팔찌[玻璃手鐲], 유리 귀걸이장식[玻璃耳塡] 등이 출토되었다. 6호묘[M6]에서 출토된 토기 잔편은 대부분 돌무지 틈새나 서북부 돌무지 외부의 원지표 위 및 석권(石圈) 안에서 발견되었다. 부장품의 주류는 목걸이 장식의 구슬인데 1호묘, 3호묘, 4호묘, 6호묘 등에서 출토되며, 그 가운데 4호묘와 6호묘 출토품의 수량이 비교적 많다.

토기구연부1는 모래가 섞인 황갈색의 토기로 크기가 구연 직경 11㎝, 동체 직경 15.8㎝, 잔존 높이 12.4㎝이며, 형태상 호(壺)로 추정되는데 입이 안으로 들어가 있고, 동체는 불룩하며, 내부는 빨간색을 띠고, 표면은 반들반들하게 만들었으며, 입구 근처에 노란 귀를 달고 있다. 토기구연부2는 모래가 섞인 홍갈색 토기로 크기는 구연 직경 10.4㎝, 동체 직경 14.6㎝, 잔존 높이 8.5㎝이며, 형태상 호로 추정되는데 구연과 인접한 곳에 뿔모양의 파수가 달려 있다. 토기구연부3은 모래 섞인 갈색 토기로 크기가 구연 직경 11㎝, 잔존 높이 9㎝이며, 형태상 호로 추정되는데 구연만 잔존하고 구연은 좁은 경부에서 바라졌으며 어깨가 넓다. 토기구연부4는 모래 섞인 홍갈색 토기로 크기가 구연 직경 10㎝, 잔존 높이 4.6㎝이며, 형태상 호로 추정되는데 구연은 바라졌으며 끝을 편평하게 조성되었다.

철제 차관은 크기가 길이 7.1㎝, 넓이 4.8~6.5㎝, 두께 1.7~1.9㎝이며, 통 모양으로 밑 부분이 높고 위부분이 조금 좁으며, 두 끝에는 음각선이 있고 밑부분 양 끝에는 장방형의 구멍이 있다.

청동 운주는 크기가 길이 2.4㎝, 넓이 2.4㎝, 높이 1.4㎝이며, 십자형태이다. 반원형으로 가운데가 비어 있으며, 밑에는 네모난 구멍이 있다.

금귀걸이는 크기가 길이 5.2㎝, 넓이 1.3㎝이며, 위에는 타원형의 잎모양이 있고, 아래는 금줄을 4조로 감아 팔자 형태를 하고 있으며, 제일 아래에는 한 개의 환이 달렸다. 잎모양 아래에는 한 개의 금줄이 아래로 내려가 있으나 원래의 모습은 아닌 것으로 추정된다.

구슬 장식1은 길이 3.4㎝, 넓이 1.1㎝이며, 각이 진 관 모양으로 가장 많은 수량을 차지하고 있다. 구슬 장식2는 길이 2.4㎝, 넓이 1.4㎝이며, 육각형 모양을 하고 있다. 구슬 장식3은 길이 2㎝, 넓이 1.6㎝, 두께 0.7㎝이며, 편평육각형으로 아래 위가 편평하다. 구슬 장식4는 길이 1.4㎝, 넓이 0.8㎝이며, 작은 도끼 형태로 평면이 사다리꼴이며, 측면은 걸형문자와 비슷하다. 구슬 장식5는 길이 0.8㎝, 넓이 0.4㎝이며, 주판알 모양이다. 구슬 장식6은 길이 1.3㎝, 넓이 1.0㎝이며, 뿔모양이다. 구슬 장식7은 길이 1.5㎝, 넓이 0.8㎝이며, 대추알 형태이다. 구슬 장식8은 길이 1.3㎝, 넓이 0.4㎝이며, 삼각형 모양으로 남색으로 사이에 암홍색을 띠며 3줄의 백색 파도 무늬가 있다. 구슬 장식9는 길이 3㎝, 넓이 0.9㎝이며, 관 모양으로 두 끝이 안으로 들어가며, 남색인데 황색의 곡선 무늬가 있다.

의의와 평가

망강루 고분군에서 출토된 토기 잔편은 대부분 무덤의 돌무지 틈새와 서북부 적석 분구 밖 원지표상 및 석권(石圈) 안에서 발견되었다 1호묘의 경우 묘실 내에서 토기편이 출토되었으나 완형은 하나도 없다. 따라서 토기는 대부분 무덤 밖에 매장한 훼기(毁器)의 습속을 시사한다. 또한 망강루 고분군은 개별 단독묘가 일직선상으로 분포하며, 높은 곳으로부터 낮은 곳으로 점차 발전해 나가고 있는데 이와 같은 무덤 배열은 시간적인 순서와 관련을 가지며, 가족의 묘역일 가능성이 있다.

구슬 장식은 한대(漢代)에 해당하는 요양 삼도호(遼陽三道壕)의 한대 촌락 유적, 서풍 서차구 묘지(西豊西岔溝墓地), 유수 노하심 2기 문화 고분(楡樹 老河深 2期文化 墓葬)[기원전 2C 전반∼기원후] 등에서 일찍이 발견되었다. 유리 귀걸이장식(玻璃耳塡)은 요양 삼도호 유적, 노하심 2기 문화 고분에서 발견되었다. 철제 차관은 노하심 출토의 2형식과 기본적으로 일치하는데 전형적 한대(漢代) 형식이다. 청동 방울은 서차구 묘지에서 출토된 것과 일치한다. 따라서 망강루 유물과 비교되는 자료의 연대는 서한 중후기~동한 초기로 추정되며, 망강루 고분 연대도 이와 유사한 시기에 비정된다. 이 시기는 고구려가 환인에서 건국한 전후 단계에 해당된다. 출토 유물이 화려하여 묘지는 고구려 건국 전후의 귀족 무덤 구역으로 추정된다. 한편 이견이 있기는 하지만, 출토품이 비슷한 서풍(西豊) 서차구(西岔溝) 묘지와 유수(楡樹) 노하심(老河深) 2기 문화 고분이 부여 유적지라는 견해를 따른다면, 망강루 고분군은 고구려 초기에 부여와의 관련성을 찾아볼 수 있는 유적이다.

참고문헌
  • 梁志龍·王俊輝, 「遼寧桓仁出土靑銅遺物墓葬及相關問題」(『博物館硏究』1994-2, 1994)
  • 李新全, 「五女山山城及其周圍的高句麗早期遺跡」(『고구려 문화의 역사적 의의』, 2005)
  • 國家文物局 主編, 『中國文物地圖集』遼寧分冊(西安地圖出版社, 2009)
  • 梁志龍·李新全, 「本溪地區高句麗考古三十年」(『高句麗與東北民族硏究』,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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