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명 석실 소토묘

한자 鳳鳴石室燒土墓
중문 凤鸣石室烧土墓群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고분
지역 요령성 본계시 환인만족자치현 환인진 봉명촌  
시대 고대/삼국 시대/고구려|고대/남북국 시대/발해
상세정보
성격 고분
양식 석실묘[돌방무덤]
조성 시기/일시 고구려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90년
소재지 요령성 본계시 환인만족자치현 환인진 봉명촌
정의

요령성(遼寧省) 본계시(本溪市) 환인만족자치현(桓仁滿族自治縣) 환인진(桓仁鎭) 봉명촌(鳳鳴村)에 있는 고구려 또는 발해 시대의 고분군.

개설

봉명 석실 소토묘는 혼강(渾江)에 위치한 고분으로 진흙과 마른 풀을 섞은 초반니(草拌泥)를 묘실[무덤칸]의 벽과 바닥에 바르고 불로 태워 만든 독특한 형식을 갖추고 있다. 청동 비녀의 새털구름 무늬[권운문(卷雲文)]가 한대(漢代) 와당의 권운문 모양과 유사하다고 하여 고구려고분으로 파악하지만 동제(銅製) 비녀 중 일부는 요금(遼金) 때의 비녀와 유사하다는 점에서 발해(渤海)로 비정하기도 한다.

위치

봉명 석실 소토묘는 요령성 본계시 환인만족자치현 환인진 봉명촌혼강 가에 위치한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봉명 석실 소토묘는 원래 혼강 가의 진흙에 묻혀 있었으나, 1990년 봉명 발전소 저수 당시 강물이 드나들어 진흙이 씻겨 나가면서 노출되었다. 고분은 거의 파괴되었으며 혼강 변에는 유물이 널려 있었다. 그러나 유물은 무덤의 중앙 또는 그 부근에서 많이 유리되지 않았다. 수위가 올라 수몰될 상황에 이르자 이 해 10월에 발굴 조사를 진행하였다.

형태

고분 형식이 매우 독특한데 묘실[무덤칸]은 장방형으로 규모는 길이 2.5m, 너비 1.4m, 깊이 0.86m이며, 네 벽면은 동글납작한[扁圓形] 자갈로 축조 후 벽면에 두께 3∼7㎝의 진흙과 마른 풀을 섞은 초반니(草拌泥)를 발랐고, 무덤칸 바닥에도 초반니를 평평하게 깔은 후에 모두 불로 태워서 바닥과 벽이 매우 단단하다. 천정은 남아 있지 않다. 무덤 밖에는 많은 자갈들이 산재해 있다.

출토 유물

유물은 무덤칸에서는 보이지 않고, 무덤 밖 서단에서 돌비녀[石釵], 청동 비녀[銅釵], 청동 장식[銅牌飾] 등을 발견하였으나 위치상 고분의 부장품으로 추정된다. 돌비녀는 크기가 길이 9.2㎝, 넓이 2.1㎝이며, 백색으로 갈아서 만들었으며, 두 갈래로 끝부분이 활모양[弧形]을 이루며, 단면은 원형이다. 청동 비녀는 2점이 출토되었는데 크기가 길이 15.3㎝, 넓이 3.5㎝이며, 형태는 같은데 두 갈래로 단면에 직선으로 교차된 꽃무늬가 있으며, 옆면에는 견운 무늬와 인형 무늬가 있고 인형은 앉아서 손을 든 모습을 하고 있다. 청동 장식은 3점이 출토되었으나 1점이 손상되었으며, 크기는 길이 4.1㎝, 넓이 4㎝이며, 나비 모양이고 윗부분에 구멍이 하나 있으며, 가운데는 3개 혹은 4개의 구멍이 있고, 문양은 구슬이 연속적으로 이어져 있는 형태이다.

의의와 평가

봉명 석실 소토묘 부근에서 출토된 유물은 비교적 드물게 보이며, 다른 곳에서 아직 발견되거나 보고되지 않았다. 청동 비녀의 측면에 새겨진 새털구름무늬는 한대 와당에서 유행하던 문양과 흡사하며, 내몽고요성 흑성 고성지(遼城黑城古城址)에서 출토된 한대 와당에도 이런류의 새털구름무늬가 새겨져 있다. 따라서 유물 연대는 한대(漢代)로 비정되고 있다. 그러나 청동 비녀 중 일부는 요·금대의 고분이나 유적에서 출토된 것과 유사한 형태로 발해 시대의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 梁志龍·王俊輝, 「遼寧桓仁出土靑銅遺物墓葬及相關問題」(『博物館硏究』1994-2, 1994)
  • 강현숙, 「고구려 고지의 발해 고분-중국 요령지방 석실분을 중심으로」(『한국고고학보』72,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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