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자 청동단검묘

한자 大甸子 靑銅短劍墓
중문 大甸子青铜短剑墓群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고분
지역 요령성 본계시 환인만족자치현 대전자촌 만구자둔  
시대 고대/삼국 시대/고구려
상세정보
성격 고분군
양식 석관묘(돌널무덤)
크기 길이 4m, 너비 3m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74년
소재지 요령성 본계시 환인만족자치현 대전자촌 만구자둔
정의

요령성 본계시 환인만족자치현 대전자촌 만구자둔에 있는 고구려 시대의 고분.

개설

대전자 청동단검묘육도하 유역에 자리하는 고분으로 고분 형식은 돌널[石棺]을 매장부로 둔 무덤으로 돌널무덤[石棺墓]이며, 청동단검이 출토되어 청동단검묘로도 지칭된다. 이 청동단검의 연대는 전국 말기에서 진대로 추정된다. 또한 고분은 인근의 추수동 유적 주민들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추수동 유적에서 출토된 화폐들은 전국 시대(戰國時代) 후기에서 진대(秦代)에 해당한다. 따라서 해당 고분의 연대는 연(燕)·진(秦) 교체기인 기원전 3세기 말경으로 비정된다.

위치

대전자 청동단검묘는 요령성 본계시 환인만족자치현 대전자촌 만구자둔의 뒷산 비탈에 자리하고 있다. 산기슭 완만한 비탈에 위치하며, 주위 지세는 비교적 평탄하다. 고분 서남으로 약 1㎞ 떨어진 곳에 대전자촌이 위치하며, 대전자촌 서남에는 우모대산(牛毛大山)이 자리하고 있다. 본계-환인 간 도로가 고분 북단을 통과하며, 도로 북쪽에는 육도하(六道河)가 흐르고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대전자 청동단검묘는 1974년 4월에 사도하자향 대전자촌 주민이 농지를 개간하면서 발견하였다. 산비탈 경지에서 고분을 쪼개고 계단식 밭을 만드는 과정 중 1개의 대판석을 발견하였는데 들어 올리지 못해 폭약으로 판석을 깨고 돌덩어리를 들어내고 파다가 청동단검 등의 유물을 발견하였다. 이후 본계시에서 발굴하여 청동단검묘임을 확인하였다.

형태

대전자 청동단검묘는 석관묘이며, 평면은 장방형으로 길이 4m, 너비 3m이고 무덤칸[墓室]은 길이 2.34m, 너비 1.80m이다. 무덤칸 네 벽은 두께 30㎝의 큰 석판 네 개를 세워 쌓고, 그 위에는 두껍고 무거운 대석판을 덮었다. 무덤칸 바닥은 자갈과 황색 진흙을 평평하게 깔았으며, 자갈 위에는 화장한 뼈 조각[碎骨]이 한 층을 이루고 있다. 부장품과 무덤벽에는 모두 화장 흔적이 보이는데 무덤벽은 흑색의 연기 그을린 흔적이 보이고, 부장품은 대다수 파손되어 변형되었다.

출토 유물

대전자 청동단검묘에서 청동단검 1점, 삼엽식 청동 화살촉 2점, 청동 귀걸이, 석제 방추차 2점, 골제 방추차 3점, 명도전, 철제 손칼 등이 출토되었다. 청동단검은 전형적 비파형 동검에서 세형 동검으로 변해가는 과도기의 중간형 동검으로 잔존 길이 19.4㎝, 봉 길이 8.6㎝, 너비 2.8㎝이며, 단면은 마름모꼴[菱形]을 이루고 있으며 심하게 파손되었다. 청동 화살촉 2점은 모두 삼엽식 형태를 띠고 있으며, 하나는 크기가 잔존 길이 1.9㎝, 넓이 0.7㎝이고, 다른 하나는 크기가 잔존 길이 3.2㎝, 넓이 1.0㎝이다. 청동 귀걸이는 크기가 직경 1.9㎝, 높이 0.9㎝, 청동실[銅絲] 두께 0.1㎝이며, 청동실을 감아서 만들었다. 명도전은 대략 200여 점이 출토되었으며, 완형은 148점이다. 도전(刀錢)은 대체적으로 어깨가 접히거나 어깨가 활모양[弧形]인 두 가지로 나뉘며, 어깨가 접힌 것이 약 89% 차지하고 어깨가 활모양인 것은 10.2%이다. 칼의 정면은 모두 ‘명(明)’이라는 글자가 그려져 있고 반대면에도 대부분 글자가 새겨져 있다. 제대로 보이는 것은 ‘좌(左)’, ‘우(右)’, ‘행(行)’ 등 글자가 있으며 나머지는 확인하지 못하였다. 어깨가 접힌 형태에 글자는 눈썹 모양으로 새겼다. 철제 손칼은 크기가 잔존 길이 11㎝, 넓이 1.5~1.8㎝이며, 파손 정도가 심하고 불에 탄 흔적이 있다.

의의와 평가

대전자 청동단검묘는 본계 지구에서 처음 발견된 청동단검묘로, 무덤 구조는 명확하지 않지만, 부장품인 청동단검과 쇠칼[鐵刀], 명도전 등의 유물이 주목된다. 청동단검은 인부(刃部)가 좁고 봉(鋒)이 가늘고 긴 특징을 가지며 동질(銅質)이 차이가 있다. 이는 요동 지구 청동단검 문화 제4기 유물과 비슷하다. 청동단검 형식은 무순 윤가촌 12호묘[돌널무덤]에서 출토된 것과 매우 유사하며, 두 고분에서 출토된 환상석기(環狀石器)나 고분 구조도 대체로 유사하다. 윤가촌 12호묘의 연대는 전국 말기에서 진한 시대에 해당한다. 해당 고분은 인근의 추수동 유적 주민의 집단 무덤으로 추정되는데 추수동 유적에서 출토된 명도전, 포전, 일화전, 반량전 등의 화폐는 전국 시대(戰國時代) 후기에서 진대(秦代)에 해당한다. 따라서 해당 고분의 연대는 연(燕)·진(秦) 교체기인 기원전 3세기 말경으로 비정된다.

무덤 내부 바닥에는 불태워진 부서진 뼈[碎骨]가 한 층 남아 있고, 무덤벽은 불로 태워진 부분이 검게 변하였고 부장품은 대부분 불타 변형되었다. 비교적 이른 시기의 화장묘는 본계 지역 내의 태자하 상류 유역의 청동기 시대 동혈묘(洞穴墓)에서 많이 발견되어 양자는 일정한 연원 관계가 있다고 보여 진다. 화장 방식은 시신을 고분 안에서 직접 불태우는 1차장 방식이었다. 화장 절차를 보면 고분 안에 땔나무를 쌓고, 시신을 그 위에 올려 놓고, 부장품을 늘어 놓은 후에 불을 붙여 태우고, 불이 꺼질 때를 기다려, 다시 큰 판석을 그 위에 덮었다고 추정된다. 이와 같은 화장 풍습은 물론 무덤칸 바닥에 한 겹의 자갈을 깔던 풍습 등이 고구려 무덤의 풍습과 매우 유사하여 고구려 관련 유적이라 볼 수 있다. 일종의 원고구려 사회, 구려 종족과 관련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 曾昭藏·齊俊, 「桓仁大甸子發現靑銅短劍墓」(『遼寧文物』1981-2, 1981)
  • 桓仁滿族自治縣文物志 編纂委會, 『桓仁滿族自治縣文物志』(1990)
  • 梁志龍·王俊輝,「遼寧桓仁出土靑銅遺物墓葬及相關問題」(『博物館硏究』1994-2, 1994)
  • 國家文物局 主編, 『中國文物地圖集』遼寧分冊(上·下), 西安地圖(2009)
  • 李新全, 「遼東地區積石墓的演變」(『東北史地』2009-1, 2009)
  • 여호규, 「高句麗 초기 積石墓의 기원과 築造集團의 계통」(『역사문화연구』39,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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