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수구 고분군

한자 大梨樹溝 古墳群
중문 大梨树沟墓群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고분
지역 요령성 본계시 환인만족자치현 고성진 와니전자촌 대리수구둔  
시대 선사/청동기
상세정보
성격 고분군
양식 석관묘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87년 7월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87년 10월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88년 8월
소재지 요령성 본계시 환인만족자치현 고성진[구 괴마자진] 와니전자촌 대리수구둔
정의

요령성 본계시 환인만족자치현 고성진 와니전자촌 대리수구둔에 있는 청동기 시대의 고분군.

개설

대리수구 고분군은 부이강 유역에 자리하고 있는 청동기 시대 석관묘[돌널무덤] 고분군이다. 환인 지역이 고구려 초기의 중심지라는 점에서 고구려에 선행하던 이 지역의 묘제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위치

대리수구 고분군은 요령성 본계시 환인만족자치현 고성진[구 괴마자진] 와니전자촌 대리수구둔 서북 150m의 산기슭 비탈진 곳에 자리 잡고 있다. 북부는 비교적 가파르고, 남부는 완만하고 평평하고, 동부는 작은 산맥이 가로로 놓여 있고, 서부는 산비탈 아래 마을길이 있고 그 아래 간파강(干巴江)이 있지만 현재는 양어장으로 바뀌었다. 그 서쪽 약 700m에는 혼강 지류인 부이강이 흐르고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1987년 7월 환인진에서 도로 건설을 위해 흙을 채취하는 과정에서 돌칼[石刀], 도호(陶罐) 등 다수의 유물과 사람의 정강이뼈[脛骨] 잔편을 발견하였다. 그해 10월에 본계시 박물관, 환인현 문관소가 지표에 유적이 노출되지 않았기 때문에 시굴 구덩이를 넣었으나, 고분은 발견하지 못하고 어망추(陶網墜) 1점만 수습하였다. 1988년 8월에 최초 발견 지점의 남쪽 약 10m의 지점에서 한 무더기의 유물을 발견하였다. 본계시 박물관과 환인현 문관소가 수차례 조사하여 돌칼, 호, 발[陶鉢] 등의 유물을 출토하였다.

형태

현지인들의 증언에 의하면, 산비탈 위에 일찍부터 커다란 판석이 빗물에 의해 노출되었는데, 이후 판석을 들어 옮기다가 우연히 토기편을 발견하였다고 한다.

1987년 발견 당시의 상황을 보면, 고분이 자리한 곳의 토양은 모래를 비교적 많이 함유하고 있는데, 당시 몇 개의 판석이 모래와 함께 미끄러져 내려왔으며, 이들 판석 가운데 하나가 아직 옮겨지지 않고 세워져 있었으나 점차 안으로 기울지고 있는 상태였다. 그 판석은 길이 1.5m, 너비 약 1m, 두께 약 0.2m였다.

1988년 조사 당시에는 발견된 유물의 남측에는 세 덩어리의 돌이 담장의 기초처럼 배열되어 있었는데 무덤벽의 아랫단으로 보인다. 현지인들의 증언과 발견 당시 상황을 고려하면, 대리수구 고분군의 고분 형식은 판석을 세워 쌓는 돌널무덤이거나 돌덩어리를 쌓는 형식 등 두 종류일 가능성이 있다.

출토 유물

1987년 조사 당시 돌칼, 호[陶罐], 어망추[陶網墜] 등이 출토되었다. 1988년에는 협사홍갈도[모래가 섞여 있는 홍갈색의 도기] 제품인 토기류와 방추차, 석기류인 돌칼[雙孔石刀], 돌도끼[石斧], 돌자귀[石錛] 등이 출토되었다.

의의와 평가

대리수구 고분군은 혼강 중하류에서 최초 발견된 청동기 시대 고분군이다. 청동기 시대 석관묘는 환인 지역 고구려에 선행한 시대를 이해하는 묘제로 의미가 있다. 환인 지역이 고구려 초기의 활동 지역이므로 대리수구 고분군은 혼강 유역의 청동기 문화와 전고구려(前高句麗), 고구려와의 연계를 연구하는 데 있어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참고문헌
  • 桓仁滿族自治縣文物志 編纂委會, 『桓仁滿族自治縣文物志』(1990)
  • 梁志龍, 「桓仁大梨樹溝靑銅時代墓葬調査」(『遼海文物學刊』1991-2, 1994)
  • 國家文物局 主編, 『中國文物地圖集』遼寧分冊(西安地圖出版社,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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