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록강에 묻어나는 조선족의 삶-압록강에는 국경이 없다

한자 鴨綠江에 묻어나는 朝鮮族의 삶-鴨綠江에는 國境이 없다
영문 Lives of Chinese Korean Around the Yalu River – There is No Border at the Yalu River
중문 与鸭绿江相连的朝鲜族的生活-鸭绿江没有国境线
분야 생활·민속/생활|지리/인문 지리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요령성 단동시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80년대 이후를 중심으로
정의

국경인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신의주를 마주 보며 살아온 중국단동시의 조선족의 삶에 대한 이야기.

개설

단동(丹東)은 국경으로 상징되는 압록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신의주와 마주보고 있다. 압록강변의 양 국경 지역 사람들은 물안개와 해, 그리고 달을 동시에 보고 느낀다. 또 조(朝)·중(中) 국경 조약에 근거하여 이들은 압록강을 공유한다.

두 국경 도시 사람들의 일과는 한 시간이라는 표준 시간 간격 속에서 펼쳐진다. 이러한 환경에서 양 국경 지역의 사람들은 압록강에 다양한 삶의 흔적과 행위를 채워나가고 있다. 이때문에 단동의 조선족은 “압록강은 바다보다 깊다”고 표현한다.

조·중 국경 조약의 특징과 함의

조·중 국경은 양 국가가 비공개 형식으로 체결한 것으로 알려진 1962년 10월의 '국경 조약'과 '국경 문제 합의서' 그리고 1964년 3월 국경에 관한 '의정서'에 근거를 두고 있다. 북한과 중국의 국경 조약 내용에서 주목할 내용은 압록강의 공유(공동 관리 및 사용), 경계 팻말, 섬과 사주(砂洲) 등이다.

이들 단어들이 함의하고 있는 의미는 국경이 곧 선이라는 선입견과는 달리, 국경과 관련된 압록강의 특색이 드러나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북한과 중국은 압록강을 공유 및 공동 관리하고 양국의 사람들이 사용한다. 이것은 국경에 의해서 양국의 국경지역이 나누어지는 것뿐만 아니라, 양국이 함께 국경 지역을 공유하는 부분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단동 시내를 중심으로 예를 들어 본다면, 압록강에는 밀수에 이용되는 배뿐만 아니라 북한과 중국의 모래 채취선, 유람선, 순시선, 어선, 화물선 등이 공존한다. 2006년 이전에는 국경 표시보다는 압록강이라는 단어가 새겨진 비석이 단동시내 관광지들에 있었다. 사주(砂洲)는 국경이 고정된 것이 아니고 끊임없이 변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압록강의 본류가 흐르지 않는 국경지역이 존재함으로써 국경을 구분하기 힘든 경우가 있다. 북한의 황금평이라는 섬에는 조·중 국경 지역을 가로지르는 실개천이 흐르고 있다. 2006년 이전만 해도 이곳에는 국경을 표시하는 어떤 것도 목격되지 않았다.

조·중 국경 조약의 내용과 국경 지역의 지리적 특성들은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살았던 양국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쳤다. 근대 국가들 사이의 국경을 통한 사람들의 교류에서 요구되는 여권 혹은 비자라는 공식적인 틀만이 조·중 국경 지역들에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시대별로 관계 설정에 따른 북한과 중국의 교류와 단절 그리고 두 나라의 관문이라고 여겨지는 공식적인 공간[세관 또는 조중우의교(朝中友誼橋)]들 이외에도 조·중 국경 지역의 국경 문화를 들여다 볼 층위가 더 있다.

압록강을 공유하는 민족 집단들 : 조선족과 한국인, 북한 사람, 북한 화교

단동에는 대다수의 중국인(한족) 외에 교역과 취업 등의 경제활동을 위해 거주하는 조선족, 한국인, 북한 사람, 북한 화교 등 여러 부류의 민족 집단이 공존한다. 이들은 조·중 국경 조약의 특징에 근거하여 압록강을 공유한다. 그러나 두 국경 도시의 사람들의 일과는 한 시간이라는 표준시간 간격 속에서 펼쳐진다. 2000년대에 접어들어 중국 정부가 새롭게 조성한 압록강 공원은 아침과 저녁이면 사교춤을 즐기는 사람으로 넘쳐난다. 반면에 신의주는 외형상 한적한 모습이다. 단동의 관광 유람선들과 보트, 신의주의 정박된 화물선 혹은 양 국가의 국기가 선명하게 보이는 모래 채취선들만이 압록강의 풍경 전부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양 국경지역의 사람들은 압록강에 다양한 삶의 흔적과 행위를 채워나가고 있다.

수많은 물자가 단동에서 신의주로만 가는 것은 아니며 이 다리를 통해서 사람들이 오간다. 그들 중에는 북한과 중국을 오가면서 국경 무역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친척 방문 겸 경제활동을 위해 기차나 트럭 혹은 버스에 몸을 싣는다. 물론 이러한 상황은 최소한 공식적으로 1980년대 초 조·중 관계 개선의 결과가 낳은 모습이다. 이러한 경제활동의 중심축에는 조선족들의 경제활동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국경 왕래의 현장에서 일반적 출입국 절차와 다른 형식이 있다. 국가 간 왕래에서 여권과 비자는 필수적이다, 그러나 조·중 국경의 경우 압록강변에 살고 있는 북한과 중국의 주민들은 도강증(渡江證)을 활용해서 서로의 국경을 넘나들 수 있다. 그 외에도 공유 지역이라는 특성으로 인해 압록강에는 양쪽을 오가게 해주고, 강과 바다에서 만나 물건을 교환할 수 있는 배들도 있다. 이것들이 담당하는 비공식적인 국경 교류가 공식적인 교류보다 많다는 점은 단동 사람에게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단동 국경 지역에는 국경을 넘지 않아도 교류가 가능한 통신 수단이 있고 국경을 사이에 두고 통화를 하지만 국제 전화비를 내지 않는다. 중국 요금을 내는 국내 통화 방식으로 국경 너머 신의주에서도 단동에 있는 사람들과 통화가 가능하다. 이 가운데 한글 문자 메시지가 가능한 한국산 핸드폰은 북한 사람들이 선호하는 기종이다. 이 방식에 주로 사용되는 것으로 알려진 특정 핸드폰 번호의 통화 불통 문제가 2010년 전후에 빈번하게 발생하였지만, 2011년 단동의 일명 ‘조중 민속거리’에는 “조선에서 사용 가능한 휴대전화 판매합니다.”라는 문구를 내건 핸드폰 상점들이 있다.

압록강은 조·중 공동 수역

압록강 바로 옆에 조선족 학교가 있던 1990년대 초, 조선족 학생들은 강 건너 신의주 강변까지 수영을 하였다. 그때를 회상하는 40대의 조선족은 신의주의 물가를 벗어나지는 않았다고 한다. 어린 시절 신의주에 살았던 30대의 북한 화교는 자신이 수영을 하고 있으면, 단동의 외할아버지가 배를 타고 와 자기에게 아이스크림을 주었다는 추억을 말한다. 여름철이면 압록강에 수영을 하는 사람들이 단동과 신의주의 강변 양쪽에서 쉽게 목격된다. 단동 사람은 “압록강에 스쿠버 다이버가 있다고 상상을 해보라.”라는 말을 한다. 그러면서 물속에서 양쪽 사람들이 만날 수 있다고 농담을 한다. 중국 측 유람선들은 신의주 쪽 강변에 최대한 접근해서 운행을 한다. 북한의 국기가 펄럭이는 모래 채취선들은 신의주보다는 단동의 강변 쪽에 가깝게 자리를 잡고 강바닥에서 모래를 퍼 올린다. 이런 풍경이 가능한 이유는 압록강이 두 나라의 공유지역이라는 조·중 국경 조약의 규정이 있기 때문이다.

위의 행위들이 가능한 이유에 대해서 단동 사람은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을 한다. 양 국가는 압록강 너머 신의주(혹은 단동)에 발을 올려놓아도, 배에 손만 놓치지 않으면 국경을 침범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이를 다시 “등안(登岸)은 했지만 월경(越境)은 하지 않았다.”라는 문구로 정리한다. 이 표현은 압록강에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행위를 함축적으로 담고 있다. 단동과 신의주 사이에는 양 국가의 국경이 있고, 양쪽의 강변에 서서 대화를 할 수 없는 압록강의 강폭이 존재하지만 그들은 만나고 교류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 문구는 압록강에서 펼쳐지는 교류와 공유 문화의 가능성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단동 사람과 신의주 사람은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압록강에서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그들에게 압록강은 양 국가를 연결하는 경제적 삶의 수단이 되고 있다. 단동 사람의 삶의 영역이 국경으로 제한 혹은 단절을 받는 것이 아니고 국경 너머의 북한 사람과 교류하고 공유한다.

한편 단동 사람은 압록강이 조·중 공동수역이기 때문에 홍수가 날 경우 강의 폭이 넓어지는 현상을 빗대어 “압록강에는 국경이 없다.”라고 말한다. 이 문구에는 압록강은 비록 국경이지만, 교류를 방해하는 국경의 의미가 없음을 함축하고 있다. 압록강은 양 국가를 이어주는 통로이자 공유 지역으로서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단동과 신의주에는 국경이 있지만, 국경이라는 존재가 그들의 일상적인 삶에 제약으로 작용하지 않았음을 말한다.

단동 사람은 조·중 국경을 “국가 간에 인위적으로 그어 놓은 선일뿐이다. 우리는 이웃과 친구로 지낸다.”라고 이야기한다. 이러한 일상적인 교류에 대해서, 북한과 중국 양쪽 모두 국가 차원에서 엄격하게 관리하지는 않았다. 국가의 시선으로 보면, 그들의 만남과 교류는 비공식적 혹은 불법의 잣대이다. 그러나 그들에게 만남과 교류는 국가의 잣대를 떠나 일상적인 삶의 한 부분이다.

참고문헌
  • 강주원, 『나는 오늘도 국경을 만들고 허문다: 국경 도시 단동을 읽는 문화 인류학 가이드』(글항아리, 2013)
  • 강주원, 「중·조 국경의 다층적 의미: 역사 속의 변경 확대와 현재의 국경 강화 역사 문화 연구」(『역사 문화 연구』 45, 한국 외국어 대학교 역사 문화 연구소, 2013)
  • 강주원, 「중조 국경 도시 단동에 대한 민족지적 연구: 북한 사람, 북한 화교, 조선족, 한국 사람 사이의 관계를 통해서」(서울 대학교 인류학과 박사 학위 논문. 2012)
  • 박선영, 「秘密의 解剖: 조선과 중국의 국경 조약을 중심으로」 (『중국사 연구』38, 2005)
  • 박선영, 「북한과 중국의 비밀 국경 조약」(『중국사 연구』34, 2005)
  • 이현작,「조중 국경 조약 체제에 관한 국제법적 고찰」(『國際法 學會 論叢』 52-3,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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