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시대 중국 조선족 기업의 네트워크, 그리고 기업가 정신

한자 글로벌 時代 中國 朝鮮族 企業의 네트워크, 그리고 企業家 精神
중문 全球网络时代中国朝鲜族企业和企业家精神
분야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기업현황 중국 내 조선족 기업 네트워크
중국 조선족 기업의 네트워크와 기업가 정신

중국 조선족은 세계 곳곳에 진출해 있으며 또한 조선족 기업의 네트워크도 한국, 미국, 일본 등 다양하게 구축되어 있다. 한편 5000년의 역사 속에서 배양되어온 중국인의 투철한 비즈니스 마인드와 기업가 정신은 중국 경제 고성장의 원동력이다. 따라서 중국 기업의 일원인 조선족 기업 또한 한민족의 끈기와 네트워크 그리고 중국인의 기업가 정신을 닮아서 뛰어난 환경 적응력과 네트워킹 능력, 도전 정신이 출중하다. 따라서 중국 내수 시장 진출 시 조선족 기업과의 네트워크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다.

왜 이시기에 중국 조선족 기업 네트워크와 기업가 정신인가

전 세계 경제가 침체되고 있는 가운데 대외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새로운 출로를 찾지 않으면 안 된다. 특히 대중국 의존도가 높은 우리로서는 중국과의 네트워크 구축이 선택이 아닌 필수이다. 다행히 재외동포 700만 중에서 200만 조선족이 중국에 살고 있으며 이들 중 30~40대의 젊은 조선족들은 중국 대도시에서 기업경영을 통해서 나날이 성장하고 있다. 이들은 우리가 지금까지 발견하지 못한 블루오션이며 이들과의 네트워크 구축을 통한 윈윈전략만이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기 위한 대안이다. 따라서 벤치마킹의 대상으로서 유대인과 화인 네트워크에 대해서 간단히 알아보고 이어서 중국 조선족 기업 네트워크 구축 및 활용 방안을 언급하고자 한다.

벤치마킹 대상으로서의 유대인과 화인 네트워크 및 기업가 정신

유대인에 대한 이미지로는 강한 생존력과 강한 네트워크, 강한 애국심 그리고 독특한 교육 방법 및 기업가 정신을 들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유대인은 전 세계 134개국에 걸쳐서 약 1,400만 명 이상이 거주하고 있으며 이들 중 41.4%가 미국에 거주하고 있다. 이들의 역사는 고난과 형극의 역사임에도 불구하고 교육을 통해서 정체성을 유지하며 상술이 뛰어나고 이재에 밝아 거주국의 경제에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며 그들만의 끈끈하고 막강한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전 세계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전 세계 각 분야에 영향력을 미치는 유대인의 대부분이 모국거주 이스라엘인이 아니고 세계 속에 흩어져 있는 유대인디아스포라들 이라는 점이다.

한편 동남아 지역에 주로 흩어져 살고 있는 화인들의 삶은 어떠한가? 이들 또한 거주국의 박해에도 불구하고 자기들만의 강한 네트워크와 기업가 정신을 통하여 삶을 영위하고 부를 축적함으로써 오늘날 화인들은 거주국에서 뿐만 아니라 개혁개방이후 거대 자본을 중국에 투자함으로서 중국에 비약적인 경제 발전을 가져오게 하는 견인차 역할을 하였다. 또한 중국이 G2의 위상으로 진입하는데 있어 화상 네트워크의 역할을 자타가 인정하고 있다.

중국 한인 네트워크 현실

앞에서 예로 들었던 두 민족 즉 유대인과 화인들은 그들만의 강한 네트워크 구축을 통하여 상생하고 있다. 그렇다면 해외에 700만 명의 재외동포가 있는 우리민족의 삶은 어떠한가? 그중에서 중국에 살고 있는 200만의 조선족은 누구인가, 그들의 삶은 어떠하며 또한 한국과의 관계를 심사숙고해 볼 필요가 있다. 한국인들에게 조선족의 이미지는 아직까지도 건설 현장의 노동자나 식당 주방보조 아줌마를 연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조선족이 가난하고 못사는 중국 국적의 해외 동포라는 이미지 때문인지 조선족들은 재미교포나 재일동포보다 한국 사회에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 이는 재미교포나 재일동포는 선진국에서 사는 같은 민족이니까 하는 기대심리가 있어서가 아닐까? 그 반면에 조선족들은 같은 민족인데도 불구하고 중국에서 돈벌이 하러 온 노동자라는 마음의 편견이 있는 것은 아닐까? 만약 이런 마음 때문에 조선족을 차별대우한다면 이는 한국이 선진국에 진입한다 할지라도 내면의 정신은 후진국 수준에 머물러 있으므로 스스로 부끄러워해야 할 것이다. 유대인이나 화인들은 전 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는 자기 민족들과의 강한 네트워크 구축을 통하여 서로 상생하면서 잘 살고 있지 아니한가? 우리도 이러한 선진적인 넓은 아량으로 조선족을 포용하고 받아들여 그들과 상생 마인드를 가져야 할 것이다.

필자는 지난 2003년도부터 10여 년 간 중국 동북 3성을 비롯한 북경, 청도, 상해 등 중국 대도시에서 기업을 경영하는 30~40대의 젊은 조선족 기업인들을 대상으로 기업가 정신과 네트워크에 대한 연구 조사 활동을 진행해왔다.

조사 결과에 의하면 중국의 조선족 기업들은 중국 진출 한국 기업이나 한국에 있는 기업과 강한 연대의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으며 기업가정신 또한 출중하였다. 이는 역시 민족의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강한 연대의 네트워크 구축을 통하여 서로 상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서로 속고 속이는 애증의 관계로 발전하여 화합하지 못함을 볼 때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이를 단적으로 표현한 박광석OKTA 청도 지회장의 말을 인용하자면 ‘물과 기름처럼 붙어 있는 것 같지만 붙어 있지 않고, 남인 것 같지만 남도 아닌 것이 바로 한국인과 중국 조선족이다’라는 인식이 한국인과 조선족 사이에 늘 잠재해 있다.

한국도 55년 전에는 전쟁의 폐허 속에서 가난에 허덕인 적이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처럼 잘 살게 된 것은 끊임없이 근면하게 일했던 한국인의 저력이겠지만, 우리가 가난했던 옛날을 잊어서는 안 되며 또한 조금 부유하다고 업신여겨서도 안 될 것이다. 이는 한국이 선진국으로 도약하는데 걸림돌로 작용할 것임이 분명하다.

21세기는 네트워크 시대이며 다민족 다문화의 시대이다. 중국에 살고 있는 200만 명의 조선족은 분명 우리민족의 자산이며 진흙 속에 감춰져 있는 진주이다. 우리가 이 진주의 가치를 알고 갈고 닦아서 귀하게 활용하여야 할 것이다.

한국 투자 기업의 현황과 조선족 기업의 부상

1978년 중국의 개혁개방, 1992년 한중수교로 인해서 한국의 중소기업들이 중국에 물밀듯이 밀려갔다. 중국흑룡강 신문사 자체 통계에 의하면 중국진출 한국기업은 5만 여개이며 중국 조선족 기업이 17,500여 개라고 한다. 그 동안 중국 진출 한국 기업들의 한중 수교 20년간의 성적표는 초라하기 그지없다. 중국에 진출한 몇몇 대기업을 제외한 많은 수의 중소기업들은 중국정부의 강화된 기업규제에 의하여 견디지 못하고 야반도주하거나 제3국으로 공장을 이전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였다. 반면에 그 동안 중국 진출 한국 기업에 취업하여 4~5년 정도 경영기법을 닦은 젊은 조선족들이 중국 대도시에서 창업하여 비약적으로 성장하였다. 따라서 오늘날 중국에서의 조선족 기업과 중국 진출 한국 기업의 경영 성적표를 보면 조선족 기업이 우위에 섰다는 것을 중국 진출 한국 기업들이 인정하고 있다.

청도 조선족 기업가 협회에 의하면 2012년 5월 현재, 청도의 조선족 기업 수는 1천여 개이며 그 가운데 2011년 기준으로 매출액이 1억 달러 이상 되는 기업이 1개, 1천만 달러 이상 되는 기업이 20여 개, 500만 달러 이상 되는 기업이 50여 개나 된다고 한다. 이렇듯 비약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조선족 기업이 초창기에는 임가공이나 하청업체로서 납품수준에서 벗어나 점차 글로벌 기업으로 부상하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청도 한국인회 최영선 수석 부회장은 “전에는 조선족 기업이 한국 기업에 많이 의존했는데 지금은 거의 독자적이다. 이제는 한국 기업과 거의 대등한 수준에 왔으며 윈윈이 필요하다.”고 강조하였다. 이는 청도의 조선족 기업뿐만 아니라 연변이나 심양, 북경, 상해, 심천, 광주의 조선족 기업들의 경영 성적이 갈수록 성장에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반면에 중국 진출 한국 기업들의 경영 환경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즉 초창기에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과 조선족 기업과의 위상이 한중 수교 20년이 된 지금 역전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10년이나 20년 후에 중국 시장에서 한국 기업과 조선족 기업의 위상은 갈수록 격차가 벌어질 것이며 나중에는 조선족 기업의 경영 성적이 훨씬 앞설 것임이 분명하다. 그 이유는 조선족 기업인들은 한국어와 중국어에 능통하며 또한 중국 문화에 익숙하고 꽌시(인맥)가 잘되어 있으며 또한 대부분의 조선족 기업인들은 30~40대로서 젊으며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는 글로벌 마인드와 기업가 정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증명이나 하듯이 지난번 청도 대학에서 CEO 과정을 개설했는데 32명의 CEO가운데 20여 명이 조선족 기업의 CEO였다는 기사를 통해서도 증명이 되고 있다.

한국 투자 기업과 조선족 기업의 윈윈 전략

이제 중국 진출 한국 기업들은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할 기로에 서 있다. 중국에서 사업을 계속 할 것인가 아니면 제3국으로의 이전 혹은 한국으로의 회귀에 대한 결정이다. 또한 한국 정부는 중국 수출 의존도가 높은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계속적으로 중국에 대한 수출 목표를 달성하고 중국 내수시장에 대한 시장 점유율을 넓혀갈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조선족 기업과의 네트워크를 통하여 중국 내수 시장을 확장하고 또한 대 중국 수출을 증가시켜 한국과 조선족 기업의 상생 무드가 조성될 때 중국의 조선족 기업이 진흙속의 진주로서의 가치를 발휘할 수 있을 것 이다. 중국광동성에서 가장 성공한 조선족 기업인으로 회자되는 남용운헝스 디지털 기술 유한 공사 사장은 “다른 어느 민족보다 한민족을 강한 민족으로 키워가려면 지역을 가리지 말고 서로 교류해야 발전할 수 있다.” “55년 만에 세계 13위의 경제대국을 이룩한 한국인의 저력으로 5,000만 명의 모국인과 700만 명의 재외동포가 하나가 되어서 세계적인 수준의 복지 국가를 만들어보자”고.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모국과 재외동포간의 열린 네트워크가 필수라고.” 강조한 말을 가슴에 새겨둘 필요가 있다.

중국 조선족 기업가 정신의 표본: 연변 국제 무역 대하 유한 책임 공사 최정금 회장과의 인터뷰

@@GC05305316_01_중국 조선족 기업가 정신의 표본: 연변 국제 무역 대하 유한 책임 공사 최정금 회장과의 인터뷰

질문 1: 지금 회사의 현황은 어떻게 되는가?

답변 : 주식 회사 형태로 백화점이다. 연변자치주 내에 슈퍼마켓도 80개 정도 가지고 있다. 규모면에서 보면 현급은 1만 2천 ㎡ 정도이며 나머지는 2백 ㎡ 정도이다. 체인점 형태이다.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는 조그마한 상점으로써 자본금은 50만 위안 정도였다. 현재 총자본금은 7억 2천만 위안 정도이다. 창업일은 1979년 4월 16일이며 주식 회사로는 95년부터 시작 되었다.

현재 이 회사의 주식은 70%가 내 소유이며 나머지 30%는 9명의 주주가 소유하고 있으며 이사진은 약 30명 정도 된다. 또한 현재 종업원 수는 1,800명인데 그 중 조선족은 300명 가량이고 나머지는 한족이다.

질문 2: 사업 동기가 무엇이며 회사의 발전 과정이 궁금하다.

답변: 처음에는 교사를 했었는데 중학교 교사로 4년 간 근무했다. 고등학교는 한족 고등학교를 졸업 했었다. 교사 생활은 농촌인 안도현에서 했었다. 원래는 교직 생활을 계속 하고 싶었는데 부모님이 편찮으시니까 부모도 돌봐야하고 형제들도 돌봐야하니 교직 생활을 그만두고 연길에 올라와서 76년도에 상업에 종사했다.

처음에는 공소사 아래에 있는 집체 기업으로 직원이 20명 정도 되는 조그마한 잡화점에 출근해서 1년 반 정도 종업원으로 근무했다. 1년 반 뒤에는 부사장으로 진급 했는데 부사장을 하면서 구매 담당을 계속 10년 정도 하면서 전국 각지 안 가본 곳이 없다. 기차를 타고 판매하러 다닐 때는 집이 가난하니까 좌석에 앉지도 못하고 입석을 사서 가기도 하고 화장실에 사람이 없을 때는 깔개를 깔고 앉고 기차가 한가할 때는 빈자리에 앉기도 하면서 다녔다.

10년 동안 호텔에도 한번 못가고 지하 목욕탕에 가서 목욕하고 자면서 다녔다. 팔고 남은 물건들은 밀차를 밀고 다니면서 팔았다. 또한 기차 타고 다닐 때는 상품을 머리에 이고 다니면서 팔았다. 그때는 근무지가 작은 상점이라 차도 없어서 밀차를 밀고 다니면서 팔 수 밖에 없었다. 81년도부터 90년까지 10년 동안 그렇게 했다.

그러다가 92년도 4월 26일에 연길에 발령나서 왔었는데 여기 왔을 때는 건물을 미처 짓지 못했었다. 그때는 건물을 완공하지도 못하고 실내 장식도 전혀 없는 상태였다. 그 상태에서 빚이 1천 7백 2십만 위안이 있었다.

원래 나는 주공소사 즉 공급 합작사라고 사회주의 체제에서 존재했던 것으로써, 요즘으로 말하면 백화점 소속이었다. 그런데 선거를 통해 뽑혀서 이곳으로 파견 나온 것이다. 오고 싶다고 오는 것이 아니었다. 조직에서 당원이니까 너는 이거 해야 된다 하면 무조건 복종해야 하는 명령식이었다. 그러니까 이 빚도 반드시 본인이 갚아야 한다 했다. 이 때문에 고생을 너무 많이 했다. 빚쟁이들 때문에 집을 19번이나 이사해야 했다.

질문 3 : 당신의 도전 정신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가 있는가?

답변: 연변에서는 그 때 은행에서 대출을 받으려면 은행장을 계속 쫓아 다녀야 했다. 그러니까 92년도 4월 20일에 백화점을 맡은 후 한 7년간은 화장품을 얼굴에 발라본 적이 없었다. 은행 대출을 받으려고 은행장 집에 가서 청소도 해주고 김치도 담가주고 하여 이런 걸로 은행장을 감동시켰다.

내가 농촌에서 교사를 하면서 여유 시간이 있으니까 밥을 잘 지었는데 그래서 그걸로 감동시켰다. 은행장 가족들이나 직원들 신발도 닦아주고 청소도 해주고 김치도 담가주고 하니까 이사람들이 감동해서 대출을 해주더라. 이게 다 장춘이나 북경에 있는 농업 은행이나, 공상 은행에서 있었던 일이었다.

이렇게 하다보면 어떤 은행장은 집이나 은행장실에 들여 보내주지 않는 경우가 있었다. 이럴 때는 새벽 5시부터 밖에서 기다렸다. 그때부터 기다리면 그분들이 아침 6시 20분경에 나온다. 그때 나오면 같이 한 시간 동안 걸어 다니면서 사정을 이야기 하였다. 이런 식으로 한 달 두 달 다니니까 그 분들이 감동해서 조금씩 대출을 해줄려는 마음을 보이더라.

그래서 그때 2천만 위안 정도 대출을 받았다. 이래서 92년 8월 28일에 백화점 문을 열었다. 즉 넉 달 동안 2천만 위안의 돈을 조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해서 겨우 백화점을 오픈 하고 나니까 상품을 들여올 돈이 없더라. 그래서 생각한 결과 자영업자들을 백화점으로 들어오게 했다.

그러나 그 때 당시만 해도 우리 같은 집체 기업에 개인들이, 그러니깐 자영업자들이 들어오는 게 인상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그랬는지 국영 기업에서 어떻게 자영업자들을 들어오게 하느냐고 하면서 반대가 심했다. 그런데 그러고 싶어서 한 게 아닌데, 돈이 없어서 방법이 없어서 한 건데. 그렇게 문을 열었는데 자금이 없어서 빚쟁이들이 계속 오니까 3년 기간 동안 19번을 이사하게 되었다.

참고문헌
  • 임채완·이장섭 외 공저, 『중국 조선족 기업의 네트워크』(북코리아, 2007)
  • 「중국 조선족 기업 네트워크를 활용하자」(『한인 경제』, 2012. 5. 6)
  • 인터뷰(최정금, 연변 국제 대하 무역 책임 공사회장, 2010. 7)
관련항목
이전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