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분류

수녕 반일 동맹군

한자 綏寧 反日 同盟軍
중문 绥寧反日同盟军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흑룡강성 목단강시 영안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성격 중국 공산당 만주성위원회 산하의 항일 유격대
설립자 주보중(중국인)
설립 시기/일시 1934년 2월
개칭 시기/일시 1935년 2월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33년~1934년
최초 설립지 중국 흑룡강성 영안현
정의

1932년 10월 흑룡강성 영안현에서 중국 공산당 만주성 위원회 산하 조직으로 결성된 항일 유격대.

개설

1931년 9월 일본군의 만주(중국 동북지방) 침략 이후 중국 동북 각처에서 구 동북군벌 계통의 항일 의용군과 많은 중국인 민중들이 봉기하였다. 그러나 일본군의 압도적 무력과 ‘토벌’공세로 이들은 큰 어려움을 겪으며, 차츰 밀리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길림 구국군의 일부 세력이 동만주 지방에 결집하게 되었다. 특히 1933년 말 중국 항일 의용군인 길림 구국군(吉林救國軍)을 이탈한 300여 명이 영안현(寧安縣)으로 이동하여 왔다. 이에 중국 공산당 만주성위원회 산하 길동국(吉東局)은 중앙의 ‘1월 서한’ 방침에 따라 항일무장 세력의 연대투쟁을 강조하며 산하의 항일유격대와 중국 의용군의 연합을 통해 무장대오를 확대하는 방침을 세웠다. 이에 따라 동·북만주 일대에서 항일무장 투쟁을 전개하고 있던 주요 중국 공산당원 주보중(周保中)은 항일유격대 200여 명과 이들을 규합하여 1934년 2월 500여 명 규모의 ‘수녕 반일 동맹군(綏寧反日同盟軍)’을 결성하고 자신이 주임이 되었다. 이 부대는 이후 북만주와 동만주 일대에서 본격적인 항일 투쟁과 각종 대중운동, 사상투쟁을 주도하였다.

설립 목적

구 동북군벌계의 길림구국군 일부 장병들과 중국 공산당 만주성위원회 산하의 항일 유격대를 통합하여 단일 조직을 결성하고 항일 투쟁을 전개하기 위해 세워졌다. 또한 항일 유격 근거지를 건설하며 이곳을 토대로 동만주 지역의 중국인, 한인 대중을 포섭하여 공산 주의 운동도 전개하려 하였다.

변천

1935년 2월 중국 공산당 중앙에서 파견된 길동국(吉東局) 순시원 양송(楊松)의 지도로 동북반일연합군 제5군으로 개편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수녕 반일 동맹군의 주요 사업과 임무는 북만주와 동만주 지방에서 전개된 항일 무장 투쟁을 보다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 영안·수분하(綏芬河) 등 동만주 일대의 각종 항일 세력을 규합하고, 유격 근거지를 건설하며 중국인과 한인 대중을 기반으로 하여 반제·반봉건·계급 투쟁을 전개하는 데 있었다. 예를 들면 1933년 여름부터 1934년 봄 사이에 영안현의 팔도하자(八道河子)에 유격 근거지를 세우고, 이곳을 근거지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의의와 평가

중국 의용군 패잔 세력을 규합하여 항일 유격대와 통합, 항일역량을 강화하고, 북만주와 동만주 일대의 항일 무장 투쟁과 대중 운동을 고양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며, 후일 북만주 지역 동북 항일 연군의 토대를 이루었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아볼 수 있다.

참고문헌
  • 신주백, 『만주지역 한인의 민족운동사(1920~45)』(아세아문화사, 1999)
  • 양소전 외, 『중국조선족 혁명투쟁사』(연변인민출판사, 2009)
  • 장세윤,「허형식 연구」,(『한국독립운동사연구』제7집, 독립기념관,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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